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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기다리다
코이께 마사요 지음, 한성례 옮김 / 창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했던 건 함민복 시인이었다.
<타따도>의 연인들은 관계의 경계를 너나들며 누가, 누가 우리 좀 떼어놔주지 않겠어요? 라고 바란다.
<파도를 기다리며>의 여인은 파도를 타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누군가의 시체가 해변에 밀려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45자>의 오가따는 갇힌 방과 달리는 길의 경계에서 계속 달리고 싶지만 이번에는 세상 밖으로 나가버릴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언덕 무리>의 나는 아들이 사라진 현실과 아들이 돌아온 환상의 경계에서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종이비행기를 모두 날려보낸다.
코이께 마사요는 카와바따 야스나리상 수상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여기 실린 네편의 소설은 매우 시적이고 탐미적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아두고는 그들의 정황과 공상, 독백을 통해 관능적인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그 꽃을 한번 만져보고 싶도록 매혹한다. 손을 대는 순간, 그 꽃은 검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음과 허무의 향을 짙게 피워올릴 것 같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끝이 날카로워서 싸울 수도 있을 정도야. 그러니까 절대로 사람을 향해서 날리면 안돼. 맞으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종이에 곧잘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잖아. 종이는 부드럽지만 흉기가 되기도 해(p.213).
경계를 넘어서며 제 힘으로 멀리까지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에 감탄하는 아이를 향해 <언덕 무리>의 내가 충고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윤리적인 대목인데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아름다움에 매혹되긴 해도 그것에 천착하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