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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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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 때 우리 과에 편입해 온 언니 중에 소위 연애박사 언니가 있었다. 어디 하나 또렷하게 생긴 데가 없을 만큼 타고난 외모는 별로인데 후천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공들인 덕분에 자기만의 아우라를 지니게 된 케이스, 그런 사람이었다. 다 함께 근교 계곡으로 MT를 갔던 날 밤, 언니는 대개 연애 경험이 미천하기 짝이 없던 우리 동기들을 모아놓고 사랑과 연애에 대한 본격 멘토링에 들어갔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자는 초콜릿이다』처럼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몇몇 사례 분석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현실에는 무지한 채 연애를 향한 환상 또는 망상만 키우고 있던 나로서는 오감을 바짝 집중한 채 재미나게 경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조그만 열쇠고리 하나를 보여주며 바로 이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사진 속 남자는 연하의 영국인이었고 조만간 함께 영국으로 떠나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니는 그 남자가 자기가 찾던 이상형과 가장 부합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바글바글 넘쳐나는 순수 토종 한국인과의 연애도 버겁기만 했던 나로서는 그 언니를 벌써 외국인이라도 된 것처럼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잠깐 동안 그 언니를 떠올렸다. 항상 빈틈없는 메이크업에 치마를 즐겨 입던 언니는 정박미경이라는 이 책의 저자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인 것 같지만 연애를 통한 진화를 믿는다는 점에서 중첩되는 면이 있다. 그 아무리 어리석고 지질한 연애일지언정 버릴 것이 없다는 면학의 자세. 물론 숱한 언니들의 단내 나는 멘토링에도 불구하고 이십대 전반을 멍청한 연애질에 소모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연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똑똑한 여자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사이클을 반복하거나 작용, 반작용의 원리마냥 역으로 방향만 트는, 좀 모자란 연애군에 속하는 사람 말이다. 어렸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간신히 용서하긴 했지만 그렇듯 전략은 없고 감정만 있는 연애란 들어오는 패에 상관없이 파투나기 십상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더욱이 한 가닥씩 한다는 연애타짜들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참 겁도 없는 하룻강아지였던 셈.

  이 책에는 그러한 끗발 좋은 연애타짜를 비롯하여 들어온 패가 빤히 읽히는 연애초짜의 케이스까지 일곱 가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본인의 처녀성에 회의하는 여자, 남성 혐오증 여자, 연하남에 꽂히는 여자, 네 다리를 걸치고 있는 팜므 파탈, 애인에게서 가족성을 추구하는 여자, 남자에게 구원의 존재가 되고픈 여자, 권력 있는 남자에게 끌리는 현대판 카미유 클로델...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연애 케이스를 통해 당사자인 남녀의 심리와 사회학적 구도까지 들여다본다. 확대경 같은 세심한 성찰에 뜨끔 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터.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이 시대에 비혼의 삼십대 여성이란 고달프지만 당당한데 상대 남자들은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왜 하나 같이 이기적이거나 비겁한 존재들로 그려지고 있는지 웃음이 난다. 세월을 먹는 동안 남자들의 구리고 후진 면을 너무 많이 간파했기 때문일까. ‘똑똑한 여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가 마치 이 책의 소제목 같다.

  나는 성찰은커녕 성질만 남은 연애에 질리거나 지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착했지만 미혼이거나 비혼인 여성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 사례나 충고들이 다소 식상하다 할지라도 좀 더 많이 살고 연애도 해볼 만큼 해본 언니의 명징한 경고로 의미 있게 와 닿을 것 같다. 기왕 연애하는 것, 좀 잘해보자는 것이다. 피투성이, 혹은 흙투성이가 된다 해도 연애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리며 사나이 갈 길 방해하는 이다해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그 귀찮은 손 놓지 않는 오지호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촌각을 다투는 대업을 앞두고도 키스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그 징글맞은 로맨틱함이라니. 이 책을 통해 그 눈 뜨고는 못 볼 로맨틱함 이면에 연애의 어떤 얼굴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도 가치 있으리라 본다. 타고난 기질 상 이 책 한권으로 연애타짜까지는 못되더라도 연애하지 말 걸 그랬어~ 괜히 연애했어~ 칭얼대는 일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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