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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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부커 인터내셔널을 받은 책. 대개 “수상작”이라 하지 “상 받은 책”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 책이 부커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최초의 소설집, 즉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

  1948년에 인도 남부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인텔리 여성. 지금 78세니까 이이가 젊었을 당시에 대개의 인도 또는 무슬림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즉각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라고 《하트 램프》에 여러 번 나온다. 간혹 결혼 대신 대학에 입학시키는 가정도 있었는데, 이 책의 작가 바뉴 무슈타크의 집안이 그러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행간에 무슈타크라고 대학 진학을 쉽게 한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집안 내에서 나름대로 다툼을 겪었으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을 거쳐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1970년대 후반 인도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한 저항문학 운동 ‘반다야 사히티야’에 참여했다. 반다야 사히티야는 인도의 하급 카스트, 여성, 노동 계급의 삶을 문학으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무슈타크가 비교적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정 출신이라 하지만 남아시아의 무슬림 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으로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터, 평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판이 제대로 깔린 것이었으리라.

  48년생 작가는 당시 관습으로 보면 거의 할머니가 될 나이인 26세에 자유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다. 스물여덟 살에 아이를 낳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에 걸린 다음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편소설집 여섯 권, 장편소설 한 편,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을 냈다. 인도는 땅도 넓고 사람도 많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한데, 무슈타크는 작품을 칸나다 어로 써서 인도의 여러 지역 언어, 우르두어, 힌디어, 타밀어, 말라얄람어 등으로 알려졌다.

  2020년대 들어와 무슈타크의 새까만 고향 후배 디파 바스티Deepa Bhasthi가 근 반세기에 걸친 무슈타크의 단편소설집 여섯 권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작품 열두 편을 골라 영어로 번역했고, 이것이 저 먼 잉글랜드의 책가게까지 알려져 2025년에 부커-인터내셔널을 먹게 된 거다.


  이 책이 다분히 페미니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무슈타크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입각해 작품을 썼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내가 읽기로 바누 무슈타크는 여성 소설가로서 같은 세대를 사는 여성들의 여러 모습을 소설로 그려냈다.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의 독자가 읽으니 사회와 종교, 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했는지가 드러나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작품들을 읽어보면 아마도 1970~80년대 남 인도, 그리고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독자마저 갑갑한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 촉감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목을 콱 조르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한 순간의 빛도 발견하지 못하는 질식 상태.

  그러나 이런 것들만 들어 있지는 않다. 앞에서 말했듯 무슈타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 시절을 집중한 작품을 모은 것이 아니라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쓴 것 가운데 수작이라고 판정한 것들을 골라 실었으니. 그러니 여성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스토리가 다양하고 모두 나름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작가의 평생 작업 가운데 좋은 것들만 골라 실은 소설집에 세계 유수의 상을 주는 건 반칙 아냐? 예를 들어, 아직 박완서 선생이 생존해 있다면, 그이의 작품 중 빼어난 것들만 골라 번역해 책을 만들면, 솔직히 우리끼리 얘긴데, 《하트 램프》는 게임도 안 될 거 같은데 말씀이지. 그렇다고 《하트 램프》가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재미도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수작秀作이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문화적, 지역적, 종교적 거리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읽어보시라 추천하기는 애매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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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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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하이브리드라고 규정한다. 즉 그의 말에 의하면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자서전이 합쳐진 책이란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학의 하이브리드가 어떤 방식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 독자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될 일이다. 주로 나이 든 픽션 작가가, 결국 개(책에서는 루이라는 늙은 개)한테 주지 못한 버릇인 픽션을 조금 섞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책. 그래서 상당한 부분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 같고, 어떤 쪽에서는 자기 삶의 특정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중 화자 ‘니’는 작가 줄리언 반스이다. 대략 76세부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78세까지의 반스.

