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탈지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0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 지음, 한성숙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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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르터레스쿠의 소설집 《멜랑콜리아》가 2019년 작품이다. 그걸 먼저 읽고 흥미롭기는 한데 소년/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의 수사가, 그러니까 (청)소년이 쓰는 단어/문장치고 수식이 너무 과해 조금 얹혔었다. 그럼에도 이이의 주인공들이 사물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작가의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기억하기를 잘했지.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480번으로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의 1989년 작품, 작가가 서른세 살 때 <꿈>이라는 제목으로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은 작품이 책방에 나왔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다른 독자들 한테도 《멜랑콜리아》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여러 도서관을 통틀어 내 책상에 놓인 <노스탈지아>. 딱 한 권이다.


  아, 이이가 젊은 시절에는 이랬구나.

  이게 책을 읽은 첫번째 소감이다. 《멜랑콜리아》도 서로 약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단편을 모은 책이다. <노스탈지아>도 마찬가지. 다섯 편의 개별적인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퉁쳐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멜랑콜리아》와 마찬가지로 소설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그냥 소설책이어서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책. <노스탈지아>도 《멜랑콜리아》처럼 한 권으로 묶어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1989년에 《잠》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발표하여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았는데 잔인한 장면묘사와 아슬아슬한 성적 표현 때문에 검열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가, 1993년에 <노스탈지아>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재출간했다고 작가 연보에 나온다. 그러니까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굳이 분명하기 바란다면 <노스탈지아> 역시 소설집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잠>. 그래서 다섯 작품 모두 꿈이 나온다. 희망사항을 일컫는 꿈이 아니라, 자면서 뇌활동의 결과로 뭔가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이루어진 유성sound 영상. 그래서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긴 분량인 <REM>의 “REM”이 가리키는 것이 잠잘 때 뇌의 활동이 활발해져 눈알이 빠르게 운동하며 Rapid Eye Movement 꿈을 꾸는 단계를 뜻한다.

  현대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가장 기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꿈 이야기하는 것. 그럼에도 커르터레스쿠가 꿈꾸는 행위와 꿈 이야기를 갖고 나타났을 때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꿈도 꿈 꾼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니, 나 같은 범부들이야 수염 허연 조상님이 나와 숫자 여섯 개를 불러주어 혹시 로또라도 맞을까 김칫국물 벌컥벌컥 들이켠 이야기나 하겠지만, 현대 루마니아 문학계의 큰 별이라 일컫는 커르터레스쿠 같은 장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하면 이거야말로 독자가 꿈 해몽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수준의 그 무엇이냐, 그래, 초현실주의적的이고, 보르헤스적이며, 오비디우스적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략난감이며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책 좀 읽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려 하니, 루마니아 검열당국이 지적한 아슬아슬한 성적 묘사가 깜찍하게 재미있어서는 아니고, 도무지 끝간 데 없는 장황한 묘사가 간혹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 놓기는 하지만, 일관된 긴 어둠의 통로와 이어지는 지하의 제법 큰 공간에서 펼치는 큰 구라, 동유럽 작가들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거대한 묵시록적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동유럽, 나아가 전 유럽에 지하 땅굴로만 이어진 특별한 통로가 있어서 저 마드리드부터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베이징까지 도무지 못 가는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없던 건 아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 99번, 두샨 코바체비치가 쓴 <옛날 옛적에 한 나라가 있었지>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그러나 코바체비치의 지하 땅굴은 광범위한 지하망과 생존을 위한 땅굴이었던 반면, 커르터레스쿠는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과거의 죽음과 밀접하니, 지난 금요일에 업로드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 <슬픔의 물리학>에 등장하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의 거처와 비슷하다. 흠. 코바체비치(구 유고슬라비아), 커드러레스쿠(루마니아), 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전부 동유럽 작가. 우연은 아닐 거 같다.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옛 독재시절의 길고 괴로웠던 시간의 터널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다는 내 의견이 조금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독후감에서는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앞에 배치해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룰렛 승부사>만 소개하겠다. 분량도 제일 짧다.

