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근처 도시의 별천지스러운 백화점에 다녀왔고 상품권으로 사온 초밥이 맛없다고 툴툴거리며 약간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자꾸 가면 홀라당 홀리지 싶어 발길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원이 말했던 거액의 장난감이 인터넷몰에서 거의 반값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바가지 안 쓴 것에 대해 깊은 안도. 좀더 머물렀으면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위력에 나도 모르게 소비괴물로 둔갑했을 것 같다.   

  나의 첫 발령지이자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싸이코 패스 운운했고 인정 어린 추억이 많았던 나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말을 잃었다. 간만에 메신저에 접속해 그때 그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나 둘러보았다. 사랑에 눈멀어 여자친구 사진으로 온통 도배를 해놓은 아이들의 미니홈피를 보며 그 또래 너희에게 그녀와의 이별이 아닌 다음에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왔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물만두님의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물만두님의 백문백답을 읽고 마음 짠했던 기억이 있고 활발히 올라오는 추리소설 리뷰에 감탄한 적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소통하거나 교류할 기회는 없었다. 그저 만두님이 꼬박꼬박 건네시는 새해인사만 반갑게 받아챙겼던 것 같다. 건강이 안 좋으시지만 언젠간 괜찮아지실 것이고 더 나중엔 한번쯤 직접 뵐 날도 오지 않을까. 알라딘이 알라디너들에게 그런 좋은 날 한번 안 만들어주겠어. 그처럼 막연하기 짝이 없고 할랑하기 그지없는 공상 속에 물만두님이 있었다. 그 점이 지금에 와서야 아쉽고 죄송하다. 오늘 접속해 보니 알라딘에서 반가운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캄캄했던 마음에 반짝, 등이 켜진 느낌이다.   

  뽀로로 블록으로 알록달록 담을 쌓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과 첫 발령지와 물만두님이 계신 이곳.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은 나. 그 사이에도 알록달록 담이 있었나 보다. 나는 상이한 모든 곳에 머물렀지만 전혀 머무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담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오늘은 그 점이 무척이나 유감스럽다. 중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잃어선 안 되고 잃고 싶지도 않았던 것을 나는 이제 바늘 같은 계기를 통해 되새겨야만 그나마 잠시잠깐 사람의 얼굴을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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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1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이가 속되다고...투덜투덜..

깐따삐야 2010-12-16 09:45   좋아요 0 | URL
제가 저 자신과 지인들에게 건넸던 '안녕'이라는 인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나를 생각하고 부끄러웠어요.
메피님, 건강하셔요. 여기서 오래오래 뵈어요.

비로그인 2010-12-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더할 나위 없이 형이하학적이며 소비지향적이고 황금만능주의에 물질만능주의로 무장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두달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자신의 그림자가 너무 아슬해 보이더이다.
전 안녕히, 라는 인사도 못하겠어요. 그저 아무 말 없이 생각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무런 조의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깐따삐야 2010-12-16 10:00   좋아요 0 | URL
여력이 안 되어서 항상 그렇지 못할 뿐 돈 쓰는 재미가 참 쏠쏠하죠. 그런데 백화점에 가면 백화점을 아주 그냥 통째로 갖고 싶다가도 주차장의 지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탈출'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계속 머물다간 지갑은 물론 혼까지 털릴 것 같아 서둘러 빠져나오곤 한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Jude님의 마음도 알 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Jude님. 우리는 아마도 동갑인데 여기서 오래오래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