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마트에 들러 보니 수능 대박 기원 초콜릿 홍보가 한창이었다. 빼빼로데이까지 겹쳐 그 어느 때보다도 전시가 화려했다. 남편이 고3 담임인지라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남학생들이니 먹으면 든든한 초코바 같은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고 남편도 그럴까, 동의한다. 그런데 새로 나온 BALLI라는 초콜릿이 눈에 띈다. 포장도 예쁘고 맛도 괜찮다. 아이들 몫을 사고 우리 것도 몇 개 더 샀다. 남편은 오늘 수험표와 함께 초콜릿을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열아홉 살, 수능만 끝나면 다시는 수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팔자라는 게 그렇지가 못하다.
그 날 역시 수능한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꽁꽁 추웠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는 수능 전날 집으로 돌아왔고 거의 한숨도 못 잔 채 일찍 일어났다. 허기도, 피곤도 느껴지지 않는 긴장된 아침이었다. 아침밥을 반 공기쯤 먹고 나서 보온도시락과 준비물들을 챙겼다. 제대를 했던 오빠와 근처에 살던 사촌오빠가 시험장까지 나와 동행했다. 기숙사 후배가 응원 선물로 준 목도리를 칭칭 싸매고 교실로 들어섰다. 같은 학교 친구들 몇몇과 함께 그 학교 음악실에서 시험을 봤다. 별실인데다 맨 끝 반이다보니 다른 반보다 인원이 적었고 쉬는 시간에도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시험이 시작되자 긴장했던 마음은 도리어 편안해졌다. 수리탐구1 시간에 옆 분단 아이 하나가 답안지를 밀려 썼다고 울상을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종이 친 다음이라 감독관도 어쩌지를 못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황급히 답안지를 확인했고 이어지는 점심시간. 숱한 모의고사에 단련된 덕분에 다들 조용히 수다를 떨며 여유 있게 도시락을 먹었다. 남은 3, 4교시도 순탄하게 흘러갔고 마지막 시험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학교 전체가 웅성웅성. 생각보다 시험이 쉬웠는지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 표정이 밝았다.
나를 발견한 오빠가 수고했다, 시험은 어땠느냐고 물었고 나는 답을 맞춰보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딱 그 마음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ebs에서 하는 수능해설방송을 보며 가채점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수험표 여백에 답을 적어가기도 하던데 그럴 정신이 없어서 그냥 푼대로 채점을 했다. 나중의 결과는 수리1에서 한 문제를 더 맞힌 것으로 나왔다. 그래도 원하는 학교에 가기엔 아쉬운 점수였다. 당시 나는 오빠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오빠는 며칠을 컴퓨터 앞에서 고심하더니 학교는 아쉽지만 전공은 바꾸지 말라고 했다. 원서도 오빠가 넣고 왔다.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발표가 예정보다 늦게 나는 바람에 면접을 준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짜증났던 순간도 떠오른다.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는 우리 집과 같은 동네에 있다. 친정 바로 부근이다 보니 근처를 자주 지나게 되는데 밤 열한 시가 넘도록 온 교실에 불이 환하다. 마치 푸른 죄수복처럼 보이는 교복을 입고 이른 아침, 늦은 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로 가득이다. 선배들에게 농구장을 내준 저학년 아이들이 옆에 있는 중학교 농구장에 와서 농구를 하는 모습도 본다. 운동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얼굴이 검은 아이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 점은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도 마찬가지다. 치아와 눈의 흰자만 하얀 양궁부 아이들을 빼놓곤 다들 창백한 편. 커튼 친 교실, 야간 학습에 길들여진 탓에 노랗게 뜬 잎새들 같다.
나 역시 고3을 힘들게 보냈지만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힘들어 보인다. 우리들 중 아무도 반드시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시 했던 것 같다. 교사가 된 후 내가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자율학습 시간에도 자율학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 관해서이다. 시험이 코앞인데도 책상 위를 깨끗이 비워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새것과 다름없는 교과서는 치워두고 학원에서 뽑아준 예상문제만 열심히 푸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질문을 해오면 우선 교과서부터 다 읽고 나서 문제를 풀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그러다보면 매일 저녁을 컵라면이나 닭꼬치로 때우며 엄청난 학습량과 피로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심신만 허약해질 뿐, 학년이 올라갈수록 좌절감은 는다.
곁에서 보면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실로 엄청나다. 혼자 공부하다가 뭔가 잘 안 풀려서 받는 스트레스와 외부 요인들에 의해서 받는 스트레스의 갭은 크다. 공부도 재능이고 기술인데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어도 일단 학원은 다니고 본다. 이유를 물어보면 다른 아이들도 다 다니고 있고, 그나마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말들이 돌아온다. 작금의 현실을 볼 때 그 말이 어찌 틀렸다고 할 수 있겠나 싶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보며 혀를 내두르기 전에 그 불안의 원천이 바로 어른들의 잘못이란 걸 인정한다면 말이다.
그 와중에도 이미 교사가 가르칠 범위를 넘어선 뛰어난 아이들부터, 이 손 저 손에 이끌려 다니며 스트레스만 잔뜩 학습한 딱한 아이들까지, 어쨌든 내일 한 날 한 시에 시험을 친다. 청춘불패라는 말은 그냥 멋들어진 위로가 아니다. 수능에서도, 수능이 끝나서도, 계속 힘을 내시라. 누구든 자기 몫의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