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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보이지 않던 정식이 나타났다. 번듯한 양복을 입고였다. 토요일마다 흙투성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가게를 들어서던 모습에 익숙했던 나는 입이 약간 벌어졌다.
정식은 단골손님이었다. 정식을 통해 인연을 맺은 학생들은 나를 형, 삼촌이라 부르며 설탕이 듬뿍 든 저질 양념돼지갈비를 쩝쩝거리며 먹고 가곤 했다. 가게 맞은편 고시원에 사는 정식은 특유의 붙임성으로 얼굴을 두 번째 마주한 날부터 나를 형이라 불렀다. 그런 정식을 나는 친동생과 같은 마음으로 대했다. 구김살 없는 모습이 좋았다고 할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했다. 시험에 수없이 떨어져 이제는 어느 곳에 속하지 않음이 속할 수 없음이 익숙하다고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늦은 시간 가게에 들러 술을 청하는 정식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패배감과 지침이 묻어 있었다.
“배영수가 왜 한화로 가야 하냐고요. 누구 때문에 어깨가 망가졌는데. 삼성에서 책임져야지…… 안 그래요, 형?” 같은 현실감 없는 소리를 늘어놓다가도 돌연 “하아” 거리며 체념과 발악의 중간쯤 되는 말들을 하곤 했다.
“앞길이 막막해요. 하아…… 어떡하죠? 해낼 수 있을까요? ……청춘이 담보 잡힌 것 같아 목이 조여와요.”
그랬던 정식이 한눈에 봐도 근사한 감청색 양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형, 잘 지냈어?” 살가운 말투로 인사를 건네며 정식이 가게 문을 들어섰다. 뒤로는 친구인 듯 보이는 남자가 여행용 가방을 끌며 따라 들어왔다. 뭔가 모를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식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친구가 머금은 어색한 표정에 홀려 “어, 그래, 정식아.” 하고 먼 사람처럼 말해 버리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식의 온도가 변해 있음이 느껴졌다.
눌변도 그렇다고 딱히 달변도 아니었던 정식은 출정식의 장군처럼 비장한 톤으로 알지 못할 말들을 열심히 떠들어댔다. 사이사이 먹어, 많이 먹어, 그래야 부자 되지, 같은 말들이 들려왔다. 한참을 떠들던 정식은 친구의 휴대전화를 빌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별 내용 없이 “네, 네, 그럼요. 이제 오시면 될 것 같아요.”로 끝났다. 통화가 끝나고 20여 분쯤 지났을 때, 가르마를 왼쪽으로 단정하게 탄 30대 중반의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자가 정식과 친구를 확인하고 손을 들어 보이자 정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푹 숙였다.
남자는 정식 옆에 자리를 잡고 웃음이 습관처럼 배인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층계를 이루고 있어.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식이거든. 그 구조를 접목하니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거지.” “한마디로 우린 운이 좋은 거야.” 같은 말들을 정식의 친구에게 늘어놓았다. 말하는 도중 정식과 눈을 맞추며 얕은 웃음을 교환하기도 했다.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며 흘끔흘끔 본 정식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10인분이 넘는 돼지갈비를 먹고 나서야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 앞에 선건 정식의 친구였다. 정식과 남자는 친구 뒤에서 서로 눈빛만 주고받고 있었다. 친구가 계산을 끝내고 나자 남자는 정식과 친구의 어깨에 양손을 걸치고 문을 발로 밀고 나갔다. 난 따라 나가 “형, 또 올게.” 밝게 인사하는 정식에게 “그래, 연락 자주 하고.”라 답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씁쓸함이 몰려들었다.
마음속에 꽈리 튼 씁쓸함이 정리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 분명 큰길로 사라졌었던 정식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정식은 숨도 고르지 않고 “형, 형…… 우리, 좀, 구해줘.”라 말하며 잘게 접힌 쪽지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우리라니, 구해달라니…… 몸이 떨렸다.