  책의 초반을 끌고 나가는 주제는 불수의 자전적 기억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

  혈액암에 걸린 줄리언 반스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닥터 재키 한테 엉치뼈 위에 뻐근한 느낌이 들게 하는 마취 주사를 맞은 후, 작은 드릴로 척골에 구멍을 내고 골수를 채취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의사 재키가 하는 말에 따르면 예후가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암에서 나을 방법은 없고, 평생 암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암은 반스를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으며 반스가 죽어야 암도 사라질 것이라고. 즉,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혈액암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

  반스의 책을 몇 권 읽어 엽기적이고 극단적 관심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 닥터 재키가 <브리티시 메디컬 센터> 스크랩 글을 보내주었는데, 기사는 좌측 시상 후부 출혈성 뇌졸중을 겪은 45세의 남자 케이스가 나온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침상에서 먹었던, 먹어도 참 변함없이 여러 번 먹었던 마들렌을 떠올리며, 이때도 마르셀이 한 번 마들렌을 연상하고 그것이 불수의자전적기억IAM에 의하여 기억 속에서 잠재하고 있던 거의 모든 마들렌 먹던 기억이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시 반스는 엽기적인 인간이니, 마들렌, 비스킷 또는 애플파이로 변화시키지 않고, 만일 사람이 소리 죽여 방귀를 뀌었는데 이 순간 IAM이 작동해 몸에서 새 나간 모든 방귀가 시간별로 상황별로, 냄새의 강약 별로 떠오른다면 어떻겠는가, 아니면 평생 먹은 베이컨 샌드위치가 날짜별로 휙휙 지나칠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진이 빠질지 상상해보란다. 이게 좌측시상후부에 출혈성 뇌졸중이 발병해서 생기는 일이라면.


  이 기사를 읽은 70대 중후반의 줄리언 반스는 혹시 자기 뇌에서도 이런 IAM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지금 출혈성 뇌줄중이 있는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노령의 초입에 들어선 독자 나도 마찬가지인데) 반스는 지금까지 먹은 모든 파이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한 순간들도 시간 순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고, 진심이든 아니든 “사랑해”라고 말했던 모든 순간, “사랑해”라고 말해야 했으나 말하지 못했던,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 저질렀던 모든 거짓말, 위선, 피할 수 있었던 또는 피할 수 없었던 잔혹, 매정한 망각, 시치미, 지키지 못한 약속, 언행불일치의 기록 같은 것들이 와장장창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반스는 이런 불수의자전적기억IAM을 스펠링을 조금 다르게 나열하여 I AM, 즉 자신의 현재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나는, 이게 나 한테만 일어나는 특수한 기억현상이 아니고 내가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표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고 조금, 아주 조금 안심했다. 왜냐하면 이런 IAM 현상은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을 위주로 연상을 시작하는데, 글에 관한 한 세계적 명성을 즐기고 있는 반스의 경우에는 글을 씀으로 해서 IAM을 다스릴 수 있지만, 나같은 범부는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과 자책과 죄의식 때문에 이게 뇌 속에서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육체적으로도 떨림 혹은 호흡의 아주 약한 불규칙, 어쩌면 혈류 속도의 경미한 이상 같은 현상도 생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IAM,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머리글자. 이걸 수천년 동안 잘 써먹은 집단도 있다. 우리가 한 낱낱의 행동, 생각, 감정을 다,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죽은 뒤에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협박해 돈과 권력과 최고의 위세를 얻은 집단. 오랜 동안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죄의 기록, 목록은 성베드로의 외상장부에 새겨져 있지 않고 우리 자신의 뇌, 시상 후부에 담겨 있으며 그걸 열 수 있는 열쇠는 신경의학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안다.

  새로운 궁금증. 그러면 이제 누가 하느님의 역할을 대신할까? 뇌수술 전문의? 신경분석학자? 천만의 말씀.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한테 역할을 맡기면 괜히 얻는 것 없고 돈만 깨진다.

  여기서 마르셀 프루스트, (당연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그에 관한 반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나,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생략한다.


  대신 하이브리드라고 말했으니 반스는 실제 자기가 겪은 실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화이기는 하지만, ① 두 중심인물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② 이야기를 하려면 대부분 픽션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제공해야 했고, ③ 이야기의 시작과 끝만 실화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중간의 빠진 부분은 개략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20년 동안 금지, 타 대학 배경은 10년간 금지했으나 2004년 부터는 그걸 20년씩 더 연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옥스포드 출신인 줄리언 반스 입장에서,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적어도 40년 전에 시작한 사건/일화라는 뜻이겠다.

  반스는 60년대 중반에 옥스포드에 입학했는데 당시 여학생은 16.1%. 성비가 5.26.대 1.

  이때 반스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난다. 진과 스티븐.

  스티븐은 반스처럼 중산계급 출신의 장학생이었지만 그는 장차 공무직 또는 경영 분야에서 일하려고 철학을 공부하며 뇌를 정리하고 있었고, 반스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더 진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철학과목을 듣고 있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아들들 답게 참을성 많고, 친절하고, 잘 파악되지 않는 명제나 이론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유분방함 같은 건 알지 못했다.