  룰렛. 도박장에서 스테인레스 금속 구슬이 뱅뱅 뚜르르르 굴러가다가 작은 박스에 쏙 들어가면 번호나 색깔에 돈을 건 숱한 사람들의 탄성과 비명이 터지는 룰렛. 그거 아니다. <룰렛 승부사>의 룰렛은 영화 <디어헌터>, 크리스토퍼 월켄이 베트콩의 포로수용소에서 자기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 그것을 말한다.

  화자는 약 60년간 글 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노인. 룰렛 승부사는 그의 친구다. 실존했던 사람이라는데 당연히 허구. 하여간 그 친구 아드리안은 곤충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리고, 지저귀는 새들을 돌로 쳐 죽이는 거친 아이였다가, 발작적 분노의 순간을 겪으며 성적 욕망이 왕성한 청소년을 거쳐, 강간과 강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인 죄수로 악당의 3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전형적인 범죄자였다. 화자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이 아드리안이 점차 악마화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그걸 글, 일종의 보고서로 쓴 것이 <룰렛 승부사>이다. 거친 아드리안은 힘 없는 찌질이 제레누스를 한 번도 때리지 않고 오히려 그런 위기에서 구해주어 특별한 관계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소설가와 범죄자가 제대로는 어울리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

  제레누스가 쓴 책이 제법 많이 팔려, 팔려도 너무 많이 팔려 이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시절이 왔고, 그래서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어여 쁜 아내 자랑도 할 겸 시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들렀더니, 그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차려놓고 세 명의 사업가와 함께, 의자에 거의 누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멋대로 앉아 있는, 잘 차려 입은 아드리안을 만나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제레누스는 알아차렸다. 내 술고래 범죄자 친구 아드리안과 룰렛 승부사는 동시에 태어난 검은 쌍둥이라는 것을. 독자가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모른다. 검은 쌍둥이. 쌍둥이 자리, 6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 또 나온다는 걸. 이 장면부터 아드리안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승부사라고만 할 예정이라는 것도.


  사업가들과 승부사는 ‘나’ 제레누스의 눈이 안 보이게 검은 천으로 가리고 어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간다. 길고 어둡고 지저분한 좁은 통로를 거쳐 나중에 옛 코냑 공장의 작업장이라는 것이 알려질 제법 넓은 지하에는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그저 술통 비슷한 것과 열에서 열다섯 정도의 잘 차려 입은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으로 갈아입은 술고래 친구가 등장하고, 이미 관중 또는 돈을 걸 신사 숙녀들한테 검증을 받은 리볼버 권총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총알 하나를 보여준 후견인이 총과 총알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곧바로 탄창에 총알을 넣고 한 바퀴 차르르르 돌린 후에 권총을 승부사에게 건네면, 벌써 통 위에 올라선 승부사는 극도의 공포에 질린 얼굴표정을 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채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꽉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

  “딸깍.”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피와 살점과 뇌수의 흔적이 잔뜩 묻은 회벽에 한 번 더 피와 살점과 뇌수와 뼈조각을 보태면 돈을 건 관중들이 따는 거고, 아니면 승부사와 후견인이 돈을 번다. 생존할 확률은 5/6. 그러면 아무도 여섯 번을 생존할 수 없다. 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아니다. 살 확률은 5/6. 여섯 번 내리 살 확률은 (5/6)^6. 내가 계산해드리지. 33.490%. 여섯 번 방아쇠를 당겨도 살 확률은 1/3이 넘는다. 책에서는 네 번 이상 생존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연이어 생존에 성공해 큰 돈을 번 승부사는 하도 많이 죽음과 직면해 더 이상 실제로 살 마음이 없는지, 이제 스스로 후견인을 겸하면서 마음대로 도박 룰을 정한다. 그리하여 권총 탄창에 실탄 두 발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고, 세 발, 네 발, 다섯 발을 넣고 쏴도, 안 죽는다.

  결국 여섯 발을 다 넣을 테니 돈을 걸라고 하는 승부사.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안 죽겠지? 그렇다.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시고 과거 어느때보다 큰 돈을 건 부쿠레슈티의 도박사들.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리볼버를 머리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아이쿠, 부루레슈티에, 그만 다른 곳도 아니고 부쿠레슈티에 큰 지진이 나서 승부사가 딛고 선 통이 흔들, 총이 머리통 위를 살짝 지나가버린다.

