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겠고 젊은 배우들도 열연을 펼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돌아서는 순간 자극적인 장면, 또 장면만이 남을 뿐. 여운이 없다. 주진모의 눈빛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앞선 영화들, <미녀는 괴로워>, <사랑>에서 이미 선보였던 것이었다. 조인성은 삼각관계의 중심에서 미묘한 감정의 결을 표현해야 하는 까다로운 역할을 맡았다. 나름 열의를 다하고 있었고 어느 장면에선 찍을 때 몹시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왕의 남자> 이준기 만큼 아름답거나 개성 있지 않았다. 송지효는 몽고 여인처럼 보이기는 하나 원나라 공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당최 무겁기만 할 뿐 특징이 없다.
그간의 작품들을 보아온 바. 유하 감독은 아마도 영화로 시를 쓰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내면은 시인인데 외면은 잡설가라고 해야 할까. 질펀한 청승을 고급 서정으로 승화시키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란 느낌. 표현하려는 메시지와 영화적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반면 스타일의 세련미에서는 줄곧 마이너스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덜 익은 고기, 덜 깎은 과일을 받아든 것처럼 미진한 기분이다.
한때 유하의 시집을 즐겨 읽던 때가 있었다. 다소 산문적인 그의 시는 대개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정열적이었다. 유하, 이 남자는 연애나 사랑에 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멋대로 추측하기도 했다. 폼 잡지 않는 시는 발랄했고 폼 잡은 시는 가상했다. 그저 직감으로 나와 코드가 맞는 시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의 정열이 그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자유롭게 상상했다.
그래서 <쌍화점>은 참 아쉽다. 세운상가를 배회하던 헐리웃 키드 유하는 젊은 날, 보고배운 것들을 활자를 통해 시로 담아냈고, 성공했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표현하는 솜씨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쌍화점>은 뭇 영화들과도 다르고 그가 만든 기존의 영화들과도 다르다. 그런데도 어딘가 관습적이고 상투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왕의 남자>, <음란서생>, <색, 계> 등등이 중첩되는 느낌. 맨주먹이나 총이 칼로 바뀌었을 뿐. 공민왕(주진모 분)과 홍림(조인성 분)의 대결에서는 왜 뜬금없이 느와르가 떠오를까. 기왕 필요해서 쓴 베드신이라면 좀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유하 감독의 여전한 정열, 그것만큼은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역시 그는 절제 보다는 과잉에 능하다. 어차피 예술은 장르 불문하고 은유적으로 청승 떠는 일일 텐데 그의 은유가 다소 뻔하고 거칠다는 점만은 줄곧 아쉽다. 상투적 대사를 남발하느니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좀 더 침묵하는 법을 익혀도 좋을 것 같다. 이미지로서의 표현이 영화란 장르의 특징이자 매력이기도 할뿐더러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이라고도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