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을 처음 발견한 건 스무살, 기숙사 도서관에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지학사에서 나온 문학참고서에서 짤막한 수필을 미리 맛본 적이 있었지만 단행본으로 만난 건 그때였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처럼 전혜린 역시 그 또래 젊은 여성에게 확실히 어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후로 그녀가 남기고 간 두권의 에세이집을 모두 읽었고 그녀의 친구였던 이덕희 여사가 쓴 전혜린 평전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전혜린, 그녀의 책들과 멀어졌다.    

  이 책은 개정판인 줄도 몰랐고 그저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픽션으로 되살려놓은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 구입한 책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전혜린이 살아있다면 -물론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말이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말을 2/3 쯤 믿는다면 글이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말을 나는 반만 믿는 편인데 전혜린을 바라보는 내 관점도 그렇다.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채 이해하기 힘든 은유와 방황으로 가득한 글을 쓴 여자가 그 다음날 역시 헤매일 거란 생각을 나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사 완벽과 완전을 지향하는 자,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동선이 아니므로 자기애의 화신인 전혜린과는 맞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은 작가의 곡진한 첨언에도 불구하고 전혜린에 대한 다른 상(像)을 갖고 있던 나라는 독자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 만 소설인데 덜컥 이벤트에 당첨되어 PDP를 받게 되었다. 알라딘에선 어떤 책을 구입하면 이벤트에 자동 응모가 되는 모양이다. 메일을 받고 처음엔 사기인가, 그래도 알라딘인데, 아냐 혹시 몰라, 확인 전화를 해봤는데 사실이었다. 디지털 문명에 무지하고 무심한 탓에 PDP도 말로만 들어봤고 근래 유행한다는 트위터, 스마트폰도 먼 산 바라보듯 그런갑다, 했는데 이 정도면 거저 줘도 못 쓰게 생겼다.   

  더욱이 사람 마음이 참 거시기 한 것이 이 책에 대해 한 마디 안 하면 그나마 영달이 낳고 한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이 더 빠질 것 같은 노파심이 스멀스멀 생기더라는 것. 그런데 그 또한 거시기 한 것이 이 책을 기획하고 쓰고 내놓은 이들의 노고에 상관없이 나의 기대에 상응하는 책은 아니었다는 것. 당첨자 명단에 1등으로 올라와있는데 마치 내가 이 책을 1등으로 샀거나 1등으로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무도 아무 생각 안 하는데 혼자 이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그냥 좋아하면 그만인데 워낙에 공짜라곤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인생이다 보니 행운을 안겨줘도 마냥 후덜덜이다. 어쩌면 전혜린과 PDP가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무관한 개체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다.   

  담배는 끊어도 변명은 끊지 못하는 남편에게 <채근담>을 읽히려고 주문했는데 PDP도 함께 선물해야겠다. 나는 사람이고 기계고 복잡한 건 질색인데 이 기계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려고 한다. 차분한 척 산만한 남편에게는 좋은 장난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채근담과 장난감을 함께 주는 아내라니. 나는 꿩먹고 알먹고 한다고 생각할테고 그는 병주고 약주고 한다고 생각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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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0-2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DP면 TV 아닌가요? 아닌가? 나도 모르는새 PDP라는 기기같은 게 생긴건가?
뭐 이런 걱정을 잠깐 해봅니다. ㅎㅎ

힝. 그나저나 축하해요 깐따삐야님. 부러워요 부러워. ㅜㅜ

깐따삐야 2010-10-25 09:54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TV인줄 알았는데 PDP라는 기계가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PMP 비스무레한 건가 봐요.

저는 기계 종류에 별 관심이 없는지라. 먹는 거나 읽는 게 좋은데.ㅋ 그래도 알라딘과 출판사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