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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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책읽기를 게을리한 문외한이라도 '프란츠 카프카' 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접했다.
 

 지방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하며 41세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할때 까지 한번도 프라하를 떠난적이 없다는 그의 히스토리를 보니 <변신>이란 작품은 어쩌면 나름의 독특한 고립된 생활이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영향을 미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는 모기처럼 부모님의 피를 빨아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을 지킬 힘도, 돈을 벌 능력도 없는 무능한 존재처럼 느껴졌기에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월급은 가족에 대한 경제적 원조 가능성 뿐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써의 자존감을 갖게 해준 금전 이상의 의미였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가족을 도왔고 그렇게 할 수 있기에 다행이었으며 그렇게나마  보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 뿌듯함과 감사함이 부담감과 의미상실로 변이하며 다른 가치를 찾지못하고 스스로 제한되며 고립될때 우리는 <변신>의 '그레고르' 처럼  관습적인' 돈벌레' 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적인 대화나 따뜻한 교감이 결여된 일상속에서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한 조직에 몸담고 경제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이 참으로 황폐하다.

 

 생존 본능만 남겨진 '벌레'로의 변신은 어쩌면 그가 지친 일생의 탈출구나 도피처로 무의식중에 소망해왔던 것은 아닌가 느껴지기도 하다.
 돈벌이로써의 가치를 상실함과 동시에 더이상 '아들'이 아니고, '오빠'가 아닌 '그것'이 되어 버린 '그레고르'는 또 다른 존재감(?)으로 그동안 발현되지 못한 여동생의 책임감과 아버지의 가장으로써 능력을 회복시켜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자아보다 가족을 위해 의무적으로 행했던 그 역할이 진짜 '돈벌레'가 아니었을런지.

 그리고 그 번잡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탈피하고 실제 '벌레'의 모습으로 변신했을 때에서야 비로서 자신의 본능과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존재로 각성된것 아닐까.


 <변신> 이라는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지만 이  <문학동네>의 작품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그림들을 여백과 함께 채움으로써 오묘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서글프고 씁쓸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또한 어느 순간 '벌레'로 변해버린 '우리'와 같은 존재 = 그레고르의 이 기괴한 이야기는 카프카의 유니크한 창작력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의 또 다른 세계에 손길이 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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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똥
존 그레고리 버크 지음, 성귀수 옮김 /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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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매일 먹는다. 그리고 매일 싼다. 그리고 또 먹는다. 역시 또 싼다. 하루, 일년, 일생 동안 먹어대는 음식의 양은 어마어마하고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노폐물을 지속적으로 배출한다. 그렇게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고 부끄러워 밀접한 관계가 아니면 차마 소리 내어 얘기하기 어려운 '대소변' 내지 '똥, 오줌' 이라 불리는 찌꺼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것 만큼이나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얻고 불필요한 부분은 몸 밖으로 뱉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말그대로 나름의 필터링 프로세스가 실시간으로 작동되고 있는 셈인데 그러한 일련의 정화작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해로운 부분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수도 있기에 배설은 어쩌면 음식을 몸에 제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몸에서 필요치 않아 내보내버린 고약한 냄새와 세균, 독소로 쌓여있는 이 지저분한 유기물이 어찌하여 신성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 악취나는 분뇨에 대한 이야기는 뜻밖에도 종교와 의술과 그리고 전통문화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800년대에 육군대위로써 남북전쟁과 인디언 전투를 겪었던 저자는 우연히 목격한 인디안족의 오줌춤 의식에서 영감을 받아 기존의 문헌자료와 실제 체험담을 인용하여 배설물에 대한 인간의 은밀한 종교적 가치를 끄집어낸다.

 

 

 어린아이는 몸에서 배설되는 물질에 관해서 자기는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를 보인다. 아이는 배설활동 자체에 즐겨 몰두하고 그로부터 온갖 종류의 즐거움을 끄집어 낼 줄 안다. 신체의 일부이자 똑같이, 소위 말하는 나르시시즘적 과대평가인 셈이다.