  진은 처음에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두 남자 아이들과 달리 약간 더 화려하고 약간 더 불안정한 집안 출신이었다. 별거중인 부모 가운데 아버지는 애인이 있었고 집에서는 만날 말다툼이었다. 상황도 아슬아슬하고 이건 진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벌써 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로코에 가보았고 러시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스티븐과 반스 보다는 진취적이었다고나 할까?

  셋 가운데 스티븐과 진이 드디어 사랑했던 모양이다. 반스는 다른 아가씨와 한 침대에 오르긴 했는데 하도 서툴러서 밤새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온 적 밖에 없었지만, 먼저 스티븐이 반스에게 와서 고백했다.

  “이제 결혼을 하든지 헤어져야 하겠어.”

  진도 반스에게 와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제 우리한테 남은 건 결혼하느냐, 아니면 헤어지느냐야.”

  이들은 원만한 합의 하에 이별을 선택했고, 이후 몇 년간 전화, 우편 등으로 연락을 이어가더니 흐지부지 헤어졌다. 스티븐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 아내와 아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스티븐 혼자 잉글랜드에서 이것저것 하며 중산층 조금 윗길로 살아간다. 진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훼 회사를 차려 괜찮게 사는 평생 독신녀로 늙었다.

  그러다가 반스를 찾아온 스티븐. 이제 반스에게 두 번째로 진과 만남을 주선하란다. 40여년 전에 그렇게 했으니 이제 한 번 더 못해줄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하지만 연락처가 없다. 전화번호 적어 놓은 건 벌써 번호가 바뀌었겠지.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인터넷 메일 주소를 찾았다. 반스가 힘을 보태 둘을 연결시켰고, 셋이 만나 적당한 시간에 반스가 자리를 피해주었으며, 이때부터 스티븐과 진은 로맨스 그레이, 늙은 연애를 꽃피우기 시작했는데, 아이고야, 마음은 20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나? 심지어 이미 70대 중반인 스티븐은 그때까지도 절륜한 전립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진 평생에 그런 밤은 또 처음 지내봤단다. 거 참 주책들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예전에 사랑을 쏟아주지 못한 스티븐은 늘 조금이라도 많은 사랑을 쏟아부으려 하고, 세상 살면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진은 그게 버겁다. 행복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한테만 골라 온다는 것을 이들은 몰랐고, 반스도 몰랐고, 나도 몰랐고, 세상 사람 거의 다 모른 채 그 자리를 오해 및/또는 착오에게 물려준다.


  이들의 결혼에 대표 증인으로 나섰던 반스는 이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 낯설지 않은 죽음. 그러나 자신의 작업을 중도에 죽음에게 뺏기기 싫어, 그럴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마음먹고 자신이 쓸 마지막 책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쓴다.

  줄리언 반스답다. 팬으로 반스의 픽션은 거의 섭렵을 했으나 정작 더 이상의 픽션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들으니 섭섭한 마음을 피할 수 없다.

  반스 선생.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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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6-05-07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반부에 소개해 주신 불수의(involuntary)가 ‘걸리는‘ 단어네요.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많이 서글픈 느낌이네요.
주위에 파킨슨병 환자가 있는데, 이 분들의 증상 대부분이 불수의적 행동들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행동들도 괴로운데 이로 인해 많은 차별적 인식이 생긴다고 하니 안타까울 밖에요.
신체든 정신이든 자기가 안다는 것의 힘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데, 그 기전을 파고들어 가는 과학과 의학의 힘도 새삼 놀랍습니다.

Falstaff 2026-05-07 15:34   좋아요 1 | URL
신체적 불수의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면에 반스가 이야기하는 ˝불수의 자전적 기억˝은 자기 기억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 같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신체의 일부인 ˝뇌˝ 불수의 현상, 치매와 다른 것이겠습니다.
주위에 파킨슨에 고생하시는 분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습니다.
 
