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에 갈까?
그러자, 그럼.
그렇게 문득 여행길에 올랐다.
물론 그 곳엔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선배가 있어 어느만치 든든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자리 걱정은 하지 말고 편하게 오라는 선배의 부추김이 한몫을 했고,
주춤거리다 보면 가을이 다 져버릴까, 친구와 나는 부지런히 일정을 짰다.

청량리역에서 기차에 올랐고 기차 안은 단체로 엠티를 가는 대학생들로 만원이었다.
젊고 소란한 그들 틈에 끼어서 귤과 김밥을 먹으며 우리는 주섬주섬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키우는 애완견의 안부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음엔 과연 어디로 떠나볼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한때 신기루처럼 아른아른 내 기억 속에만 머물던 그녀는,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환하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친구란 그런 것 같다.
오래도록 만나지 않은 채로도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다시 만나도 처음처럼 변함없이 반가운 사람.

가평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남이섬이 있었고,
남이섬의 첫인상은 익히 들어왔던대로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선배는 앞치마를 두른 채 나무를 깎고 있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소개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짐을 풀고 나서, 친구와 나는 아름다운 정취에 계속 탄성을 질러대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가을의 끝무렵이라 이파리 풍성한 나무들을 볼 수 없는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폭신한 융단처럼 밟히는 낙엽 위에서 우리는 눈 맞는 강아지처럼 계속 깔깔거렸다.

해가 기울고 저녁이 되어서는 선배와 그의 동료와 함께 저녁을 같이 했다.
마침 옆좌석에서 회식을 하던 남이섬 직원들의 아량으로 신선한 회도 먹고,
어르신들에게 어필하는 나의 푼수끼로 생선구이와 된장찌개가 추가되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선배의 동료는 언뜻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방심할 무렵 치고 들어오는 pun으로 간간히 우리를 웃겨줬다.
선배는 기분이 좋은지 술을 많이 마셨고,
나는 마치 엄마라도 된냥, 이것저것 잘 먹지 못하는 친구를 다그쳐가며 회를 먹였다.
 
밖으로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를 굽고 있었고,
곁에 가서 불을 쬐는 우리에게 식당 주인아저씨는 따끈한 모과차를 내왔다.
밤이 되자 인파가 빠져나간 섬은 고요하고 평화로웠고,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청초했다.
 
그 날 밤,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각자 모두 다른 곳, 다른 자리에 있지만 과거의 추억과 앞으로의 우정에 대해서는 한길이었다.
서로를 꼬집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하는 화법은 여전했지만,
그간의 세월 속에서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선배는 앞으로도 한동안 묵묵히 나무를 깎을 것이고,
그녀는 낮에는 취재를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쓰며 꿈을 키우겠지.
나는..
성실만이 살길, 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몰입과 방황을 계속하겠지.
때로 그 안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한다면!

삶과 꿈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인 것 같다.
나의 염려 섞인 잔소리를 달큼하게 받아들여준 착한 친구와,
따듯한 방과 차분한 격려를 함께 제공해 준 선배에게 감사한다.
하늘을 향해 곧고 활기차게 뻗어오른 남이섬의 나무들처럼,
그들도, 나도, 내내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바래본다.   


남이섬의 아침, 숲길


길 위의 나

  


댓글(6)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1-20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7-11-2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랙백 걸어놨습니다.
사진의 풍경이 옛날에 봤던 영화의 마지막장면과 비슷해서요...^^
규모나 스케일은 좀 틀리지만..아 그리고 영화 속 여배우보다 깐따삐야님 미모가 100배는 이쁘십니다.(지나친 아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깐따삐야 2007-11-21 14:54   좋아요 0 | URL
남이섬엔 원근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숲길이 아주 많았어요. 지나친 아부임엔 틀림없지만 기분은 역시 좋습니다.^^;

라로 2007-11-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깐따삐아님이닷!!
처음뵈요~. 안녕하세요?ㅎㅎㅎ
저두 남이섬 가고파요~.흑흑흑

깐따삐야 2007-11-22 10:04   좋아요 0 | URL
nabi님,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어 놀라셨죠?ㅋㅋ 지금은 좀 늦은 감이 있구요. 봄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꼭 가보세요. 폐품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환경학교체험을 권해드릴게요. 저도 나뭇잎의 천연 색소를 이용한 손수건을 만들어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