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 낙엽 냄새가 스밀 때쯤 동아리 후배가 연락을 했었다. 가을 시전을 알리는 공지사항. 그 문자를 받으면 가을의 끄트머리, 겨울 문턱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다음을 이어갈 사람이 없는 건가. 결국 문을 닫은 건가. 요즘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자조와 우려는 나 학교 다닐 때도 있었지만 근근이 이어가던 모임이었는데. 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는 6차 촛불집회 현장에 우리 세 가족이 있었다. 애국자 나셨다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영달이에게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게 해야겠다, 세 개의 촛불을 보태겠다는 결의로 추위와 피로 속에서도 촛불을 들었다. 다 같이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지를 때는 가슴에 슬픈 전율이 일었다. 2002년 월드컵 때의 감동과 기쁨과는 반대의, 폐부 깊숙이 아려 오는 울림. 광장을 밝히는 촛불의 축제, 비극과 희망이 고르게 일렁이는 혁명의 현장이었다.

 

늘 그렇듯 때가 되니 학교를 옮겨야 하고 내년에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계획이다. 영달이의 취학통지서가 나왔고 남편과 나는 곧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흐뭇함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의 흰 머리가 자라고 뱃살이 늘어지는 사이 영달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꿈이 많아 고민인 새침한 소녀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싫은 부분은 여전히 싫고 남편 또한 나에 대해 마찬가지 감정이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학교를 쉬어본 지 오래라 쉰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실감이 안 난다. 영달이 뒷바라지에 아마도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닐 듯한데 예나 지금이나 영달이에게 그다지 영향력 있는 엄마는 아니라서 나의 휴직이 아이에게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소소한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있지만 비교적 무탈하고 순탄하게 흘러간 한 해. 교직이 내게 참 소중하고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깨달음이 크다는 것을 십이 년 차가 되니 깊이 실감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전부가 될 수는 없고 전부도 아니라는 경계심도 갖는다. 영달이는 주변과 거리를 둘 줄 아는, 나와는 다소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성장 중이고 엄마로서 경이와 염려를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부모로서 가장 힘든 점은 내가 낳았으니 확신을 갖게 되고 확신을 갖고 싶음에도 이 아이에 대한 영원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나처럼 직관과 판단을 즐기는 인간으로서는 그 불가해함을 견디는 일이 당최 힘들기만 하다. 한때 가정과 학교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몰라보게 성장해가는 아이와 아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키워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내가 선택했고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아직은 어느 마트에 있는 무엇을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긴가민가 산타의 존재를 믿는 영달이에게 산타인 척 카드를 써야겠다. 엄마 아빠가 선물을 의논하며 주고받는 메시지를 보고 눈치를 챈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올해도 카드를 쓰겠다. 산타의 이름을 빌어 딸에게 보내는 감사의 카드.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매년 이렇게 안도의 감사 카드를 쓸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람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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