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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빠른 엄마는 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만두를 잔뜩 빚어 놓으셨다. 집에서 빚은 만두를 살짝 익혀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랜 기간 처음 맛 그대로 먹을 수 있다. 엄마가 육수에, 계란지단에, 파까지 다 준비해 놓으셔서 나는 그대로 가져와 떡국 몇 개 넣고 보글보글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남편이 방학해서 매끼 챙겨먹는 일이 신경 쓰였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전보다 핼쑥해진 엄마 얼굴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내가 서른이 된 것만 생각하느라 엄마 연세가 한 살 더 느는 걸 생각 못했던 것이다.

 매일 얼굴 마주하고 살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은 어쩐지 볼 때마다 엄마가 늙는 것 같다. 아빠는 내가 결혼한 후로 영리하게도 한결 낮은 자세로 임하시는 모양인데 그냥 낮은 자세에만 충실하실 뿐. 엄마의 나이 듦을 막지는 못하는가 보다. 가까이 살아서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혹시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가볼 수 있으니 다행이긴 한데, 엄마는 일도 다니시면서 딸내미 반찬 챙기랴, 사방에서 투덜거리는 것 다독거리랴, 입 짧고 철없는 아버지 챙기랴, 너무 힘드시다. 그래도 엄마는 걱정 마라, 라고만 하시니 엄마가 뿔났다, 의 집나간 김혜자는 그래도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 그랬구나 싶어 할 노릇을 넘치게 하고도 집도 못 나가는 엄마가 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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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 독서로 『치유하는 글쓰기』를 집어 들었는데 책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내 마음이 좀 특별해졌다. 엄마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신문사에서 기자 몇 명이 겁나먼 촌마을의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생활수기에 당선된 엄마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당시에 엄마가 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대학노트에 한 달 가량 뭔가를 계속 써내려갔는데 엄마도 일기 써? 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거나 뭘 계산중이라고 하시면서 안 보여주셨다. 고향에서 엄마는 똑똑하고 재미있기로 유명했는데 엄마의 자존심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기보다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택했던 것이다. 기자들이 다녀간 후, 엄마의 수기는 밭이랑에서 활짝 웃는 엄마 모습과 함께 신문에 크게 실렸다. 막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고 우리 엄마, 참 잘 썼다, 라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 마을 어른들까지 오셔서 칭찬해주시고 난리였는데 엄마는 서울에서 있었던 시상식에 부득부득 혼자 가셨다. 아침 일찍 채비를 하시면서 아빠에게는 결근하지 말기를, 우리에게는 저녁 때 올 테니 학교 잘 다녀오라고 당부하시곤 상패와 상금을 안고 씩씩하게 돌아오셨다.

 그 후로 엄마는 신문에 수필을 몇 편 더 싣게 되었고 활짝 웃는 엄마 얼굴을 신문지면에서 볼 때마다 마냥 자랑스러웠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어려서 그저 그뿐이었는데, 멀리 시집 와서 말 통하는 사람 하나 없고, 생활은 고단하고, 엄마가 참 외로웠겠구나, 하는 깨달음. 나중에 물었을 때, 엄마는 상금이 커서 마음먹고 써봤다, 절박하면 글도 나오더라, 고 단순명쾌하게 대답하셨지만 이제는 그 이상이었음을, 잘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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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타이어를 바꿀 때가 됐다고 해서 집 근처 가게에 들렀는데 흥정하는 과정에서 역시 내가 엄마 딸이구나, 싶어 또또 엄마 생각을 했다. 남편과 나는 좀 더 깎아보려고 하고 아저씨는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는데 잠시 불을 쬐러 들어온 참에 남편한테 그랬다. 내가 타이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저 정도로 나올 땐 더 이상 안 깎는 게 좋다, 좋은 걸로 잘이나 해달라고 해라, 손 볼 데 있음 손봐달라고 하고. 남편은 한꺼번에 목돈이 나가는 게 못내 아쉬운지 더 어떻게 해보려는 모양인데 사람이 자꾸 그러면 아무리 손님이라도 천하에 밉상이 되는 거라고, 연초에다가 날도 추운데 자꾸 실랑이하지 말고 그만 하라고 했다. 남편은 자기편을 안 들어주니까 조금 삐쳐있는 것 같더니 나중에 차에 오르고는 딴소리를 한다. 그래도 여기가 다른 데보다 조금 더 싸고 서비스도 좋은 것 같네. 그래요, 이제 얼굴도 익혔고 집 근처니까 단골해서 서비스도 받고 그래요. 그리고는 나보고 자기보다 배포가 더 큰 것 같단다. 갑자기 목돈이 나가는데 하면서. 그래서 돈보다 중요한 건 당신의 안전, 이라는 맥심을 날려주셨다. 쿡쿡.