  왜 안 죽었을까? 세번째 실린 작품 <쌍둥이 자리>에서 (p.269)쌍둥이자리 사람들은 스스로 몰입하고 만족한다는데 이거하고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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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6-29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 깐 건 작품 탓이 아니라 내가 소양이 부족해 작품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도 그냥 팍 만점을 부르짖기 남세스러워서.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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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1913년 8월 끝자락생. 남성. 수두, 홍역 등 유년기 모든 질병과 함께 전쟁도 통과함.

  나는 해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남. 오늘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죽을 것.

  나는 1968년 1월 1일생. 남성. 68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기억함. 지금 사는 올해는 기억 못 함. 몇 년도인 지도 모름.

  나는 언제나 태어나 있음. 빙하기의 시작과 냉전의 끝을 기억함. 죽어가는 공룡을 보는 것은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었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음. 마이너스 7개월. 올리브 열매 만하고 무게는 1.5그램. 성별 모르고 꼬리가 없어지고 있음.

  나는 1944년 9월 6일생. 남성. 일주일 뒤 아버지는 전방으로 떠남. 어머니 젖이 말라 와인에 적신 빵으로 나를 달래줌.

  나는 기억함. 장미 덤불로, 자고새로, 은행나무로, 민달팽이로, 6월의 구름으로, 가을의 보라색 크로커스로, 체리꽃으로, 눈으로.


  프롤로그를 정리하면 이렇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2011년에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을 출간해 불가리아 국가문학상을 받고 특히 독일에서 필명을 떨치게 되는 ‘나’는 1968년 1월 1일생에 제일 가깝다. 직업이 작가이고, 책이 무지하게 팔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 인터뷰 따위는 가뿐하게 사절하고 그저 책 읽고, 글 쓰고, 세계로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 그걸 글감으로 작품을 쓰는 사람. 반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자신을 투영한 허구의 인물이다.

  그럼 다른 ‘나’는 누구일까?

  1913년 8월 끝자락에 딸 일곱이 있는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사실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1944년 9월에 아들을 낳고 일주일 만에 큰 전쟁터였던 헝가리 방면으로 떠난다. 1944년생 ‘나’는 자라 변호사 여성과 결혼해 1968년생 아들을 낳는데, T시에서 아파트를 배정받기 위하여 곳곳을 다니며 그리 크지 않은 지하방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이들 전부 ‘나’이다. 심지어 초파리, 민달팽이, 6월의 구름 같은 것도 모두 ‘나’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나’, 작가가 자신,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공감하여 들으면서 스스로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놀라운 공감각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와의 공감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이야기의 예를 들어보자.


  어린시절 ‘나’는 어린이용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게 기억에 콱 박혔다. 신화 가운데 파시파에가 아름다운 흰 소와 관계하여 낳은 황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 이야기가 제일 심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니까 자기가 도와 왕이 된 미노스가 다스리는 크레타 섬에 아름다운 황소가 한 마리 있어서 그걸 희생해 바치라고 요구했다. 욕심 많은 미노스가 정말 바치려고 보니 이게 아까웠다. 그래 다른 소를 희생했다. 명색이 포세이돈인데 그걸 몰라? 그래 주문을 걸어 미노스의 정숙한 아내 파시파에가 흰 소에 반하게 만들었다.

  이제 신의 심술 때문에 암소와 비슷하게 발정을 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재주꾼 다이달로스에게 나무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해 그 안으로 들어간다. 흰소가 발정한 나무 암소에 다가와 다른 암소들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교접을 하니, 파시파에는 그 일 때문에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타우로스가 사람의 몸을 하되 얼굴은 뿔이 달린 황소의 모습이라 이를 불길하게 여긴 미노스는 다시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라 해서 그 한 가운데로, 어린 미노타우로스, 여전히 엄마 파시파에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는 아기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

  미노타우로스는 자라면서 괴물이 되어 1년에 아테네의 처녀 일곱 명, 총각 일곱 명을 일용할 양식으로 잡아먹는다. 훗날 아테네에 영웅이 나왔으니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괴물을 소탕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크레타 섬에 와서 미노스의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여버린다.

