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다 보면 머리가 아픈 일이 있고 마음이 아픈 일이 있는데 아이들 문제는 처음에는 머리가 아팠다가 그 통증이 마음으로 내려간다. 이번 일 역시 그렇다. 학교폭력법이 강화되면서 애들이야 싸우면서 크는 거지, 라는 두루뭉술한 해결책은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폭력의 피해자든 가해자든 중립적인 입장에서 아이들 모두를 동시에 껴안아야 하는 선생은 운신의 폭이 훨씬 좁아진 셈이다.
아이들은 정의구현이나 이익옹호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싸움이 대개 그렇듯 그냥 싸운다. 한두 마디 장난처럼 오간 말에 머리꼭지가 홱 돌아버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따로 불러 이야기해 보면 이처럼 순한 양이 따로 없다. 더 많이 해를 입은 쪽이 피해자이긴 하지만 쌍방의 잘못 없이 싸움이 일어나지 않듯 어느 사건이고 속속 파헤쳐보면 양쪽 다 갈등의 불씨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일주일간 학교 관리자들까지 대거 동원되어 양쪽 부모를 만났고 이제 해결은 가해자의 부모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정성스럽게, 진심을 다해 피해자의 부모에게 사과하느냐의 문제만이 남았다. 흥분한 어머니들은 차치하고 양쪽 아버지들이 직접 만나 해결을 봐야 할 듯 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인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담임인 내가 호흡곤란에 어깨통증으로 잠을 못 이뤄서 우황청심환을 몇 병째 들이켰나 모르겠다. 엄마는 남의 자식 일로도 이 정도인데 나중에 네 자식한테 일이 닥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나무라셨다. 어려운 일을 겪다보면 점점 단련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선생이 이러면 안되는데 그냥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힘이 든다. 이런 느낌을 고백하는 일 자체가 바보같아서 꾹꾹 눌러 참다보니 신체적인 이상 징후로 나타나고 아프다 보면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잿빛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먹을 것은 나눠주되 가까이 지내지는 말라고 했는데 말이지요." 피해자 어머니의 말이 졸렬한 적선처럼 들려서 짜증이 나는데 참아야 했고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아이가 변했다는 가해자 어머니의 말에 "어머니부터 그러신 건 아니구요?" 라고 받아치고 싶은 것도 참아야 했다. 부모들의 당당한 입장표명 안팎으로는 밥은 먹고 다니냐? 물으면 안 먹었다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부모님이랑 얘기는 좀 하고 다니냐? 물으면 잠잘 시간도 부족하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니 참 답답하다.
나도 내가 부모라는 사실이 무섭다. 훌륭한 부모는 커녕 그냥 보통 부모만 되어도 다행인데 단순히 먹이고 입히는 양육을 넘어 교육과 훈육이 필요한 시기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하다. 남편한테 미룰까. 얍삽한 생각도 해보지만 각자의 역할이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선생으로서 그간 누누이 확인해오지 않았던가. 입으로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너 자신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는 엄마 말씀이 그나마 와닿는 말이긴 한데 갖가지 스트레스를 컨트롤하지 못해 아이들 앞에서 허구언날 long face를 하고 다니니 아, 나는 멀어도 너무,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