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습성 중의 하나는, 진짜 불만은 결코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가슴 한켠에 꽁꽁 모셔둔다는 것이다. 그것을 찬찬히 삭혀서 발효시킨 다음 이해와 인내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나의 인격에 비추어 볼 때 전무후무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렇듯 차곡차곡 쌓인 불만들이 어느 날 가슴 속에서 봇물 터지듯 폭발함과 동시에 나는 흥분하지도 않은 채로 상대에게 관계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라고.

나란 사람은 꾸준한 줄폭탄보다는 급작스런 직격탄을 선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참 나쁘다, 란 생각이 들지만 본래 소심한 A형으로 타고났기 때문인지 불만에도 쫀쫀한 정리벽이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겨울에 눈싸움을 할 때도 나는 오래도록 꼼꼼하고 찬찬하게, 눈가루들을 모아모아 단단히 뭉친 다음 표면에 물까지 발라 꽝꽝 얼린 후 도망가는 상대의 등짝을 향해 눈덩이를 명중시키는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대개의 여자아이들은 눈가루를 얼굴에 뿌리고 도망치기도 하고 덜 뭉친 눈덩이를 던지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눈싸움을 눈놀이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다분했지만 나는 오빠들이 눈싸움을 하는 모양을 잘 눈여겨 보았다가 실전에 활용하곤 했다. 그다지 관계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나는, 까르르 까르르 웃고 살짝살짝 토라지기도 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눈놀이보다는, 나였든 다른 아이였든 딱딱한 눈덩이 하나 얼얼하게 얻어맞고 누구 하나 세상 떠나갈 듯 울고 난 다음에야 끝나는 눈싸움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지지부진한 즐거움 보다는 한 방의 설움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예전에 남자친구를 대할 때 역시 그랬다. 나는 그가 가게 점원들을 대하는 태도,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모양, 전화를 걸고 받는 습관, 부모님과 형제들을 향해 갖고 있는 마인드에 대해 항상 불만이었지만 한 번 운을 띄웠을 때 상대의 반응이 별로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다음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때로 나는 나를 넘어서는 노력까지 불사한다. 나의 모순됨은 바로 거기에 있다. 싫은 점이 있으면 싫다고 말한 다음 상대가 스스로 변화하기를 촉구하던가, 상대의 변화를 부추겨야 할텐데 나는 일단 상대에게 나를 맞춘다. 상대는 자신의 가려운 데를 다 알아서 긁어주고 맞춰주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면서 나에게 익숙해진다. 그 과정 안에서 난 앙앙거리지도 않고 징징대지도 않는다. 마음 속으로는 성벽을 쌓았다 부수었다 여러 차례 반복할지라도 입 밖으로 뱉어내는 말은 배려와 관용이 넘치는 다정한 말들 뿐이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급작스럽게,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린다. 서서히, 가 아니라 아주 빨리. 별 고민도 없이 잠들고 난 후 그 다음 날 아침 눈을 떠서 오늘 헤어져야지, 라고 결정하는 식으로. 뜬금없이 직격탄을 맞아버린 상대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는 내가 읊어대는 이유들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왜 그 때 말하지 않았냐고. 내가 돌려주는 말은, 내가 말할 때 넌 뭐하고 있었니.   

평소 다정하고 솔직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나지만 알고보면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다. 가게에 들르거나 하다못해 지나가는 택시를 타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상냥하고 친절하다는 것에 좋은 인상을 받곤 하니까 말이다. 솔직한 것도 맞다. 거짓말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나도 그렇다. 가능한 한 투명하게 살길 바랄 뿐더러,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솔직한 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저처럼 켜켜이 쌓아놓고 묵혀두는 불만 섞인 감정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되곤 한다. 나의 해결방식은 언제나 이별 뿐. 대안책은 없다. 학부 시절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나와 한 그룹에 배정된 친구가 있었는데 한 달 동안의 실습 기간 동안 나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불만들을 갖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진 않았다. 슬슬 눈치를 살피던 친구가 이유를 물어왔지만 적당히 얼버무리곤, 한 달간의 실습기간이 끝나자 그녀의 경박함 때문에 내가 겪어야 했던 피곤함에 대해 짧고 굵게 읊어준 뒤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녀는 졸업 이후에도 문자를 보내오고 소식을 전해 왔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시간이 이만치 흐른 마당에 계속 그러는 나 자신도 우스웠고, 어쨌든 대학 4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는데 내가 지금 친구 하나를 잃어버리고 있구나... 싶은 느낌도 썩 기쁘진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 속에서는 나의 해결책은 이별, 이별 그 이후의 대안책은 없음, 이라는 갑갑한 공지사항만 뜨는 것이다. 이건 무슨 미련한 고집이고 까닭 없는 오기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말을 참 못하는 사람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떠드는 직업을 가졌고 남의 나라 말로 밥벌어 먹고 산다지만 말을 많이만 하고 있을 뿐,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저렇듯 입을 다물어 버리니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맞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아도, 상대의 독설이 주는 상처보다 침묵이 주는 상처가 훨씬 더 공포스러울 수 있다. 직접 대놓고 말하기 싫다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약간씩의 힌트라도 내비쳐주는 배려가 필요한 건 아닐까. 나란 사람은 기괴한 방식으로, 뒤틀린 방식으로 나와 상대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 하나를 울리고 끝나야만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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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7-0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유형이군요. 전 아주 둔감하고 귀가 어두워 일일이 직설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래서 놓쳐버린 친구들에게 미련을 가지고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취하긴 하지만, 그 친구들이 마음의 문을 열 거 같지 않아 슬퍼요.

깐따삐야 2006-07-1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인간관계에서 시시때때로 서로간의 진심보다 타이밍이 우위에 놓일 때가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