  이때 미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자기 동생을 살해한 뒤에 어떻게 미궁에서 빠져나오겠느냐고 하면서 테세우스에게 실의 한 끝을 계속 잡으며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일을 끝낸 테세우스는 실을 따라 밖으로 나왔고, 나라에 죄를 짓게 된 아리아드네를 옆구리에 차고 그길로 크레타를 떠나 낙소스 섬에 도착한다. 거기서 아리아드네한테 야매로 장가를 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에 그냥 두고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섬에 홀로 남은 아리아드네, 한탄만 하고 있는데 다른 배가 도착하니 선주가 누군고 하면 바로, 바쿠스. 주신이다. 그래 그의 여인이 되어 낙소스 섬을 떠난다는 이야기.


  ‘나’가 이야기를 보는 관점은 어린 아이가 갇힌 상황. 버림을 받은 일. 그러면 아이는 얼마나 공포에 떨겠는가 하는 것이다. 막강한 영웅, 헤라클레스와 맞장을 떠도 전혀 꿀릴 것 없으며, 어쩌면 헤라클레스의 다른 버전인 것처럼 거의 비슷한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가운데 영웅 테세우스가 어찌하여 크레타 섬에 들어와 비록 이상한 모습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의 가슴에 양날 검을 박을 수 있겠느냐, 이런 걸 따지지는 않는다. 대신 버림받은 아이의 상태에 깊게 공감한다.

  1925년, 열두 살의 ‘나’. 내 안의 할아버지. 즉 실체는 할아버지이되 2011년이 되어 그 상황을 공감각을 이용해 느끼는 것은 작가인 ‘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나’에서 작은 따옴표 ‘…’는 사라질 수 있다. 나는 불가리아 돈 5레바를 들고 장터로 달려간다. 구경을 할 수 있고, 소소한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고, 달고 맛있는 군것질도 할 수 있다.

  시장 속에 작지 않은 천막이 쳐 있고, 입구에는 어른 한 명이 큰 소리로 미노타우로스를 구경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열두 살의 어린 미노타우로스란다. 나는 어린 시절 충격적으로 읽은 그리스 신화의 장면이 떠올라 도무지 충동을 감출 수 없다. 그래 딱 하나 있는 5레바 동전을 내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무대가 있었고 무대 가장 안쪽에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객석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드디어 쇼를 시작한다. 이제 객석으로 돌아앉은 소년은 집에 있는 책에서 흑백 삽화로 본 괴물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 무섭기는커녕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다. 얼굴이 크고 털이 많이 났으며 좀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몸은 그냥 보통의 소년이다.

  집에서 버림받아 순회 서커스 또는 쇼단에 팔려 장터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여주는 대가로 음식과 허름한 옷을 얻는 소년.


  1913년생 나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새에 엄마와 일곱 누나들과 어떻게 하든 먹고 살아야 한다. 없는 살림에 수탉이 그려진 마차가 딱 하나 그나마 재산이라고 있는데 그걸 타고 제분소로 간다. 엄마와 나와 누나 세 명이 함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훗날, 꼴에 이것도 마차라고, 마차를 가지고 있었다고 부르주아 신분을 가진 반동분자 가정으로 몰리는데 그건 나중의 일이고, 하여간 제분소에 가서, 엄마와 누나들이 일을 하는 사이에 어린 나는 제분소 창고의 빈 밀가루포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 보니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두려움의 첫 발자국이었다.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할 만큼의 두려움. 너무 시끄럽고 부산한 제분소. 하얀 거인 두 명과 흰 안개 같은 밀가루가 날려 거미줄마저 희다. 절박함은 더욱 거세게 밀려오고 그때서야 나는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 크게, 크게 외친다. 절망과 분노, 당혹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눈물이 유일한 위안이다. 바는 버려졌다.

  누나와 엄마는 나를 버리고 수탉이 그려진 마차를 타고 갔다. 얼마나 갔을까? 큰누나가 엄마한테 말한다. 막내가 안 탔어요. 엄마가 대답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 자신이 맡아 키워야 하는 아이가 여덟 명. 이 가운데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그리 크게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세 딸은 말이 없다. 잠시. 어쨌든 마차는 멈췄다.