 

 아이는 아예 자신의 배설물을 자랑스러워하며 어른에 맞선 자기 긍정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다가 차츰 교육의 작용에 힘입어 분식성 충동을 포함한 배설에 관한 행동양식이 억압의 도정을 밟는 것이다.


 아이는 이제 그런것들을 감추는 법을 배워가고 배설물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수치심을 느끼게끔 변모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설물이 타인의 몸에서 나온 경우에 비해서 자신에게 나온 경우에는 그래도 그런 거부감이 덜하지만 말이다.


 배설물에 대한 흥미는 그렇게 해서 점점 아이에게 의미를 더해가는 다른 사물들로 이전된다. 아이의 성격형성에 중요한 구성인자들이 분식 성향에 대한 억압과정 속에서 강화되고 발달되는 것이다.

 고대부터 머리카락, 손톱, 귀지, 땀 등의 부속물은 사람의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부분이 전체를 대신한다' 라는 원리하에 그 자체가 인간이며 인간은 신이 만들어낸 존재로서 곧 신과 동일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래서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배설물을 먹든, 마시든, 바르든, 뒤집어쓰든 그 이면에는 초자연적인 힘, 초월적인 세계를 향한 인간의 간절한 열망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또한 비과학적이지만 여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간요법을 보더라도 우월한 존재에 대해 구원을 소원하는 동,서양의 동일한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그 절대적인 존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제나 라마승의 분뇨는 병을 낫게하고 액운을 물리치며 자신을 존귀하게 만들어주는 성수와 같다는 염원의 생각이 '신성한 똥' 의 근원이다. 그런 완전무결한 존재의 '신성한 똥'을 다양한 방법으로 취함(?)으로써 동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배설물조차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었고 그것은 이후에 온갖 마법과 주술에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분뇨와 관련된 식용관습이나 제례의식, 점술 등의 내용이 다소 식욕을 감퇴시키고 속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 출발은 신성한 존재를 기리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와 같은 미개한 풍습이 현대 의술과 상당한 밀접하다는 부분에서 이 책은 꽤 흥미롭고 신선한 자극을 준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우월한 존재에 대한 갈망이, 숙명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부여된 본능적인 강박증인지, 완전한 존재의 초월적인 영생을 희망하며 생긴 절대적인 믿음인지, 존재치 않는 허구의 그림자로 자신의 불완전성을 감추고자 하는 은폐의 의지로 발현된 최초의 욕망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초자연적인 능력과 인간의 연결 고리에 의심을 품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배설물은 더이상 '신성한 똥'이 아니라 '오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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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유전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더 똑똑하고, 더 아름답고, 더 건강한 혼혈의 기적
아론 지브 지음, 김순미 옮김, 최재천 감수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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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리드하는 1%는 되지 못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시켜 더 나은 후손을 만들고자 하는 갈망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존목적이 종족번식을 통한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일면에서 보면 남녀의 결합을 통해 잉태되는 자손의 유전자 퀄리티는 종의 흔적이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이슈이다. 물론 선조를 포함한 양 부모의 유전적인 각종 변수와 지리학적인 영향과 환경적인 조건하에 자연적으로 생식되어 번식되는 것이 맞으나 그 범위에는 우리가 절대 손댈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 있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보다 빠르게 진화할수 있는 선택적인 영역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얼굴 대칭과 관련하여 미남, 미녀에 대한 기준과 완벽함에 애기하는 것을 보고 소모적인 잡담이라 간주했었는데 실제 유전학적으로도 완벽한 좌우 대칭에 가까울수록 안팎의 조화로운 균형미를 갖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니 거울속의 비친 불균형적 외모에 가슴이 아파온다. 

