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필력과 집중력이 남다른 작가란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부터 전경린을 읽지 않았다. 나 자신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탓일까. 처음엔 신선했던 그녀의 주인공들이 점차 일탈을 즐기는 이기주의자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깊이 있는 시선이라든가 밀도 있는 문체는 일단 읽을거리에 공감하고 난 다음의 문제였다. 평범한 일상의 대척점에서 뜨거운 몽상가들로 살아가는 전경린의 여자들에 대해 조금 반감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성 전반에 대해 살기 어린 콤플렉스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나물에 그 밥인 소설만을 양산해 내리라고 내 멋대로 짐작하기도 했다. 얼마 써내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몇몇 여류작가들에 비해선 근기도 있어 보이는데다 신들린 듯 아름다운 문장과 마주할 땐 속으로 감탄하기도 했지만, 혼자만 특별한 척 하는 게 못내 아니꼬웠는지도 모르겠다. 박완서 할머니도 연세 드셔가며 점점 더 교만해지시는 같아 못마땅하던 차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권여선한테 슬슬 관심을 가져보려던 중이었는데 이번에 만난 전경린의 소설이 어라, 나쁘지 않더라는. 

 쿡쿡, 웃음이 터지는 대목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간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땐 입을 앙 다물고 미간을 찡그린 채 불편해하며 읽었는데 ‘엄마의 집’은 따듯하고, 담백하고, 간혹 깜찍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줄거리는 아니다. 대학생이 된 딸에게 공산당 선언을 읽었냐는 질문으로 인사하는 386컴퓨터 같은 아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용기백배하여 결혼하고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져버린 엄마, 그리움을 안으로 모아 쥔 채 일찌감치 세상의 밑바닥을 봐 버린 아이처럼 조숙하게 자라온 호은, 그리고 제비꽃이란 이름의 토끼 한 마리를 들고 엄마와 내가 사는 집으로 찾아든 아빠의 딸 승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조심스럽거나 서먹해지기 마련이고,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엉성하게 엮인 호은이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싶은 유화를 못 그리고 생계를 위해 케릭터를 디자인하는 엄마를 보며 승지는 ‘아줌마는 타락했다’고 말한다. 공산당 선언스러운 발언이다. 친딸도 아니면서 승지는 아빠를 닮아있고 시대착오적인 아빠에게 호의적이다. 확실히 ‘생계노동’을 하는 엄마보다는 ‘노동운동’을 하는 아빠에게 사람들은 마음으로나마 더 관대하다. 그래도 스무 살이 되었다고 리본 달린 구두를 사주고 동그랑땡을 만들어주는 건 엄마다.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아빠의 세계와, 밥은? 이라고 짧게 묻는 엄마의 세계는 한때 사랑했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화해와 공존만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조숙하고 냉정한 척 하고 있어도 아직 마음의 물고가 닫히지 않은 소녀들은 서로 간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물결을 놓치지 않는다.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놀랄지언정 승지는 딱 한번이나마 ‘엄마’ 소리를 하고, 엄마는 처음의 언짢음과는 달리 호은에게 승지의 언니가 되어주라고 말한다.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라는 교집합을 통해 그들은 관계가 규정하는 틀을 벗어나 동료가 된다. 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p.279 헤어짐을 아픔으로써가 아니라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호은.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의 운명이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어빠진 레몬 같지만, 그것을 달콤하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건 각자의 몫일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하염없이 먹먹해졌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의 눈매가 달착지근해지고 입매 또한 상큼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사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땐 힘을 빼도 너무 뺀 것 아닌가, 트렌드의 파도타기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뜻인가, 잠깐 실망할 뻔도 했다. 지난 386세대와 근래의 N세대를 읽어내는 포즈도 그다지 충실해 보이거나 매력적이지가 않아서 역시 전경린은 ‘문장’에는 성숙한데 ‘문제’에는 미숙하구나. ‘사랑’에는 유심한데 ‘사연’에는 무심하구나. 혼자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팡질팡 소녀 같은 엄마와 시큰둥한 노파 같은 딸들의 까칠한 동거담은 다 읽고 났을 때 그 뒷맛이 꽤 괜찮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전경린이 주조해내는 여자들은 아무리 밥을 위해 뛰어다니고, 딸내미의 체육복을 사다주고, 잡채와 동그랑땡을 만들어도, 애인을 만나러 가기 전, 제비꽃마냥 차려입은 달뜬 실루엣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그녀들이 화려한 비극이 아닌 누추한 희극의 주인공들로 거듭나면서도 그 보랏빛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이 작가를 다시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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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1-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긴 했는데 전경린을 읽은지 하두 오래라 선뜻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전경린의 여자들은 언제나 몽롱하기만 했는데, 이번엔 좀 다른가봐요. 리뷰 잘 읽었어요~

깐따삐야 2008-01-24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망설이다가 그래도 그간의 갑빠가 얼만데~ 하는 생각에 질렀죠.
이번에도 제멋대로인 건 여전하구 정신상태도 몽롱하긴 한데 그녀의 딸내미들이 아주 당차고 귀엽더라구요.^^

비로그인 2008-01-2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롱하다'의 의미는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겠죠?

깐따삐야 2008-01-25 09:31   좋아요 0 | URL
음... 당최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사람처럼 안 보인다는 의미랄까요?
써놓고도 영 부족함을 느껴요. 한번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