  “내가 갔다 올 게요.”

  마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제분소로 원피스 치마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큰누나. 나, 하마터면 미노타우로스 꼴 날 뻔했다. 이게 1913년생 ‘나’.


  이렇게 ‘나’는 할아버지의 유소년 시절뿐 만 아니라 청년 시절, 2차세계대전 중 헝가리에서 부상당해 여성 혼자 사는 집의 지하실에 숨어 몇 개월을 살던 시기의 정황까지 공감한다. 죽음의 침상에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준 편지 한 장. 해독할 수 없는 헝가리어로 쓰인 편지 위에 연필로 외곽선을 따라 그린 한 아이의 작디작은 손바닥 그림. 그리고 주소.

  이미 성공한 작가가 된 ‘나’는 정말로 헝가리의 주소지를 찾아가고, 늙은 여성을 만나고, 늙은 여성이 낳은 ‘나’보다 나이를 좀 덜 먹은 것처럼 보이는 건장한 사내를 만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이렇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훗날 <타임 셸터>를 위하여 20세기, 그리고 지구 탄생의 시점부터 시간을 구분하여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타임 셸터>의 중요한 등장인물 가우스틴과 함께.

  ‘나’의 공감능력에 가우스틴의 엽기적 발상을 합하면 독자는 슬픔의 양자 물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명색이 “양자” 물리학이니, 아니, 물리학이니, 그리 만만하지 않겠지만. 양자물리학 쪽으로 일천한 독자는 정말 드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는 생각과 함께 재미나게 읽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 그래서 별점 하나 깠다는 것도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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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원 1 - 믿음의 기원
박해성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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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을 한 권에 담으면 덧나? 뾰루지 생겨? 알레르기 있어? 지-드라마 일본현대희곡집은 한 권에 다섯 편 실어주던데.
잘 생각하셈. 희곡 독자가 별로/거의 없는 세월에 이렇게 꼬장 부리다가 희곡 출판이 다 거덜 날 수도 있지 않겠음둥? 나도 읽으려다 말았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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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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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은 1853년 모스크바 외곽의 밀림 속에 있는 휴양지 쿤체보에서 시작한다. 있는 집 도련님들이 커다란 피나무 아래 누워있거나(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베르세네프), 엎드려 있다(파벨 야코블레비치 슈빈). 베르세네프는 대학을 3등으로 졸업하고 잠시 쉬고 있다. 역사와 철학 중에 하나를 더 공부하여 장래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목표를 위하여 5년 후에는 독일의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통과시킬 예정이지만 아직은 그저 꿈만 꾼다. 슈빈은 나이가 어느 정도 차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죽으면서 사촌 동생인 안나 바실리예브나 스타호바에게 슈빈을 잘 돌봐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 스타호프 집에서 대학을 다녔다. 원래는 의학을 공부했지만 1년 만에 자기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중도작파, 모스크바 미술계에서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젊은 조각가 신분이다. 작품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는 어린이와 산양山羊 부조작업을 하다가 노대가들과 고대 미술품을 보고 낙담해 깨 버렸다. 자신의 예술 외에 여자의 아름다움만 사랑하는 예술가. 최근이지만 이중에서 처녀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있다. 보이나봐? 척 보고도 처녀인지 아닌지. 2백년 전 예술가답게 어딘가 한 군데 좀 삐딱하고 괴짜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조연급답게 귀여운 골통 비슷하다.

  반면 베르세네프는 학교 다니며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이제 당분간 무위, 안일한 생활, 맑은 공기, 목표달성(우등졸업) 이후 허탈감을 달래는 휴식, 친구와의 가벼운 대화 등을 위하여 최근 쿤체보 숲 속의 다차를 하나 얻었다. 다차는 러시아에서 유행한 휴양지 건물. 부르주아들은 자기 다차가 있는 게 보통이었고 그 정도가 안 되면 베르세네프처럼 한 채 임대하면 된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들 특히 <백치>에서 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다차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남자만 두 명 소개했다. 그러면 이제 여자가 나와야겠지? 이 둘을 갈등의 국면으로 치닫게 만드는구나, 독자한테 이런 생각, 오해, 짐작이 들게 만드는. 그렇다. 나온다. 옐레나 니콜라예브나 스타호바.