 사실 바가지를 쓴 것 같지도 않지만 내가 잘한 건지도 감은 안 온다. 하지만 엄마는 누구한테든 지나친 미움을 사지는 말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누구보다 알뜰하신 분이지만 파 한 단을 살 때도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가 기분 좋게 거래하신다. 간혹 엄마가 실랑이를 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도 곁에서 봐왔다. 엊그제는 요즘처럼 살기 어려울 때는 다들 날카로워져 있을 때라 서로서로 더 조심해야 한다, 고도 하셨다. 내가 좀 단순하다보니 오늘 대책 없이 헐렁해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저씨는 꼼꼼히 이것저것 더 알려주시며 앞으로의 서비스를 약속하셨고 남편은 또 뭘 바꿔야 한다며 내일 다시 그곳에 갈 거란다. 아까 이것저것 손 볼 때 다 같이 하지. 쯧!

  이렇게 연초를 엄마 생각으로 보내고 있다. 효도하는 한해를 보내지도 못할 거면서 상상력은 풍부해가지구 생각만 요란하게 한다. 코앞에 살면서 엄마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면 꼴불견이라고 할까봐 남편 몰래. 어쨌든 난 울엄마 딸이고. 엄마 보고 싶을 뿐이고. 엄마! 엄마~ NAN 뉴스의 안상태 기자는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왜 위기에 처하면 엄마 소리부터 나오는지.  

 올 한해 다른 소원보다도, 부쩍 여위신 엄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런 당연한 바람조차 나 자신을 위해서인 것 같아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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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깐따삐야님 글솜씨는 유전이였군요....

깐따삐야 2009-01-03 00:26   좋아요 0 | URL
근데요, 유전보다 무서운 게 습관인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09-01-03 01:48   좋아요 0 | URL
음. 그러게요. 저도 읽으면서 그 생각 했어요.
역시 어머님의 포쓰가 늘 만만치 않게 느껴졌었고,
아무래도 최근 여러 글들의 정황으로 보아
깐따삐야님은 어머니를 똑 닮은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하하.

깐따삐야 2009-01-05 12:14   좋아요 0 | URL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말하는 게 장모님이랑 똑같다구. ㅋㅋ

순오기 2009-01-1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스무해를 살고 나니, 지가 엄마 닮았다고~~ 어쩔 수없이 인정한대요.
왜 엄마가 하는 말이나 생각까지 따라 가는지 모르겠다고~~ㅎㅎㅎ
'엄마(나)도 엄마(외할머니)처럼 안 살 거야~ '소리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도 꼭 따라하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세넘들이 모두 뒤집어 졌어요.ㅋㅋㅋ
오늘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하던 잔소리였을 거라며, 엄마도 우리처럼 자랐을 모습이 짐작이 된대나 뭐래나~~~ ^^

깐따삐야 2009-01-13 00:10   좋아요 0 | URL
딸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외모는 아빠를 닮을 수도 있는데 성격이나 습관 만큼은 엄마를 닮을 수밖에 없는 운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