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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해 겨울, 주기도문도 채 외우지 못하던 나는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다. 오빠, 그리고 매일 함께 놀던 동네 언니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년 구세군에서 준비하는 크리스마스는 마을 아이들의 축제였다. 그 날 밤, 오빠는 촛불을 들고 무언가를 낭송했고 나는 옆집 기옥이 언니와 울면 안 돼, 춤을 추었다. 너는 너무 어려서 안 돼. 처음에는 노래도, 춤도, 아무것도 시켜주지 않았는데 누군가 한 명이 빠지게 돼서 그 역할을 내가 맡게 되었다. 언니들이 울긋불긋 화장을 해주었고 하얀 스타킹에 발레복처럼 생긴 무용복도 입었다. 춤을 추다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대 아래에는 엄마가 와 있었다. 엄마는 내가 깜찍하게 춤을 잘 추었다고 뿌듯해 하셨다. 근데 엄마, 왜 다 함께 기도합시다, 할 때 엄마만 눈 안 감았어? 엄마는 기도 안 했어. 내가 보기엔 기도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엄마였는데 엄마는 참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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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깨어보니 아빠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빠가 내 코 밑에 닭다리를 갖다 대고 간질이고 있었다. 냄새 맡고 일어날 줄 알았어. 밤늦게 퇴근한 아빠가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사오셨다. 아빠가 사온 치킨은 호프집에서 맥주 안주용으로 바짝 튀긴 통닭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늦은 퇴근과 나의 소아비만을 걱정했지만 나는 아빠가 술 한 잔 하고 통닭을 사오는 겨울밤이 참 좋았다. 방안에 솔솔 퍼지며 깊은 잠도 깨우던 고소한 통닭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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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동아리 건물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었다. 기숙사 근처에서 Y와 K가 내 이름을 부르며 올라왔다. 방학 중의 만남이 반가워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데 어라, 멀리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저 사람. D선배였다. 친구들이 먼저 알아보곤 호들갑을 떨었다. 따뜻한 캔커피를 뽑는다, 동아리방으로 올라간다, 선배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네 선배라는 남자, 하체가 너무 부실한 것 아니냐는 K의 농담에 구박을 날리며 잔뜩 붉어진 얼굴로 그 자리를 떠났다. 눈발이 폴폴 날리던 추운 날이었는데 주변의 찬 공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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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네요! 산성의 굽이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굳이 걷자는 이유는 뭔가. 구두창이 미끄러웠지만 그의 손을 잡거나 팔을 붙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심해요, 라며 내 팔을 붙잡은 건 그였다. 추위와 긴장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스울까봐 되도록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계획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럼에도, 거리 한번 좁혀보겠다고 이 추운 날, 이러고 있는 남자에 대해 웃음이 났다. 눈을 기다리는 이유도 참 여러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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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 슈가 파우더를 흩뿌려놓은 듯한 달콤한 경치 감상도 잠시. 가족의 출근길과 외출이 염려되는 날씨였다. 채 눈이 녹지 않은 오전에는 꼼짝도 안하고 집에서 김치부침개를 부쳤다. 볕이 들기 시작한 오후에는 아크릴판으로 뭔가를 제작 중인 남편이 공구를 산다길래 마트에 따라갔었다. 딸기가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한 팩 샀는데 기대보다는 단맛이 덜했다. 주말 오후라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나저나 요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듯, 어쩐지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머잖아 내가 발을 떼는 순간,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서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겠지.-_- 어제는 눈도 오고 하여 <크리스마스 캐롤>을 보러 갔는데 디테일이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지나치게 충실한 것이 흠이었다. 매우 교훈적인 호러 무비라고 볼 수 있음. 관객은 딱 네 명. 아, 내 안에 한 사람 더. 이제는 오래 같은 자세로 앉아 있기도 힘들고, 눈이 와도 호젓한 기분에 젖기보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더 염려하는,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