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시 주말이구나. 시간은 속사포 같고 쉬고 싶단 생각이 들 때 즈음 기막히게 찾아오는 주말. 신입생들끼리의 다툼이 잦아 더듬이를 곧추세운 채 일주일을 보냈고 드디어 실장과 부실장도 선출했다. G-드래곤의 실명을 잘못 말해서 실컷 망신을 당했고 당최 컨셉불명의 급식 메뉴에 대해 함께 흥분하기도 하며 알콩달콩한 시간들을 보냈다. 아이들 때문에 힘도 들고, 또 아이들 덕분에 웃기도 하는 그런 나날들이다.
목청 하나만큼은 타고난 덕분에 목이 아프다가도 하루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지는데 병원을 다니는 동료 선생님을 보고 큰 마음 먹고 기가폰을 샀다. 당신 것도 하나 사라고 했더니 남편은 자기는 아직 괜찮단다.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 남편도 목을 많이 쓰는 편인데 고3 교실은 잔소리를 안 해도 아이들이 척척 알아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학교보다 편하단다. 그 점 참 부럽다. 나는 만발하는 질문들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도 금방 자라겠지. 그나저나 막상 최신형의 기가폰을 사놓고는 사용을 거의 안 한다. 확실히 에너지는 절약되는데 나와 내 목소리가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 아이들과 나 사이에 불투명한 막이 끼는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둔 Y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편지와 스카프를 보내왔다. 하늘색 편지지와 화사한 스카프 색상에서 봄을 보았다. Y의 존재와 Y의 삶은 가끔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는 좋아하는 소설책의 한 페이지 같다. 그녀는 소신껏 살고 있다. 소신껏 사는 척하기는 쉬워도 정말 소신껏 산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학교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이러저러한 잡음들에 갸웃거려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 스스로를 향해 상기시키는 것은 소신이다. 내 마음은 수천 평의 갈대밭이더라도 외면상으로는 항상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리 되도록 노력하는 것. 요즘 나의 화두다. Y의 소설은 어느 문예지의 최종심에 올랐다. 더욱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며 그녀의 건필을 빈다.
옆자리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의 생일 날, 혼자 여행을 떠나고 늦게 퇴근해서는 혼자 소주를 마신단다. 너무나 심상하게 말씀하셔서 선생님은 참 무던하신가 봐요, 라고 했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무던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사흘 낮밤 안 재워가며 바가지를 긁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겠다는 체념. 그 선생님도 왜 불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불만해봤자 안 바뀌니 내버려두게 된 것이다. 묻어둘 뿐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게 아니란 걸 금방 알 텐데 말이다.
직업이 주는 보람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에 오늘 어떤 아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보람을 느끼세요? 그럼. 언제요? 너희들이 수업시간에 활발히 참여하고 열심히 할 때지. 우리가 잘 못하면요? 잘하게끔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지. 그런데도 계속 못하면요? 아이는 마치 나를 시험해보려는 듯 집요하게 물었다.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와줘야지. 곤란할 땐 방송용어처럼 당연한 말을 하는 것이 최선이긴 한데 막상 과연 내가 그럴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하니 별로 자신이 없었다. 정작 두려운 것은, 역시 미움보다도 포기인가 보다. 무섭게 화를 내는 것보다 쉽게 돌아서는 것. 분노의 열기보다 체념의 냉기가 더 가혹하다.
남편과 나는 소소한 계획들을 세우고, 일상을 꾸려가고, 대수롭게 느껴졌던 것들이 점점 대수롭잖게 여겨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틀어졌다가 화해하는, 화해랄 것도 없이 풀어지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사랑한다는 말 보다는 밥 먹자, 밥 먹었어?, 밥 먹어야지, 란 말을 더 많이 하고 종종 친정에 가서 엄마한테 밥 얻어먹으며 더불어 생활지도를 받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밥은 누가 차려주는 밥이다. 그 중에서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다. 밥을 주며 잔소리를 하면 그것도 들을만 하다.ㅋ 그와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인생의 미숙아들이고, 서로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노력한다. 누군들 성질 없는가. 다 성질 있지만, 그래도 성질보단 미덕이라고, 한번 잘 살아보기 위해 오늘도 나 스스로를 다스린다.
아, 이번 주말은 푹 쉬고, 영화 보고, 또 등등. 만끽만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