 

 여기서 좌우 대칭에 대한 기준은 얼굴을 포함해 모든 신체를 이야기 한다. 알다시피 인간의 신체를 정 중앙을 기준으로 하였을때 왼쪽과 오른쪽의 비율이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 쪽 팔길이나 발길이가 아주 미세하게 긴 경우도 있고 더 두꺼운 경우도 있다. 아마 완벽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인구가 더 많을 것이고, 그것은 부족한 균형의 유전자를 가진 인류의 비중이 더 높다는 얘기도 되므로 그 불균형의 숫자만큼 조화로운 균형미를 이뤄 진화할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류가 상당히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 그렇다면 저자가 그렇게 애기하는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다. 여기서 인종이라함은 나라를 달리하는 민족이기도 하고 피부색상을 기준으로 하는 백인, 흑인, 황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 열성의 유전자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더 진보할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유전자로 태어나게 하는 원료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에 대한 논리를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하기 위해 나름의 통계와 실험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데 실제로 면역력이나 지능지수가 높아진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그렇게 인간의 자유 의지로 유전자 진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반대의 경우, 즉 근친상간이라는 동일한 혈족의 결합이 유전학적으로 열성인자를 낳게하고 질병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은 과거에서부터 증명되어 왔다. 물론 소수민족의 경우 독립된 유일한 혈통을 중요시하여 그러한 부분이 여전히 관습처럼 유지되고 있으나 혈연관계의 결합이 열등한 자손을 잉태할 가능성이 높음은 오래전부터 보고되어온 과학적인 사실이다. 어쩌면 이는 보다 다양한 인류의 발전과 진화, 그리고 화합을 위해 유전자가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워낙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주장인지라 그의 논리는 인종주의자, 혼혈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많은 편견에 부딪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화적, 인종적 '섞임'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오고 자연적인 다양성의 선택을 통해 이뤄지는 진화가 인류학적인 접근에서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수치적인 비중은 미미하지만 국제적으로 다른 인종간의 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왔다. 우리네 시골에 살고 있는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까지 생각하면 자국에서도 이미 유전자의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섞임' 을 두려워말자. 변화를 수용하고 더불어 진화하자.

 

 얼마나 다행인가, 자신의 의지로 열성의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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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 증보개정판
스테파니 케이브 지음, 차혜경 엮어 옮김 / 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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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범죄 수사대> 라는 미드가 있다. 너무도 현실적인 상황설정과 다국적인 등장인물들 모습때문에 TV를 시청할때면 케이블 채널을 한 바퀴 돌려 가능한 챙겨보는 편이다. 며칠 전 시청했던 지난 시즌의 에피소드에는 갓난아이의 죽음과 성범죄가 연관되어 내용이 전개되는듯 하였으나 결국 예방접종을 하지 않음으로써 놀이터에서 접촉된 홍역바이러스로 인해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죽은 아이의 엄마는 부모로서 미성숙한 어린 미혼모였고 죽은아이에게 홍역 바이러스를 퍼트린 다른 아이의 엄마는 '자연면역'이라는 나름의 주관을 갖고 가정과 아이들의 양육에 열심인 이상적인 가정주부였다. 홍역을 퍼트린 아이의 엄마는 예방접종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접한 후 정부의 일괄적인 백신접종이 얼마나 아이에게 위태로운 행위인것인지 깨닫고 자연면역을 형성하도록 아이를 정성을 다해 양육하였고 그렇게 홍역도 극복하여 법적인 테두리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지켜냈다.

 그러나 그 아이를 통해 무방비상태의 갓난아이가 홍역에 노출되어 사망하는 결과가 초래되자 재판이 열리게 되었고, 공공 집단사회에서 그렇게 자연면역을 선택하여 타인의 아이를 죽게한 아이 엄마의 행동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화두였다.

 

 결과적으로 홍역을 퍼트렸던 아이의 엄마는 무죄로 판결이 났고 그로 인해 죽은아이의 엄마는 울분을 토해내며 통곡했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의 죽음을 위해 권총을 들고 무죄를 받은 그 아이의 엄마앞에서 "당신은 내 손녀뿐 아니라 나까지 죽게 만든 여자야!"라며 자결을 하며 끝을 맺는다.