  먼저 결혼 전 이름이 슈빈이었던 옐레나의 엄마 안나 바실리예브나에 관해 조금 언질을 드린다면, 슈빈의 5촌 이모 정도의 족보 자격으로 그를 키웠다 할 만한 은인. 일찍이 슈빈에게 예술 공부 또는 견식을 넓히기 위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권하며 큰 돈을 준 적 있지만 슈빈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좇아 소아시아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에 가서 돈을 탕진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슈빈은 진심으로 안나 바실리예브나를 존경하고, 은인으로 생각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아서 속으로는 그냥 암탉으로 여길 뿐이다. 진도가 나갈수록 선한 19세기 부르주아 여인의 전형을 연기한다. 결혼해 딸 안나 하나만 낳고 단산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긴 했다.

  아빠 니콜라이 아르툐미예비치 스타호프는 저 위대한 1812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퇴역 대위의 아들이다. 귀족의 혈통이 흐르지만 끈 떨어진 갓 신세. 아시다시피 러시아에는 이런 빌어먹는 귀족들이 무척 많다. 이 가운데 한 가문의 아들로 성장한 퇴역 중위. 이이에게는 큰 꿈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유리한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안나 바실리예브나가 일곱 살 때 고아가 되었지만 꽤 많은 영지와 저택, 귀금속 및 보석, 그리고 상당 수준의 현금을 상속받은 아름다운 아가씨였을 때 큰 파티장에서 뒷다리 제치기에 성공해 꿈 하나를 이루었다. 딸 옐레나 이후 후사가 없자 그걸 핑계로 독일 태생 과부와 긴 연애를 하고 있다. 그 과부가 자기 친지에게 쓴 편지에 그를 “나의 멍청이”라고 비웃는 건 5년 후 호호 할배가 되어 걷어 차일 때까지 알지 못했다. 왜 비중이 별로 없는 아빠를 들먹였느냐 하면, 투르게네프하고 가족 구성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작품 속 누군가 작가를 닮을 수 있는데 그게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또는 니콜라이 아르툐미예비치 둘 가운데 한 명인 거 같아서였다.


  일단 안드레이 베르세네프와 파벨 슈빈 둘 다 옐레나를 연모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파벨은 감정이 안드레이보다 월등하게 분방하여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불쾌함이나 역겨움을 주기도 한다. 바로 어제 그런 장면을 하필이면 옐레나 앞에서 저지르고 말았다. 집에 옐레나 말고 다른 젊은 아가씨가 한 명 더 있었으니 독일 아가씨 조야 니키티시나 뮬러. 러시아계 독일 처녀이다. 스타호바네 다차에서 옐레나의 말동무나 하라고 데려왔는데 정작 안나 바실리예브나가 불러 자기 옆에만 앉혀 놓는다. 밤이 시작되는 훈훈한 저녁 무렵, 분방한, 책이 끝날 때까지 결코 난봉꾼 수준까지 치닫지 않는 그저 분방한 파벨 슈빈이 집 복도 어두컴컴한 곳에서 조야의 두 손을 붙잡고 손등에다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을 옐레나한테 들켜버린 거다.

  근본적으로 옐레나는 예술 방면으로 자질이 있는 편이 아니다. 예술보다는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은 학문이 훨씬 맞는다. 그러면 당연히 역사 또는 철학을 더 공부할 안드레이가 더 어울린다. 어제의 실수가 아니더라도 평소 파벨 생각도 그랬다.

  농촌에 기반한 부르주아 가운데 한 명인 이반 투르게네프답게 여기까지 모든 장면이 자연, 학식, 예술, 이탈리아, 프록코트, 드레스, 피아노 연주 같이 벨벳 같은 부드러운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스타호프네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베르세네프가 자기 다차로 돌아간다. 그의 뒤를 헐레벌떡 좇아오는 파벨. 그러더니 베르세네프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는 고백을 한다.

