며칠 동안 밤잠을 못 주무시던 엄마는 여느 때와는 달리 하루라도 빨리 큰 이모를 보러 가기를 원했다. 남편과 나는 아침부터 정성껏 김밥을 싸고 서둘러 채비했다. 금방이라도 개나리 꽃망울이 터질 듯 따듯한 날이었다. 40분가량 달리자 차가 드문 한적한 동네가 나타났고 오래된 대학 옆에 큰 이모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달이와 남편은 근처 공원으로 놀러 가고 나와 엄마만 병실을 찾았다. 병들어 추레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할 것만 같은 큰 이모를 배려한 것이었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이모는 누워서 독서 중이셨는지 안경을 벗고 여긴 왜 왔니, 란 얘기를 하며 일어나 앉으셨다. 내가 보기엔 전에 만났을 때와 별다르지 않은 똑같은 이모였다. 저 담담한 얼굴, 맑은 눈빛의 이모가 말기암 환자라니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평소 이모 앞에만 서면 더욱 더 활달하고 씩씩해지는 엄마는 사실은 며칠 잠도 못 잤으면서 언니, 멀쩡하네, 여기 와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아,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를 닮은 이모, 이모를 닮은 엄마. 의좋은 자매란 저런 것일까. 떨어져 있어도 모녀처럼 끈끈하고 함께 있으면 친구처럼 즐거운 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넷째 이모가 병실에 왔다. 큰 이모나 엄마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명랑한 넷째 이모는 큰 이모가 남긴 환자식을 엄마가 담가온 열무김치와 맛나게 먹더니 맞은 편 침대에서 쿨쿨 잠이 들었다. 듣자 하니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그래도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다 병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던 큰 이모나, 지독한 신경증에 일중독자인 엄마에 비하면 다행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다.

 

몇 차례 응급실을 드나들며 초조히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갑자기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리기를 몇 번, 영달이가 자라고 내가 중년을 향해 가는 사이 엄마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던 순간이 있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까맣게 냄비를 태워 먹고 잠이 든 아빠를 보며 아픈 엄마보다 너무나 건강한 아빠를 염려하던 때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집 자매들의 공통점은 어찌된 일인지 몸이 아파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도 그다지 흔들림이 없다는 것. 마치 때를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치매나 중풍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오히려 안도하고 있으니 자식들은 허망하게 맞장구라도 쳐야 하는 걸까. 딱 못 살 집이었는데 밑의 동생들이 큰 언니 때문에 시집도 못 갈까봐 지옥 같은 시집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큰 이모를 보면서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큰 언니 말은 어기지 않을 거라던 엄마의 다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엄마는 사람은 다 자기 명이 있다고, 안 먹는다고 빨리 죽어지지 않는다고, 그래봤자 몰골만 흉측해지니 잘 먹고 좋은 얼굴로 있다가 죽어도 죽으라고, 평소 엄마다운 충고를 하며 더덕나물, 표고나물, 보리굴비 등 공들여 만들어온 슴슴한 반찬들을 이모에게 권했다.

 

