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인간 / 시인을 찾아서 김현 문학전집 3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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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 문학비평의 정점, 김현의 전집 중 세 번째 권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김현 전집 제 3권은, 그의 초기 시론·시인론 들을 모은 두 권의 저서, <상상력과 인간>(일지사, 1973, 국판, 305면)과 <시인을 찾아서>(민음사, 1975, 신4·6판, 153면)로 엮어진다.'

김현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그가 쓴 어떤 텍스트의 일부를 보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를 우상에서 크게는 거의 신화적 존재로 보는 그의 제자와 후학들의 고백에서부터이다. 김현, 김현, 김현. 이 이름을 나는 그의 텍스트에서가 아닌 다른 텍스트에서 무수히 보고 또 봐야했다. 개인적으로 문체란 것이 실재하는 것임(!)을 알게 한 고종석의 글들에서 그의 문체와 사고의 메아리를 처음으로 들었으며, 다른 비평가들의 평문에서도 그의 위상은 전설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역시 모든 신화적인 이름들은 실제로 체험되거나 직접 맨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별로 없다. 풍문에서 시작되어 풍문에서 끝나는 것이다. '고전이란 이름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잘 읽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김현이란 한국 문학비평의 우상적 존재를 나는 풍문으로만 접해 왔었다. 이제, 그를 만난 것이다.

많은 평론집을 읽어보지 못해서 내 평론에 대한 측량술을 불신할 수밖에 없지만, 이 평론집에 나타난 그의 면모는 크게 보아 이렇지 않을까. 일단, 불문학도로서의 자의식.

'유럽 문학, 특히 내가 도취되어 있었던 프랑스 문학을 나는 나의 정신의 선험적 상태로 받아들였고, 그 상태 속에서 모든 것은 피어나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닌 몇 해 동안도 그러한 정신 태도의 연장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와 브르통, 그리고 프루스트와 쥘리앙 그린 들을 읽었고 그들의 정신 세계를 나는 나의 내부에서 거의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프랑스 문학을 피부로 느낀다고 믿은 정신의 불구자였다. 정신의 불구자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16쪽)

「한 외국 문학도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이 글의 부분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평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말라르메와 발레리, 랭보와 보들레르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한국 시인들의 뛰어난 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그가 처음으로 완전히 몰입하고 도취하여 읽은 것이 프랑스 시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극단적으로 사랑했던 문학적 연인은 프랑스 시였으므로, 그는 새로운 연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시들을 보고서도 항상 그 예전의 프랑스 시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평론집이 초기작들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의 김현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의 분석은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과 정신분석학에 많이 기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상상력과 심리의 뿌리를 곱게 어루만지듯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촘촘한 그물망을 치는 이론이라 할지라도 다채롭게 통통 튀어 다니는 현실세계를 그대로 포착해서 설명해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론과 문학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비평은 언제나 실패하는 다리 역할만을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인을 찾아서>의 에세이적인 평문들이 마음에 든다. 김현이 시도한 이 평문의 형식은 수많은 모방을 낳아서 그대로 하나의 평문의 유형이 되었다고 한다.(전에 읽었던 고종석이나 권성우의 시인론이 떠올랐다. 바로 이런 형식이었다. 특히 고종석이 쓴 황지우론은 글의 매듭 부분이 독특한 감성의 여운을 남기는 것인데 김현의 그것과 유사해서 흥임로웠다.) 실제로 시인을 찾아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있는 대화를 잡아낸다. 시인과의 영혼을 다 드러낸 대화가 빼어난 평론의 정의라면, 이런 에세이 비평은 형식까지 평론의 의의에 다가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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