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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 정규 5집 FLOW
임미정 연주 / 소리의나이테음악(주) / 2022년 12월
평점 :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Youtube를 포함해서 각종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넘쳐나는 요즘에 CD 라는, 이젠 약간 구닥다리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음악 저장 장치’를 구입한다는 것은 BTS의 ‘A.R.M.Y(아미)’ 정도의 어지간한 Fan심 아니고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미정의 신보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해서 듣게 된 것은 전에 임미정의 전작 앨범들을 찾아 듣고 나도 약간 그녀의 ‘찐팬’이 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490 킬로 미터.
이 거리는 피아노를 매일 4시간씩 친다고 가정했을 때 1년 동안 손이 이동하는 대략적인 거리라고 한다. 서울 부산 간 거리 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셈인데, 전에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피아니스트의 뇌>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임미정은 이 앨범을 작곡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며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피아노를 쳤을까, 손이 엄청 커서 마치 바나나 두 다발을 건반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고 하는 라흐마니노프는 1년에 손으로 대략 몇 킬로 미터나 이동할 수 있었을까,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CD 포장을 뜯고 플레이어에 넣고 음악을 듣는다.
첫 곡 <This Is the Beginning> 부터 역시나 내 귀를 사로 잡는다.
'시작'이란 낱말이 들어간 것처럼 출근 후 서류 챙기고 일할 준비하면서 들으니 뭔가 기분이 좀 경쾌해진다.
중간에 귀에 익숙한 곡이 있길래 곡명을 찾아보니 역시나 전집 앨범에 실렸던 < Heart Song >이다. 무슨 변화를 줬는지 직전 앨범에 실린 버전과 비교하며 조용할 때 집중해서 들어봐야겠다.
일단 지난 4집의 4인조 Quartet 에서 기타가 빠진 피아노, 베이스, 드럼만의 Trio 구성이라
그런지 조금 더 담백해진 것 같기도 하고...
1930~195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위대한 색소폰 주자 중에 레스터 영(Lester Young)이라고 있는데 1950년대 초 엄청난 인기를 구가할 때 음반사로부터 같은 곡을 1930년대 스타일로 다시 연주를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레스터 영은 그 제안을 즉석에서 거절하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재즈 뮤지션은 끝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므로 지나간 연주의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얘기 했다던가. 지금은 사주 상담해주는 명리학자로 더 알려진 음악 평론가 강헌의 책에 나오는 얘긴데 아무튼 재즈라는 음악 장르의 똑같이 재현할 수 없는 딱 한번의 originality를 강조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3년 전의 Heart Song과 지금의 Heart Song은 과연 어떻게 다를지…
타이틀곡이라고 친절하게 이름 붙여준 < River >도 그렇고 전곡들이 대체로 편안하고 듣기 좋다. 곡들의 수준이랄까, 아무튼 앨범에 실리는 곡들 전체가 고르게 좋다는 것이 전작 앨범들을 포함한 임미정 음반들의 또 하나의 미덕 같다.
마지막 곡 <Beautiful Friends>처럼, 나도 주변의 ‘고맙고 아름다운,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간만에 CD 몇 장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