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카뮈를 알게 되고 한창 좋아할 무렵, 고려대 학생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수강신청을 해서 김화영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카뮈 연구를 집대성한 <문학상상력의 연구>는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마치 지중해의 과일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저자의 육성으로 책 속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내 심신은 부드러운 스폰지처럼 한 마디, 한 마디,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흡수할 것만 같았다.  

  조선일보에서 장영희 교수님의 칼럼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질투가 일었다. 서강대 영문과 학생들은 섬세하고 인간적인 에세이스트이자, 쾌활하면서도 사려 깊은 스승으로서의 장영희 선생님을 매일 만나겠구나 하고. 목발에 기댄 채 문학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 그곳의 학생들은 단지 지식뿐만이 아니라 삶에 임하는 자세까지 배우겠구나 싶었다.     

  이번 책은 장영희 교수님 1주기 추모 기념으로 발간된 책이다. 미발표된 수필, 저자가 좋아했던 영시와 번역, 고인을 아꼈던 이들의 추모글 등이 실렸다. 기존에 나와 있는 고인의 책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렇듯 비슷한 느낌이어서 반갑고 가슴 뭉클해지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장영희 교수님의 아버지인 장왕록 교수님의 번역으로 나온 <달과 6펜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자마자 무작정 좋아져버린 책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부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장 실려 있다. 세 살짜리 딸내미를 안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함께 문학의 길을 걷고 나중에 같이 교과서를 만들게 되는 부녀. 내가 엄마가 되어서 그런가. 그 흑백사진 한장이 되게 애틋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은 초췌한 낯빛을 감출 수 없음에도 항상 열정적인 어조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곤 했다. 사석에서 어린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땐 그 어조와 눈빛에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더해져 수줍은 애정을 드러내셨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진솔하고, 인간적이고, 아름답구나. (연락도 하고 찾아가고도 싶은데 아, 내가 좀 많이 변했다. 살도 빼야 하고!)

  언젠가 <위대한 개츠비>의 리뷰를 쓰며 개츠비의 위대함은 시대착오성에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책에서 개츠비의 위대함을 아주 제대로 알았다. 저자 피츠제럴드가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를 꼭 집어서 말한 적이 있단다. '희망을 가질 줄 아는 비상한 재능,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 extraordinary gift for hope, a romantic readiness, capacity for wonder'(p.166) 이라고. 역시 개츠비는 시대착오적이다. 더불어 그는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주인공이다. 장영희 교수님의 삶과 글 또한 그러하다.  

  모처럼 이렇듯 진실한 사람, 착한 글을 만나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슬프다.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될까봐서 매번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 곧 나의 길이 되면 좋으련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마음 지키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이미 내 서정은 많이 말라버렸다. 언젠가 슬프지도 않게 된다면 그것이 더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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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1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나, 내생애 단한번이었나, 를 읽으면서 서강대 영문과 학생들을 정말 부러워했었어요. 게다가 저 아는 분은 실제로 서강대 영문과 출신이어서, 장영희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저도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웠으면서, 또 이럴 땐 남의 떡이 커보여요.

그래도, 깐따삐야님은 스스로를 잘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인걸요. 이제 영달이가 깐따삐야님께 더 많은 희노애락을 선사해주지 않겠어요? 서정이 말라버리는 일은 없을 거에요. ^-^

깐따삐야 2010-05-14 15: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역시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웠으면서 항상 남의 떡이 커보인다죠.

웬디양님, 그나저나 몸은 많이 좋아진 거에요? 그새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오려나봐요. 우리가 봄에 만나서 그런가. 나는 항상 훤칠하고 싱그런 봄처녀로 웬디양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만남도 참 '서정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