겉으로는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 엄마지만 그간 이모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의지해온 걸 잘 알기에, 이모야말로 엄마가 믿는 세상 유일한 어른이란 걸 알기에,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알 것 같았다. 나와는 이종사촌이자 큰 이모의 딸인 언니가 엄마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때 마치 훗날의 내 얼굴 같아서 바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혼자 남겨질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도 꼭 내 심정과 같아서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추슬러야 했다. 나는 병문안을 온 사람이고 위로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아직 우리 엄마는 건강하니까, 자꾸 생각하면서. 걱정했던 것보다 이모 얼굴이 좋으세요,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 좋네요, 맛있는 반찬 해갖고 엄마랑 또 올게요, 식상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사촌 언니와, 밤마다 울어서 오른쪽 볼이 벌겋게 헐어버린 막내 이모를 뒤로 하고 차에 올랐다. 불안한 건지, 속상한 건지, 체념한 건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뭔가 호소하듯 이야기하는 엄마를 싣고 과연 몇 번이나, 몇 달이나, 몇 년이나 이 길을 오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가슴 속에 정체 모를 돌덩어리를 안고도 저렇듯 평안한 얼굴로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는 큰 이모를, 죽기 전 그날까지 형형한 눈빛을 잃지 않던 외할아버지를 꼭 빼닮은 큰 이모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그리고 명이 다 하더라도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편안히 잠자듯 돌아가시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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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세상에 살기에 세트 - 전2권 - 초판 복간본 + 개정판
김승옥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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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의 모티브가 ˝재미있는 유머 소설 한 편 써보겠다.˝ 였다니.
다시 만난 김승옥, 역시 전무후무한 문단의 천재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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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에 낙엽 냄새가 스밀 때쯤 동아리 후배가 연락을 했었다. 가을 시전을 알리는 공지사항. 그 문자를 받으면 가을의 끄트머리, 겨울 문턱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다음을 이어갈 사람이 없는 건가. 결국 문을 닫은 건가. 요즘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자조와 우려는 나 학교 다닐 때도 있었지만 근근이 이어가던 모임이었는데. 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는 6차 촛불집회 현장에 우리 세 가족이 있었다. 애국자 나셨다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영달이에게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게 해야겠다, 세 개의 촛불을 보태겠다는 결의로 추위와 피로 속에서도 촛불을 들었다. 다 같이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지를 때는 가슴에 슬픈 전율이 일었다. 2002년 월드컵 때의 감동과 기쁨과는 반대의, 폐부 깊숙이 아려 오는 울림. 광장을 밝히는 촛불의 축제, 비극과 희망이 고르게 일렁이는 혁명의 현장이었다.

 

늘 그렇듯 때가 되니 학교를 옮겨야 하고 내년에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계획이다. 영달이의 취학통지서가 나왔고 남편과 나는 곧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흐뭇함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의 흰 머리가 자라고 뱃살이 늘어지는 사이 영달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꿈이 많아 고민인 새침한 소녀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싫은 부분은 여전히 싫고 남편 또한 나에 대해 마찬가지 감정이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학교를 쉬어본 지 오래라 쉰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실감이 안 난다. 영달이 뒷바라지에 아마도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닐 듯한데 예나 지금이나 영달이에게 그다지 영향력 있는 엄마는 아니라서 나의 휴직이 아이에게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소소한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있지만 비교적 무탈하고 순탄하게 흘러간 한 해. 교직이 내게 참 소중하고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깨달음이 크다는 것을 십이 년 차가 되니 깊이 실감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전부가 될 수는 없고 전부도 아니라는 경계심도 갖는다. 영달이는 주변과 거리를 둘 줄 아는, 나와는 다소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성장 중이고 엄마로서 경이와 염려를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부모로서 가장 힘든 점은 내가 낳았으니 확신을 갖게 되고 확신을 갖고 싶음에도 이 아이에 대한 영원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나처럼 직관과 판단을 즐기는 인간으로서는 그 불가해함을 견디는 일이 당최 힘들기만 하다. 한때 가정과 학교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몰라보게 성장해가는 아이와 아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키워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내가 선택했고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아직은 어느 마트에 있는 무엇을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긴가민가 산타의 존재를 믿는 영달이에게 산타인 척 카드를 써야겠다. 엄마 아빠가 선물을 의논하며 주고받는 메시지를 보고 눈치를 챈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올해도 카드를 쓰겠다. 산타의 이름을 빌어 딸에게 보내는 감사의 카드.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매년 이렇게 안도의 감사 카드를 쓸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람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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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꼭 필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대답하기 어렵다.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이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타인의 고통에 연결된 누군가의 공감과 그에 따른 실천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차고 건조했으리라는 것. 자기에게 집중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효율이 아니라 공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반드시 고통이 찾아오며, 타인의 공감이 없다면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것.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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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나를 묻는 밤의 독서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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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위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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