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써놓고 보니 뭐 요리랄 것까지야... 하는 생각. 예전에 레토르트 식품 광고를 보며 달랑 3분 요리 해주고 요리사 소리 듣는 엄마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의 내 식생활을 보면 엄마가 만드신 완제품을 가스 불에 데우는 정도이니 광고 속 주부와 다를 것이 없다. 요즘은 임신을 핑계로 만둣국에 얹을 파와 계란 지단까지 엄마가 썰어다 주시니 참 한가한 손모가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편도 엄마 손맛에 길이 들어서인지 늘 소식을 주장해오던 사람인데 먹는 양이 많이 늘었다. 결혼 전에 자취를 하면서는 주로 밖에서 먹고 들어오거나 혼자 먹을 분량만큼만 만들어서 먹곤 했다고 한다. 그는 마음먹으면 음식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입덧이 심해 주방 근처에도 못 갈 때는 손수 볶음밥도 해주고, 김밥도 싸주고, 특히 김치나 부추를 넣고 만드는 부침개는 나보다 보기 좋게 잘 부친다. 언제 김치 한 번 담가보시지, 했더니 장모님이 하시는 거 옆에서 한번 보면 담글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만만하다. 엄마도 이제는 음식을 건네시면서 남편한테 당부를 한다. 이거는 가자마자 냉장고에 넣고, 생선 구울 때는 얘가 둔해져서 혹시 모르니까 자네가 하고... 가스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프라이팬 손잡이를 건드려서 몇 번 뒤집은 적이 있는 나를 못 미더워하시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을 봐서 뭘 좀 해볼까 싶다가도 왠지 재료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관둘 때가 많다. 엄마는 알뜰하게 장을 봐서 혹시 부족한 재료가 있어도 맛있게 만드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는데다 혹시 실패하면? 남는 재료들은? 괜히 쓰레기만 만드는 거 아냐? 그러저러한 노파심에 에잇, 그냥 얻어다 먹자, 마음을 접는다. 엄마는 먹어본 게 있으면 나중에 다 잘할 수 있다고, 자꾸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솜씨는 는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는데 나는 이러다 3분 요리 광고 속 그 엄마가 될까봐 좀 불안하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뭔가를 만들면 항상 맛있다고 한다. 김치는 물론이고 매일 먹는 국과 밑반찬까지 몽땅 얻어다 먹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도 음식을 하기는 한다. 엄마가 소고기로 육수를 내주시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그것으로 미역국도 끓이고 무국도 끓인다. 사골 육수로는 만둣국이나 떡국을 끓인다. 어설프긴 하지만 본 건 있어가지고 김 가루도 고명으로 올리고 지단도 부쳐 올린다. 혹시 사골 육수가 남으면 김치찌개 끓일 때 사용한다. 돼지고기, 적당히 시금시금해진 김치, 사골 육수, 세 가지면 다른 것을 넣지 않아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멸치 육수로는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끓인다. 된장찌개에는 주로 두부, 버섯, 감자 등을 넣고 청국장에는 두부하고 김치만 넣는다. 여름에는 호박 넣고 끓여야 맛있던데 요즘은 감자가 별미더라. 특히 나는 청양고추를 꼭 썰어 넣어서 약간 칼칼한 맛을 즐긴다. 그런데 다른 재료 다 좋아도 된장이 맛없으면 된장요리는 말짱 맹탕. 반드시 집된장이거나 시판되는 된장 중에서도 집된장 맛이 나는 된장이어야 한다. 어쨌든 몇 가지 국물 요리를 해본 결과 육수가 맛있으면 절반의 성공은 장담할 수 있다.  

  그밖에도 가끔 카레도 끓이고, 불고기도 하고, 기본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하는데 자신이 없는 것은 밑반찬과 나물 종류다. 우리 집에 꾸준히 있는 반찬이 멸치, 새우, 오징어채 볶음인데 내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다. 엄마가 하시는 것을 구경은 많이 했는데 빛깔 내는 것도 그렇고, 보아하니 마늘, 대추 같은 것도 저며 넣어야 하고, 의외로 귀찮더라는. 시금치나 고사리 같은 나물류도 그렇다. 얼마나 데쳐야 하는지, 들기름과 마늘 다진 것은 언제,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 쉽다는 콩나물 무침도 아직 안 해봤다. 레시피만 알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 

  상태가 이런데도 생각은 야무지다. 앞으로 시어머니 생신이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이번에 생신 상을 한번 차려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년에 아버님 생신상은 어머님이 차리셨고 어머님 생신상은 시누이가 대접했다. 그때 나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 생신 때는 제가... -_-;; 나는 빈말을 하거나 공수표 날리는 일을 스스로 금하는 편인데 그만큼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거나 잊어버리는 일에도 능숙하지를 못하다. 아직 만삭인 것도 아닌데 결혼해서 처음 생신상 한번 차려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엄마처럼 입맛 까다로운 분은 자신이 없지만 다행히 시부모님들은 내가 미역국에 계란을 풀어도 아마 잘했다고 하실 거다.

  엄마한테 이 사태를 고했더니 도와주시겠단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다 하는 게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는데 이번에 불고기와 잡채 정도는 완전히 마스터 해야지. 굴비나 조기 같은 생선을 굽는 것만 하지 찌는 것은 잘 못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배워야겠다. 아, 나는 음식을 정말 잘하고 싶다. 입덧할 때 밥맛이 없어서 외식을 연달아 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는 못 살겠더라는. 나처럼 집밥에 인이 박힌 사람은 시대가 변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내 입의 즐거움, 내 몸의 건강을 위해 기본 음식들을 배워놓아야만 한다. 친구들이 온다고 해도 겁내지 않고, 친척들이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고,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음식을 그 날로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음식을 잘하는 것도 자신감, 또는 행복의 한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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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 역시 음식엔 거의 문외한 잼뱅이 수준이었는데...
이젠 무침류나 밑반찬류는 꽤 완성도가 높게 결과물이 나온다죠.
특히 윤기 좔좔 흐르는 연근 조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만....
아직도 국물내는 요리는 제가 한 수 위........에요..호호

깐따삐야 2009-12-02 12:25   좋아요 0 | URL
아, 저 연근조림도 좋아하고 우엉조림도 좋아하고 장조림도 좋아하는데! 만들지는 못한다는.-_-
메피님은 역시 마당쇠다운 실력을 뽐내시는군요. 이제 냄비요리의 계절이 왔으니 마님을 위한 밥상을 준비해 보시와요.^^

레와 2009-12-0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나물 무침,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 (^^;;)

독립을 하고 내 손으로 매끼를 챙기다 보니, 한그릇 음식이 편해졌어요.
뭐든 30분이내에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입맛 없을때는 무조건 상추쌈! ㅎ

언제였는지.. 제가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말입니다.(풉~)
현실은.. (먼산____________________ ( ")

깐따삐야 2009-12-02 12:30   좋아요 0 | URL
험... 전 콩나물국도 어렵더라구요. 먹을만 하긴 한데 집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에요. 뚜껑을 계속 열거나 닫아놓고 끓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뭔가 미진한.ㅠ

저도 자취할 땐 빨리 해서 빨리 먹고 치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상추쌈도 편하고. 요즘엔 구운김에 달래간장이 맛나더라구요.

현모양처, 아예 꿈도 꾸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아요. 레와님은 결혼하면 아주 재미나게 사실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