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책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얼굴에 대해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기본 스타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세세한 부분은 읽는 이의 몫이니까.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또는 남자주인공은 한명일지라도 읽는 독자들 숫자만큼의 주인공이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해결사이자 주인공인 다아시(Darcy)란 이름을 듣는 순간 영화<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오만한 다아시'씨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되는 바람에 그 상상의 여지가 많이 줄어들었다.물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어여쁜 키이나 나이틀리(엘리자베스)에게, Mrs. Darcy...Mrs. Darcy...Mrs. Darcy...Mrs. Darcy...하며 감미롭게 입맞추던 젊고 나름 매력있던(절대로 잘 생겼다는 얘기는 하기 힘들지만) 그 남정네와는 달리 본 책의 주인공은 나이도,지위도 꽤나 지긋한 아저씨다. 그리 오만하지도 않고 괴팍하지도 않으며 굉장히 예리하고 합리적인. 오히려 그래서 탐정으로서의 매력은 좀 부족해 보이는 다아시경. 그리고 어디서 본듯한 어설픈 마법사 조수까지. 책의 소개란에는 SF 및 대체역사 소설,판타지소설 등으로 거창하게 나와 있지만 오히려 이 책은 정통 추리소설쪽에 가깝다. 그것도 밀실트릭, 달리는 열차라는 밀폐된 공간 등이 나오는 약간은 구닥다리 냄새가 나는 고전추리소설들 말이다. 물론 시간 되돌리기 라든지 사람 동작을 멈추게 하는 황당한 마법도 가끔 등장하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서 정통 추리소설의 맛을 감소시키진 않는다. SF라고는 하지만 또한 대단한 과학지식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상식수준에서 이해가는 정도이다(표제 작품인 <나폴리 특급살인>에서는 그나마 과학적인 얘기는 하나도 안나온다 ). 요즘 주로 일본 사회파추리소설만 읽다가 정통 추리소설에 가까운 책을 봤더니 오히려 신선해서 좋았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제목에서부터 '아주 많이' 차용한 <나폴리 특급살인>은 작가가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들킬 것을 뻔히 알고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옆사람 작품을 슬쩍 베껴놓고 시침 뚝 따고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설마... 결말까지 비슷할까? 일단 한번 읽고 확인하시길. 아가사크리스티 풍의 고전추리소설을 좋아 하는 분들이라면 아주 만족하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