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천에 있는 ‘이원아트빌리지’에 다녀왔다. 건축가인 남편과 사진가인 아내가 ‘마을만들기’를 주제로 조성한 문화공간이라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마을 안에는 주인 부부와 우리뿐인 듯했다. 아기자기한 공간을 둘러보면서 처음 이런 곳을 꿈꾸고, 설계하고, 하나씩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림과 조형물을 배치하면서 행복해했을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복 받은 일이기도 하고 많은 것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작가 김홍신이 그런 말을 했다. 글쓰기는 영혼을 출렁거리게 하는 일이라고, 써놓은 글을 읽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그 갈증 때문에 계속 쓰게 된다고. 그는『인간시장』을 썼고,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제는 환갑을 넘겼다. 그런데도 눈빛에서는 앞으로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반짝거렸다.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게을러지는 것도 싫고, 살찌는 것도 싫고, 별로 한 일도 없이 밥은 왜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얘기가 달라지려나. 하지만 출퇴근이 없는 지금, 갑작스럽게 주어진 긴 여유에 점점 멍해지는 것 같다. 쇼핑과 취미생활로 소일하며 하늘하늘한 가운을 걸친 채 아파트 광고에나 나올법한 럭셔리 주부의 생활은 내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그저 내 밥은 내가 벌어먹어야 마음이 편하고 그밖에 다른 식의 주체적인 삶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어떤 면에서는 무지몽매한 사람인 것 같다.
유시민의 신간을 읽다보니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는 말이 눈에 띈다. 그래서인가. 결혼하고 짐을 꾸리면서 세 개의 책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그것도 선별한답시고 선별을 해서 가져왔는데 다시 손이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과거에 두근대는 감흥을 주었던 책들이 점점 죽은 장식물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것, 새로운 것, 하면서 또 다시 책을 찾는다. 하지만 요즘은 참 잘 만났다, 싶은 책보다는 잘못 질렀구나, 싶은 책들이 더 많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 안목이 변한 것일까.
고3 아이들 덕분에 반백수가 되어가는 남편이 끄적끄적 그림을 그렸다. 어제 미술관에 다녀오더니 필 받은 건지 미래의 우리 집이라고 그려놓았다. 나름 배산임수 지형이라고 설명하는데 내 눈엔 테니스코트만 보인다. 마치 미술치료를 하는 선생님처럼 그림 속에서 남편의 욕망을 엿본다. 한 가지 사실은, 사는 동안 우리는 참 유치해졌다는 것.
>> 접힌 부분 펼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