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택시기사야이제 막 한 달이나 됐나손님들이 잘 모르는 목적지를 말하면 슬쩍 고백하지. “택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요내비 좀 누르고 갈게요.”라고그러면 손님들이 길도 모르시는 분이 왜 택시를 하세요?”라고 묻곤 하는데 그 라는 말은 정말 이해가 안 가. “어떻게 하세요?”라 물으면 날 동정하는구나 생각하는데 라니왜긴 왜야먹고살려고 하지누구든 나의 생에 대한 의지를 부정하지 않았으면 해미안내가 좀 까칠해졌네손님은 왕인데.

얼마 안 된 경력 동안 나에게 바람이랄까희망 사항이랄까그런 게 하나 생겼어뭐냐고…… 택시기사가 승차거부를 하지 않으면 손님도 대화거부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뭔 개떡 같은 소리냐고허허뿔내지 말고.

승차거부 삼진 아웃제라는 거 들어봤지정책 명이 왜 그따윈지 모르겠어매일 야구를 하는 기분이야. LA 다저스의 커쇼 같은 선수가 줄곧 스트라이크만 던져대는 야구볼은 없어볼이 되려면 뭘 그리 많이 증명해야 하는지…….

오해하지는 말아이래 보여도 꽃담 황토색 해치택시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구가끔아주 가끔교대 시간이 다가오면 반 승차거부는 한다고 해야 하나문래동 회사 가서 교대해야 하는데 마포에서 타서 태릉 가자면 많이 곤란하거든인계받을 기사는 아내가 정성껏 타 준 비싼 홍삼 원액까지 먹고 기다리는데 교대자가 자기 돈 벌기 바빠 늦게 오면 얼마나 열불이 나겠어안 그래?

교대시간 가까울 땐 빈 차 등 끄면 되지 않냐고에이왜 이러실까우리가 돈 벌려고 그래같은 방향이면 지친 하루 마무리하며 말동무나 하려는 거지좋잖아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정치인들 욕도 좀 하고아니야아니구나미안해그래도 운수 좋은 날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가 참 어렵더라고.

우리 택시기사들 말이야…… 말동무가 필요한 사람들이야신호등에서 아는 택시 서기라도 하면 창문 내리고 별말 없이 서로 웃는 거 봤지또 라디오는 왜 그렇게 허구한 날 틀어놓겠어택시 타면서 장용인가성형수술로 유명한 개그맨이 진행하는 교통방송 <추억IN가요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야거기서 연결하는 교통 통신원들의 어색한 멘트에 왜 그렇게 껄껄 웃겠어

매일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직업인데 뭐가 외롭냐고허허모르는 소리 말아온종일 어디로 모실까요?” “알겠습니다.” 이런 말만 하는데밥 먹는 건 또 어떻고혹시 기사 식당에서 밥 먹어 본 적 있어가보면 섬뜩한 기분에 밥맛이 싹 달아날 거야다들 일 인분 시켜 놓고 죽을상으로 꾸역꾸역 밥 먹고 있는 걸 보면.

우리 고달프니 사정 봐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우리도 승차거부 안 할 테니 이야기 좀 들어 달라는 말이야간혹 외로움에 찌든 기사들이 두통이 날 정도로 떠드는 거 알아나도 쉬는 날 그런 기사들과 대화하다 보면 타이레놀이 필요하더라고그런데 우리라고 왜 눈치가 없겠어대개 기사들은 오늘 날씨 참 좋네요.” 라며 슬쩍 손님의 간을 봐상처받기 싫어 생긴 방어기제의 일종이랄까간을 봤는데 먼 산만 보거나 새침한 대꾸가 돌아오면 힘이 쭉 빠져. ‘난 당신의 20분짜리 기사요.’라는 생각만 들고다툰 연인 사이도 아니고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도 아닌데 말없이 뚱하게 가다 보면 라디오 소리만 올리게 되더라고.

이건 내 자랑 같아 말 안 하려고 했는데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연령별 이야깃거리를 골고루 준비해네이버와 다음의 정치경제스포츠연예 기사들 정독하고 20대를 위해 디스패치도 잊지 않지성의가 가상하지 않아?

그러니 우리 이야기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