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통신
손석춘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칼럼집의 부제처럼 이 책은 그야말로 편지글이다. 실제로 나도 인터넷 한겨레로부터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손석춘의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메일을 다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칼럼집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손석춘은 상당히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로 보인다. 고3 때 이화여대에서 그의 강연을 실제로 접했을 때도 그는 순수함과 동시에 열정을 가진 모습이었고, 이 칼럼집에 실린 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은 무디어진 나를 계몽하게 하는데, 이것은 자유로운 사유와 때때로 능청스러움까지 가진 고종석의 칼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젊은 벗들'에게 애정어린 편지를 띄운 흔적이 이 칼럼집이지만, 내가 볼 때 누구보다도 젊은 의식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손석춘이 아닐까 싶다.

이 칼럼집에서 그의 사회과학적인, 역사적인 의식의 책무와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것과 동시의 그의 서정적인 문체와 우리말에 대한 사랑도 찾아볼 수 있다. 잠깐 그의 목소리를 이곳에 퍼뜨려볼까? : '환상은 어쩌면 삶의 미덕일지 모른다. 안톤 체호프가 우수에 잠겨 고백했듯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그나마 환상이 낫기 때문이다. 설령 환멸의 순간에 이르더라도 사랑의 환상은 삶을 가멸게 한다.

기실 슬픔의 늪을 건너지 않은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얕은가. 하지만 환상이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정치가 위대해서가 아니다. 터무니없게도 정치가 뭇사람의 삶을 틀짓고 있어서다. 사랑이나 비애가 숨슆 틈이 그곳엔 없다. 숨겨졌을 뿐 정치의 밑절미는 첨예한 이해관계다. 눈빛 맑은 사람일수록 그걸 부정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해관계를 촘촘히 분석하지 않은 정치의 끝은 참혹하다.'(251쪽) 그 글에서 소설가로서의 싹이 엿보인다. 그가 쓴 <아름다운 집>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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