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자 김영민의 <동무와 연인>이 재미있어 그의 다른 책도 하나, 둘 찾아 읽고 있다. 마음은 차치하고 말과 살로 소통하라는 전언이 그럴듯 하다. 보다 젊은 날, 불확실함에 상처 입지 말고 확실함에 기대어 사심없이 행복해 할걸... 강의를 사뭇 부끄러운 구애의 양상으로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그렇다. 나도 매일매일 부끄럽다. 천하의 벤야민이 마치 고양이 같은 라시스의 털실공처럼 언급되는 대목에선 책장을 덮고 싶었다. 저자의 치열한 관념의 아포리즘을 따라잡기에 나는 머리가 나쁘거나 상념이 많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2. 학급 아이 하나가 숨 쉬는 것 빼고는 거짓말이다. 위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가만가만 묵인하며 사는 어머니,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았을 누나들, 그리고 본인 입으로 순순히 고백하길, 언젠가부터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버린 이 아이.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기에 잘못이 있는 아이에게 취하는 수순을 밟으면서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켜켜이 쌓여 있을 무언가가 있을 것이기에 바라보는 나의 눈과 마음이 까마득하다.
3. 지난 한 주 동안 타이어를 찢어먹고 다른 학교로 전근가는 선생님의 그랜저를 긁어먹고, 퇴근 무렵에 두 건을 해먹었다.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라는 위로 이후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중이다. 왜 그랬나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영달이가 보고 싶어서, 공식적인 답은 나오지만 운전에 익숙해진 방만함이 가장 큰 이유다. 핸들을 잡은 채로 화장을 고치거나 차간 폭을 생각하지 않고 내달리는 것은 몇 개월 전만 해도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짓이다. 보험회사 측은 수리비용을 대주며 친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처음이니 봐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봐줍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뉘앙스의 말, 내가 아이들한테 종종 하던 말. 네네. 아무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