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었다
- 나희덕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에서 뱀이 울고 있었다. 방울소리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한 울음소리. 아닐 거야. 뱀이 어떻게 울겠어. 뒤돌아서면 등 뒤에서 뱀이 울었다. 내가 덤불 속에 울고 있는 것인가. 뱀이 내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에 가려 뱀은 보이지 않았다. 덤불은 말라가며 질겨지고 있었다. 그는 어쩌자고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산을 내려오는데 울음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왔다. 뱀은 여전히 덤불 속에 있었다. 가을이었다. 아무하고도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가을이었다. 다음 날에도 산에 올랐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을 들여다보면 그쳤다 뒤돌아서면 다시 들리는 울음소리. 덤불이 앙상해질 무렵 뱀은 사라졌다. 낯선 산 아래서 지낸 첫 가을이었다.
긴 페이퍼를 쓰다가 이 시가 생각났다. 볕이 좋은 날이었다. 빨래는 바삭하게 말랐고 친정엄마는 뱅어포에 고추장을 발라 내어널었다. 영달이와 나는 그림자놀이를 하며 놀았다. 땅에 비친 두 사람의 크고 작은 실루엣, 손가락의 재미난 움직임들에 영달이는 좋아라 했다.
하늘은 곱고 일상은 변함없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