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단다. (p.63)

  어젯밤 책을 읽다가 위의 구절에서 멈칫,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엄마도 그렇지 않을까. 책 속에 묘사된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와 대한민국의 우리 엄마는 기질 상 매우 다른 사람이지만 '어머니'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겹치는 면도 많았다. 촘촘하고 건조한 레포트 같은 이 소설은 작가가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 슬픈 인상을 주었다.

  며칠 전 나의 열 마디로는 꿈쩍도 하지 않던 남편이 엄마의 나직한 한 마디로 신선한 변화를 보였다. 그의 눈빛과 몸짓이 동시에 전율했던 것을 잊지 못하겠다. 엄마는 신기해하는 내 반응에 잔소리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백년 묵은 신령님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렇지! 하면서도 몰라서 못하나, 못해서 못하지, 했더랬다.  

  엄마를 보면 어른 노릇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어린 것들이 어른 대우 안 해준다고 징징대는 나이 허투루 잡순 어른들도 종종 보았다. 그렇듯 서운한 것을 서운하다고 거침없이 내색할 수 있는 어른들은 어찌보면 그릇이 딱 고것 뿐이라는 건데 그 어린 것들에게 부담갈까봐 먼저 배려하고 보살피고 하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구절이 성경에 나오던가. 내가 생각한 결론은 부단히 바지런해야만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죽으면 썪어 없어질 몸, 놀면 뭐하냐는 엄마의 지론은 의당 그럴듯하지만 어디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젊으나 늙으나 비빌만한 데 있음 비비고 싶고 누울 데 보면 다리 뻗고 싶지. 편한 것 찾는 그 본능을 거스르면서 긴장과 노고를 감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니 사람 노릇, 어른 노릇 제대로 하느니 그냥 좀 뻔뻔해지고 마는 쪽을 택하는 부류도 비일비재. 그뿐인가. 어른 노릇 잘하는 어른 치고 대우 받으려고 하는 어른 못 봤고 대우 받을 것부터 생각하는 어른치고 어른 노릇 제대로 하는 어른 또한 못 봤다.  

  난 항상 손발을 놀리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드러눕고 싶었단다.   

  오늘은 한트케 어머니의 말이 우리 엄마 목소리로 자동번안 되어 들리더라는. 입으로는 쉬라고 말하면서도 오징어 튀김이 먹고 싶다고 조잘거리는 딸내미에게 엄마는 결국 새우깡맛 나는 고소한 오징어 튀김을 만들어 주셨다. 바삭하고 쫄깃한 오징어 튀김을 씹으며 페터 한트케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이라도 남겼는데 나는 나를 닮은 극성맞고 고집센 손녀딸만 안겨주었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그래도 오징어 튀김은 눈물나도록 맛있고 엄마가 계속 어른 노릇을 잘 좀 해줘서 내가 편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결국 여차저차 잘난척을 해봤자 나는 엄마 딸인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11-2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맞아요, 깐따삐야님. 여자처자 잘난척을 해봤자 저도 결국 엄마 딸이에요.
그래요.

깐따삐야 2010-11-29 09:11   좋아요 0 | URL
그렇죠? ^^

BRINY 2010-11-2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심히 공감합니다.

깐따삐야 2010-12-01 12:07   좋아요 0 | URL
딸들은 왜 그런 걸까요. 에휴.ㅠ

BRINY 2010-12-04 09:47   좋아요 0 | URL
아들이라고 다를 거 없어요...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나봐요.

깐따삐야 2010-12-04 12:32   좋아요 0 | URL
사람 나름이겠지만 아들은 더한 것 같아요.ㅠ 품안의 자식이 맞는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