 

 이 비극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니 백신 이라는것이 어떤 원리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고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무인도에서 홀로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공동체로서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사는 존재이므로  질병을 확산시키는 원인 제공은 피해야하는 것이 당연하고 도의적인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백신이라는 것이 정말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줄 유일한 솔루션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권장하는데로 맞는것이 정답인지는 꼼꼼히 확인하고 살펴봐야할 일이다.

 

 습자지 같은 나의 얕은 상식으로 백신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방하고자하고 하고 피하고자 하는 질병을 비활성화된 죽은 바이러스 상태로 약제화 처리되어 몸에 사전에 주입함으로써 인공적인 면역력을 획득하여 실제 질병으로부터 대항하게 만들어주는 원리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백신에는 수은이나 페놀, 염산같은 유해한 화학물질이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들어갈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인공적으로 생성된 면역성은 내몸에 다른 자연면역까지 사라지게 하고 그 효과 자체도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리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이 책은 각 질병의 종류별로 백신에 대한 상식, 첨가물, 부작용 등에 대한 사례와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당연히 알아야할 기본적인 상식이기도 하고 아이가 없더라도 성인으로 살면서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 너무 다양하기에 질병과 그 영향에 대해 마땅히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백신의 출현은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그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자연면역은 자의로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의 출현은 거의 인류를 구제해준 위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르고 각자가 가진 태생적 유전 형질이 다르기에 백신에 대한 반응 또한 다를 수 밖에 없고 특히나 면역력이 취약한 유아기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아이의 몸에 마구잡이로 인위적인 죽은 질병을 넣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아이가 선천적으로 건강해 몸속에 갑자기 들어온 백신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여 예상된 면역체를 형성한다면 다행이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또는 결함이 있는 건강 상태에서 그 바이러스균들과 싸워야 한다면, 그리고 거기서 패한다면 아이에게 부모가 직접 균을 주입해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면역력과 부작용을 두려워하여 백신을 맞지 않고 자연면역 생성을 위해 방치한다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몹쓸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숙주가 되어 전염병을 창궐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다른 확실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없다면, 백신 한대를 맞더라도 알고 맞고 시기를 적절히 조절해서 몸이 기능적 역할을 다할수 있는 시기에 맞춰서 접종하자는 이야기다. 어떤 성분이 들어가고 어떤 과정으로 백신이 만들어지는지 연령에 따른 알맞은 때를 알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세상을 함께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제대로 알고 적절히 이용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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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멜랑콜리아 - 상상 동물이 전하는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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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를 흥미롭게 읽었던 차에 한겨레의 신간에 소개된 분홍색 표지의 '몬스터 멜랑콜리아' 가 눈에 들어온건 어쩌면 당연할듯 싶다. 전작에서 민담이나 설화를 기초로 16가지 테마가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하던 저자는 이번에는 우리가 상상속 괴물이라 여겼던
존재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그것이 질투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서 표출된 기호였음을 전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을 나열하며 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질투, 우연/필연, 자기애, 첫사랑, 고백, 기다림, 무관심, 소문, 외설, 외로움, 비밀등 16가지 테마를 기준으로 그 표출된 망상이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인상깊은 스토리를 기대하며 리딩을 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듯도 싶다. 사실 그가 나열하고 있는 몬스터의 종류가 150가지나 되다보니 디테일한 설명이나 깊은 내용보다는 다양한 테마와 단편적인 스토리에 치중하여 단절된 느낌으로 머릿속 깊은 사유를 끌어내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특히나 내용은 전작과 중복된 내용이 많아 새로운 작품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에 속한 부록을 보고 있는것 같은 착각 마져 든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결국 제목으로 낚시질한 모양새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몬스터의 종류를 줄이고 디테일한 내용에 좀더 심혈을 기울였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와 함께 읽는다면 상상속 이미지의 가이드로써 스토리의 이해를 도와 상당히 독자의 뇌리에 인상깊게 남을 작품일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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