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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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잊고 사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전쟁이다.

여전히 지구 한 켠에서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하루 세 끼를 온전히 먹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도 않고 언제 머리 위로 총알들이 날아올까 염려하지도 않는 나에겐 전쟁, 하면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사회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늘 휴전상태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나도 안네처럼 은신처에 숨어지내야 할지도 모르고 서글픈 전쟁의 기록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녀다운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학창시절이 지나자 내게 있어 전쟁이란 이념과 이념, 인종과 인종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다툼이라기보다 사는 게 전쟁이다, 라는 말 속의 전쟁이란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그것은 한가로운 비유에 지나지 않았고 '나무소녀'를 읽으면서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배고픔을 느끼기에 먹는다, 는 전쟁에 관한 보다 처절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의 과테말라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던 인디오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열다섯살인 마야 소녀 가브리엘라는 어린 여동생 하나만을 남기고 모든 가족들을 잃는다.

오랜 전쟁으로 이미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된 군인들의 온갖 만행을 지켜보는 가운데 가브리엘라는 공포와 분노에 떨고 갖가지 위기를 극복하며 난민 수용소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녀는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수용소의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고 알파벳을 가르치며 나뭇가지를 꼭 붙들듯이 네 꿈도 꼭 붙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실천한다.

떠나고 싶고 도망치고도 싶지만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야인의 아름다운 영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가브리엘라는 위험에 빠질 때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영원히 나무 아래로 내려와도 좋을 때는 언제가 될까.

대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가장 선한 아이들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소리내어 웃어보지도 못하고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다가 죽어가는 아이들이 월드컵 열기로 뒤덮인 지금 이 시간의 지구촌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축제에 있어서는 한마음이 되는데 불행에 있어서는 한마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 책은 한참을 잊고 지냈던 전쟁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전쟁을 상기시켜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책이었다.

컴퓨터 오락과 MP3에 오감을 빼앗겨버린 아이들에게 한 번 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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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6-06-1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과 달리 요즘 전쟁은 민간인 사망자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더군요. 그래요, 전쟁의 피해자는 언제나 약자들이죠...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츠비 2006-06-2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드컵 열기에 감춰진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축제는 잠시고 삶은 지속되는 것인데 축제를 축제로 즐기지 못하도록 광분하는 방송들, 자기들 광고수익에서 플러스 알파를 남겨먹기 위한 장사아치들로 전락한 방송사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진정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단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면 이제서 뒷북을 치곤 하지요. 4년전 효순,미순 두 학생의 죽음처럼 말입니다.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고 봐요. 가슴에 와닿는 책 읽으셨군요 ^^

깐따삐야 2006-06-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소중한 건 다 빼놓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세상은.

sretre7님, 코앞의 즐거움에 취해 사는 것보다는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며 진실을 바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피곤한 일이긴 하죠. 그래서 모르고도 속지만 알고도 속아주는 일이 생겨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기 싫고 오래 생각하기도 귀찮으니까요. 저도 가끔 이런 책을 대할 때나 잠깐 자극을 받을 뿐 대개는 느슨하고 안이하게 지낸답니다. 다르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