*
동네 친구들을 모아 쪽지에 적힌 마천동의 한 다세대 주택을 찾아갔을 때 안에서는 자잘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의 웃음이 뒤섞인 소리였다. 나는 친구들을 등 뒤에 세워두고 흐릿한 반투명 유리가 박힌 철제문을 드세게 두드렸다. 웃음소리가 뚝 끊어지고 유리로 흐릿하게 비치던 형광등이 꺼졌다.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눈을 맞춘 나는 다시 철제문의 아랫부분을 거칠게 발로 찼다. 가로등이 막 점등된 골목으로 철컹, 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나름의 소란에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기이하다 싶은 괴괴함만 은밀히 내비쳤다. 나는 마름모꼴 손잡이를 거세게 흔들어 대며 온 힘을 다해 정식을 불렀다.
“정식아, 형님 왔다. 정식아.”
안에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불이 켜지고 반투명 유리에 검은 형체가 점점 짙어지더니 천천히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가게에서 보았던 남자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현관의 누런빛 등에 비친 남자는 앳되어 보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남자가 경계의 말투로 물었다.
“여기 강정식이라고 있죠?”
나의 적의 섞인 말투에 남자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왜 그러시죠?”
“동생 보려는데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정식아, 형님 왔다.”
내가 목청을 높여 거듭 정식을 부르자 남자 어깨너머에서 정식이 주춤거리며 나타났다. 남자는 몸을 돌려 정식을 한번 보고는 밖으로 몸을 빼 문을 막아섰다.
“교육 기간이라 면회는 어렵습니다…….”
등 뒤에 선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하던 남자는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대답이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 더할 말도 뺄 말도 없었다. 난 ‘이게 최선이길…….’ 하는 마음으로 남자를 옆으로 밀쳤다. 남자가 몸을 휘청거리며 중심을 못 잡고 한쪽으로 밀려난 사이 친구들이 집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친구들을 따라 들어선 입구에는 족히 몇십 켤레는 될 듯한 하이힐과 검은색 구두, 슬리퍼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좁은 거실 양쪽 벽면을 따라 ‘신비의 옥’이라 써진 직사각형의 검은 물건이 층층이 쌓여 천장에 닿아 있었다. 싱크대에는 솔이 낡은 칫솔 스무여 개가 어지러웠다. 들어서 정면으로 보이는 방에 여섯, 일곱의 여자들이 희멀건 죽 같은 것이 든 금색 양은냄비를 앞에 두고 숨죽여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은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는 사이 십여 명의 남자들이 친구들과 내 앞을 막아섰다. 검은 눈동자를 위로 붙이고 쏘아보는 사내들의 눈빛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정식은 한 사내의 손에 잡혀 방안에 서 있었다. 내가 “정식아, 가자.” 큰 소리로 말했지만 정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식을 노려보며 발걸음을 안으로 옮기려던 순간 한 사내가 내 가슴을 밀쳤다. 난 힘없이 뒤로 나앉으며 신발장 옆면에 머리를 쿵, 하고 찍었다. 그 모습에 흥분한 친구들이 욕지거리와 함께 싱크대와 벽면에 쌓인 물건들을 엎기 시작했다. 방에서 숨소리만 내던 여자들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몇몇 사내와 친구들 사이에 작은 몸싸움이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사내는 어, 어, 소리를 내며 흐트러진 물건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사내들은 무척 간절해 보였다.
나는 정식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끌었다.
“정식아, 가자!”
*
택시는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어 속도를 높였다. 정식이 입을 열었다.
“형, 고마워요. 윤석아, 미안하다.”
내가 뒤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정식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바보 같은 놈, 고생했다. 근데 ‘구해줘’가 뭐냐, 쪽팔리게. 다들 밥도 잘 못 먹는지 비실비실하더구먼. 하긴 눈빛은 좀 무섭더라. 큭.”
“죄송해요, 형. ……윤석아, 나한테 남은 마지막 사람이 너였다.”
정식의 친구는 아무런 대꾸 없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
“정식아.”
“네.”
“나 허리 안 좋은데 옥장판 사라고 왜 연락 안 했냐? 섭섭하다, 이놈아.”
“……”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구는 책임져야 하는, 배영수의 낡은 어깨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