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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삽화가 많이 들어간 책 치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것이 별로 없는데 이 책에 실린 돼지코 부자의 애증어린 유머는 글보다 더 웃기고 유익했다. 간혹 소심하고 겸손한 사람들 중에 알고보면 은근히 재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우일이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작가 김영하야 너무나 유명하니까.
'화양연화'에 얽힌 에피소드로 풀어나가는 이십대와 삼십대의 차이에 대한 글은 저 위에 보이는 책 표지 한방으로 설명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삼십대의 사랑, 절제의 아름다움, 말해지지 않는 것의 비의.
대학 시절 친구와 저 영화를 보다가 영화 한컷 한컷마다 바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답고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나오는 장만옥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느린 화면 속에서 국수통을 들고 골목을 지나던 매혹적인 장만옥. 아무리 뜯어봐도 별로 예쁜 것 같진 않은데 도드라진 광대뼈마저도 섹시하고 세련되어 보이던 장만옥.
장만옥을 위한 영화군, 후다닥 결론을 내리고 잠이 들었던 나로서는 내가 아직 어설픈 이십대라서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낼모레면 사십대 문턱에 들어설 선배 선생님 중 한 분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깐샘은 '냉정과 열정 사이'나 '화양연화'를 보면 뭔가가 막 느껴져? 난 걔네들이 왜 그렇게 답답하게 지내는지 모르겠어. 왜들 그렇게 사는거래? 좋으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그러게나 말이에여. 다 영화나 소설 속 출연자들이라 괜히 폼 잡느라 그러겠져. 흐흐."
하지만 나랑 동갑이었던 친구는 이 영화를 참 좋아했더랬다. 새내기 시절부터 워낙 세상 다 산 얼굴을 하고 다녀서 조로, 조로, 쾌걸조로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보았으니 좋다고 말했겠지. 이 책을 다시 꺼내 읽다보니 영화도, 그녀도, 한번 더 보고싶어지더라는.
여담인데. 김영하는 사랑을 잘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잘'. 그의 글들은 날쌘 잽을 날리듯 발랄하지만 사랑에 있어선 깨나 진득한 남자일 것 같다. 이 책을 새로 읽으며 생뚱맞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