  “안드레이, 나는 옐레나를 사랑한다네. 그러나 옐레나는 자네를 사랑하지.”

  안드레이는 조금 놀란다. 자기가 옐레나를 사랑해? 맞다. 그것 때문에 여태까지 속으로 일종의 과호흡증을 앓았다. 그런데 옐레나도 나를 사랑한다고? 아, 이렇게 행복할 수가.

  하지만 파벨이 그녀를 사랑한다니. 파벨은 나 역시 옐레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사랑을 파벨에게 양보해야 하나?

  파벨 역시 진실한 친구. 자신이 옐레나에게 맞지 않는 점을 이야기한다. 자신은 옐레나가 보기에 너무 경박한 젊은이라고. 그녀는 진지한 사람, 양심적인 과학 신봉자의 대표자라면서. 또 앞에서 말한 조야의 손에 키스한 장면. 그것보다 바로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파벨이 조야에게 험담을 해버렸던 모양이다. 분방한 성격이니 그럴 수 있지만 옐레나가 보기엔 역겨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슈빈은 그만, 안드레이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하니 정작 안드레이가 민망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작품이 중간 정도까지 진행되었을 때, 안드레이가 모스크바에 들를 일이 생기고, 거기까지 간 김에 유일한 학교 절친 드미트리 니카노로비치 인사로프를 만난다. 불가리아 사람. 오스만 제국의 압제에 허덕이며 사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하여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는 학문을 하고 싶어 모스크바에 왔지만 조국의 부름이 자신의 공부보다 먼저라고 생각해 귀국했고, 혁명을 준비하다 상당한 수준의 고초를 겪어 목 주변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일단 불가리아에서 탈출해 모스크바로 돌아와 러시아 내 불가리아 동포를 집결하고 국내 혁명전선 동지들에게 여러 지령을 내리는 중추 가운데 중추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당연히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작은 방 하나를 얻어 궁상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 짠해서 안드레이는 자기가 지내고 있는 다차에서 여름을 날 것을 제안하고, 인사로프는 자기가 쓸 방값을 자신이 내는 것을 전제로, 즉 친구의 호의를 무상으로 받기를 거절하는 조건으로 다차에 들어온다. 그리고 옆집, 스타호프 다차에 가서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고, 대화를 하고, 대화는 대화인데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답게 세상 누구보다 진중하고 설득력 있는 논조로 깊은 대화를 전개해 나간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딱 눈치 채시겠지? 우리의 안드레이와 파벨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처음에야 옐레나를 포함한 스타호프 사람들이 보기에 인사로프는 배운 것만 많지 저 변방 중의 변방, 심지어 안나 바실리예브나의 머리속에서는 시베리아 옆에 있는 줄 아는 불가리아 촌놈이고, 생긴 것도 잘 생기지도 않았고, 얼핏 보기엔 그저 그런 보통 체격에, 조금 있으면 불가리안지 뭔지 하여간 다시 돌아갈 청년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가, 집안에서 딱 한 명, 옐레나는 그의 진중함과 정의로움에 빠져버리기 시작한다. 퐁당.

  철의 사나이 인사로프. 그도 사람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옐레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사로프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옐레나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할 일, 그냥 할 일이 아니라 조국의 해방시키는 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과업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인사로프는, 중간에 분방한 파벨이 다리 역할을 해서 어느덧 둘의 사랑을 둘 다 알게 된 상태가 되자마자, 다차가 있는 쿤체보 숲을 떠나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쿤체보와 모스크바. 백 베르스타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가 둘의 사랑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까? 하여간 이들의 앞에는 러시아가 영국-프랑스-오스만 연합에 코가 깨질 예정인 크림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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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 ㅣ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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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자는 신안 출신, 목포에서 초등과 중등학교를 마치고 한 해 재수? 하여간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4학년이던 1984년에 광주학살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학내시위를 주도하다 제적당해 훗날 복학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터뷰 기사 말미에 학력을 고려대 국문과 졸업이라고 해놓았으니까.

