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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내가 가장 아름다고 좋을 때 라고 느끼는,
심지어 부럽기까지 한,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정말 제대로 열심히 살것 같은,
요즘의 젊은이들을 비추며,
태어날때부터 온갖 다양하고 광활한 인프라를 맘껏 누려와 그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상, 언어, 감각, 인지능력,심지어 비주얼 면에서부터 애초 근본이 다른 듯한 그들을 '표백 세대' 라 지칭하며 이야기 한다.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 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지배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 없는 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 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표백> 은 올해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며 동아일보에서 근무하는 현직 기자가 쓴 글이다.
처음에 조.중.동과 한겨레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런 수상과 시상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는데 공모할 당시에는 글쓴이의 정보가 전혀 들어가지 않으므로 정말 작품으로만 평가받은 상이기도 하기에 이런 독특한 상황 연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어느 책이나 신문의 글을 보면,
쉬운 말도 어렵게,
알아듣지 못하도록 꼬아서,
자만심으로 가득찬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자 남용에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도록 온갖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성 작가들의 문장을 잔뜩 인용 하 여 '나는 이런 사람들의 글은 기본으로 읽은, 대 단 히 지적인 사람이야, 봐~ 이 작가들이 한 말을 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잖아?' 라며 얄팍한 스토리의 유일한 뼈대이며 근거인 양 들이대는 이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과연 글을 쓰면서 '읽는 이'를 배려한 것인가?
'읽는 이'들이 그들의 책을 모두 읽은 문학도라고 착각하는 것인가?
자신의 '앎'을 자랑 하기 위해서,
일방적인 생각을 공표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인가? '읽는 이'와의 소통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만 답습하는 방식의 문학을 전공한,
오만함으로 가득찬
'진부하고 뻔한 스타일의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표백세대'라고 표현되는 이들의 자살과 각자 스토리를 그들이 처한 '현실과의 부조화' 라는 상황에 어쩔수 없이 잉태되는 결과라며 유명작가들의 문장을 빈번히 인용하여 사건의 인과관계 논리의 근거이자 배경으로 세워진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굳이 이걸 갖다 쓸 필요가 있었나', ' 나 또한 여기 인용된 책들을 다 봐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볼만도 하겠다.'
나도 모르게 인용된 책의 리딩을 강요받는 듯한 느낌과 '작가는 인용없이 이들의 배경을 설명하지 못하나?'
'인용구가 빠지면 이 책이 그래도 상을 받을 만한 작품으로 존재 했을 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글에서 적당한 유명작가나 타인의 문장은 그 글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하고,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하여 어느 설명보다 효과적인 설득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나쳤을 경우 알맹이없는 빈약한 스토리를 보충하기 위한 단지 타인의 글의 나열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마치 유명작가들의 명언집을 보는듯 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표백'이 후자에 속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글의 명확한 스타일이나 문장력을 보았을 때 인용구 없이도 충분히 이 소설을 잘 써내려갔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필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저 살짝 과하다고 생각되었던 인용구들을 조금 들어내고 자신의 글로 채웠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표백세대는 정신적인 면에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보다도 한심한 처지에 있다.
산업화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단계’를 꿈구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게 원자화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88만원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에 대해 나는 그들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맞추어 그들의 미래를 그려보지 않은 듯 하다.
그들은 그저 나도 한때 그런 때가 있었던 젊은 나이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저 젊은 사람들이었다.
고생도 별로 안해서 힘든 것 모르고 자라 이기적이기 보다는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는, 절대 손해 보는 짓 안할 것 같은, 관계 계산 잘하는 세대였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되던 그들이었기에 책을 보고 조금 놀라웠고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이해가 생겨났다.
완전한 세상으로 여겼기에, 이룰수 있는 것도, 그럴 의욕도, 그리고 그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도..조금 납득이 될것 같다고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표백세대' 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대학생활,
사회인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들 내면속에서 피어나는 기성 세상에 대한 불만,
현실과 부조화되고 있는 자신과 완성된 기성사회에서 그들이 가질수 있는 사상과 이상,역할은 이것까지 밖에 안되는것이 당연하고 어쩔수 없이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이 책은 대변하는 듯 하다.
세연이 한 말이 기억에 계속 남는다.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받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