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단 생각이 든다.

  내가 추억하기론 지나칠 정도로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스포츠에 능했고 한시라도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씩씩하고 개구진 아이였다. 나와는 교실의 책걸상을 모조리 뒤엎으며 험하게 다툰 적이 있었고, 내가 간간히 뻥을 섞어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순진한 아기곰마냥 멍한 표정으로 귀 기울여 듣곤 하던 그런 친구였다.

  혼자 술 마시기를 즐겼다던 그는 죽은 지 열흘만에 자취방에서 다른 친구의 동생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평소에 연락 끊고 잠적하기가 부지기수라 아무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불찰이었다. 각자의 일터에서 바쁘게 생활하던 우리는 갑작스런 비보 앞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서로 연락을 취해가며 목소리를 낮춘 채 소곤거렸다.

  모든 게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이 놀아주는 일, 이란 생각만 났다. 네가 웃고 있다고 너를 그냥 지나쳤던 내가 너무 미안하다. 우리 나이 이제 스물여덟. 마음이 아프다. 

  버스 안에서 마치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오래된 유행곡 가사가 흘러나왔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리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사람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노래처럼 생을 긍정하기엔 생이 우리에게 무심코 던져대는 운명의 돌덩이들이 때로 너무 아프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내일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 작고 연약한 내 가슴에 기대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니, 세상은 너무도 쓸쓸하고 각박하단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오래 들어주는 일, 난생 처음 들어본 듯한 유머로 마구 웃겨주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을 당장 몰아오고 싶을만큼 맛있는 먹거리를 사주는 일, 술이 달다고 느껴질 때까지 같이 마셔주는 일, 닭살이 막 일어나도 추운 내색 안 하고 밤거리를 신나게 쏘다니는 일, 근사한 점들만 쏙쏙 골라내서 넋을 놓을만큼 추켜세워주는 일, 친구도 동료도 아닌 식구가 되어 조언하는 일... 무엇이든 해야지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란, 누군가 언손을 내밀 때 히터를 꼽을 콘센트를 찾는 게 아니라 얼른 두 손을 꼭 붙잡고 호호 불어주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웃으며 지나쳤던 그와 그녀들이 괜시리 걱정되는 밤이다. 명복을 빈다. 잘 가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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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9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5-3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음이란 것도 운명 앞에선 참 덧없는 것이군요.
하루하루 생이 연장되는 것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위로 많이 해주시고 깐따삐야님도 너무 상심에 젖진 않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