  이후 인천의 공단으로 가서 “잿빛 같은 15년”을 보냈단다. 국제작가축제의 참가자 소개를 보면 “2, 30대 시절 전자 공장과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하는 자신과 동료들의 삶을 받아 적다 시인이” 됐고, “4, 50대부터는 학생, 어른, 치매 병동, 알코올 병동, 홈리스, 기초수급자 가리지 않고 찾아가 강연과 강의를 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천안시 인근)시골에서 농사지며 이웃의 삶의 이야기를 가끔 시로 쓰고, 관계가 끊어지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약자들이 죽음으로 몰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현대 문명의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스무 살에 받아들인 80년대 운동권의 감각을 65세인 지금까지 45년 이상 저 들의 푸르른 솔잎처럼 변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는 시인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 재학/졸업자가 인천 공단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을 위조하여 들어가 노동조합에 개입한 듯한데 뭐 지난 이야기 길게 하면 좋을 거 없다. 하여간 상당한 정도로 왼쪽 멀리 가 있는 건 확실하다. 시를 읽어봐도 그렇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초판 발행이 2023년인데 상당한 시들이 예전 투쟁시기에 머물고 있다. 직접 그것을 바로 그 현장에서 경험한 시인으로 시절의 고통과 투쟁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질곡이겠지만 말이지. 예컨대 <이름 없는 조직>이란 시의 2연을 읽어보자.


  “순간, 가좌동 쪽에서 본드 냄새가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온종일 신발 바닥에 본드칠하다 우우 몰려가 발바닥 닳도록 춤추던 송림동 카바레, 어디선가 단무지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같았어요 철야 끝난 일요일 잠시 눈 붙이고 달려간 신포시장, 볼이 미어져라 먹던 왕만두 냄새, 미싱에 앉으면 만주에서 말 타고 달리는 듯하던 열여덟살 현옥이와 장덕이가 대한서림에서 책장을 넘기고, 바로 옆인 듯 애관극장에서 파업전야 같은 필름이 돌아가는데 (p.26~27, <이름 없는 조직> 부분)


  지금도 가좌동에 신발 공장이 있나? 만일 여전히 있다면 신발 바닥에 본드칠을 사람이 할까, 기계가 할까? 사람이 한다고 치더라도 우리나라 노동자가 할까 외국인 노동자가 할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더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만 두자. 시인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딱 한 다리만 건너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관두자. 이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옛 사람들.

  다만 벌써 40년이 훌쩍 넘은 오랜 이야기이다. 그때 타도해야 했던 건 많이 사라졌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지경으로. 그럼에도 시인은 여전히 80년대, 심지어 서울의 봄 광경도 시로 읊고, 1951년 전쟁당시 국방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노래한다. 누군가는 노래해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전쟁이나 학살, 집단 희생 같은 큰 규모의 심각한 비극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삶의 뒷방에서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조근조근 책만 읽으며 살고 싶다. 이것도 잘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이의 시집 가운데 드물게 등장하는 서정시 한 수 올리고 독후감 접겠다.



  꽃잎 세탁소



  꽃양귀비 붉은 꽃잎 위에 청개구리가 엎드려 있어서 나도 납작 엎드려 뭐 하나 들여다봤더니, 제 목울대로 꽃의 주름을 펴는 게 아닌가, 그 호박씨만 한 것이 앞발 뒷발로 붉은 천 꽉 부여잡고 꽈리 풍선 불어가며 다림질하는 동안 내 마음도 꽃수건처럼 퍼지고 있었다


  개망초 하얀 꽃잎 위에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있어서 나도 땅두릅 그늘 아래서 욜려다봤더니, 계란 노른자 같은 꽃술을 빨아대는 게 아닌가, 그 상추씨만 한 입으로 꽃잎을 빠는 동안 하얀 베갯잇 같은 구름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하늘이 갓 세수한 듯 말개지고 있었다  (전문.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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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6-2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써놓았던 시들을 뒤늦게 발표한 것은 아닐까요?
김해자 시인의 시집을 저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시집 제목이 생각 안나요 ㅠㅠ

Falstaff 2026-06-25 05:58   좋아요 0 | URL
써 놓은 시였을 수도 있겠군요. 2001년 데뷔니까 근데 그러면 반칙 아닌가요? ㅎㅎㅎ
그냥 아직도 옛 시절에 담겨 사는 사람인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