아그네스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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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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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63년생이라 토끼띠가 아니고 범띠인 스위스 남자.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3년간 견습회계사를 거쳐 정식 회계사로 5년 동안 일했다. 이 다음에야 나도 한 번 공부라는 걸 해볼까 싶어서 취리히 대학에 입학, 영어, 경영정보, 심리, 정신병리 등 다양한 학문을 접했다는데, 그러니까 뭐 하나 제대로 한 건 없었다는 뜻이다. 이게 바람직한 대학 학부처럼 보인다. 일단 다양하게 공부를 해보고 정말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보이는 학문을 골라 대학원에 진학해 열공모드로 한 5년 보내며 학위를 차근차근 따는 게 요즘 시대에 맞지 않나? 그렇게 한다면 학부 학생 전원의 90퍼센트가 법학이나 의학을 지망할 거 같은 음울한 상황을 예견할 수밖에 없어서 문제지만. 법과 의학을 뭐하러 공부하려는 지 모르겠어. 법 공부하면 도둑놈, 사기꾼, 살인자들과 만나야 하고, 의학공부 해 봤자 해골 같은 노인들이나 피, 고름, 똥밖에 더 보느냐고? 나는 내 새끼들한테 농부가 되라고 권했다. 현대의 농부. 네가 포함된 팀에서 개발한 것으로 국민들을 5년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자-농부가 되라고.

  윽,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하여간 슈탐은 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뉴욕, 파리, 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잠깐 살다가 1990년에 스위스로 돌아와 프리랜서 기자와 작가를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스위스에서는 잘 나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제법 먹고 사는 모양이다. 2014년에 독일에서 무슨 문학상을 받은 것이 여태 이 양반의 가장 큰 자랑이고, 그 전해에 부커-인터내셔널 상 최종후보였다가 미역국 마신 걸로도 어깨에 힘주고 다닌다. 우리나라에는 이이의 우리말 단행본 네 권이 있는데 이 책을 포함한 세 권은 절판이고 문학과지성사에서 2023년에 낸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만 살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달 전에 세상을 뜬 배우 윤석화가 워낙 강렬해서, 아그네스, 하면 그이가 주인공을 한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긴 올드팬이나 그럴 지도 모른다. 윤씨가 공연했을 때를 알아보니까 1983년 실험극장에서이었다. 나는 못 봤지. 마빡에 작대기 두 개에서 세 개 달고 저 이동면 낭유리 늑대 우는 골에서 밤마다 빠따 맞으며 노예생활할 때였는 걸. 반면에 스위스 사람들한테 아그네스는 여성의 이름으로 굉장히 촌스럽거나 색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짧은 장편소설. 본문이 203쪽에서 끝나고 해설도 붙어있지 않다. 좀 불친절한 느낌. 모두 36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새로 페이지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18페이지는 공란이다. 한 페이지가 겨우 열아홉 줄, 한 줄에 띄어쓰기 포함해 스물아홉 자 들어간다. 19행, 29자. 이 문둥이네 출판사는 19, 29. 소수를 편애하는 거 같다. 마음먹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어치운다. 팍팍 진도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거면 좋겠는데 뭐 그건 아니다.

  지은이 슈탐처럼 주인공 ‘나’는 프리랜서 작가 겸 소설가로 보인다. 하여간 글 써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이름 좀 알려졌지만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알아보는 독자가 있을 정도는 아니다. 있기는 있겠지만 겨우 몇 명 정도. 스위스 사람이 시카고에 와 있는데 누가 알아보겠어? 여기서는 미국의 호화 여객열차 풀먼호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 갔다가 내 맞은편에 앉아 눈에 들어온 아가씨가 아그네스. 그게 작년 4월이었다. 여느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마르고, 키가 별로 크지도 않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갈색머리에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즉 매력있고 수수한 모습이란 뜻이다. 다음날에도 아그네스는 도서관 그 자리에 앉았다. 오래 책을 보다가 ‘나’와 함께 잠시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우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그네스에게는 허버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연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 연극배우. 자기가 도와달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친구.

  세번째 만난 날은 도서관 밖의 자판기 커피 말고 길 건너 ‘나’가 자주 가는 작고 초라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제서야 아그네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한다. 물리학 전공이며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란다. 논문은 “수정격자 대칭군의 대칭성”이라는 주제. ‘나’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25세이고, 시카고대학 수학연구소에서 시간제 조교로 일한다. 첼로를 연주하고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여성. 부모는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플로리다에서 연금생활자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시카고에 친구가 거의 없고 있다면 매일 만나 사중주를 연습하는 여자 세 명 정도.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말은 쑥스럽기도 해서 말하지 않았다. 아그네스의 무관심이 반갑기도 하고.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 식당으로 가던 중에 인도 위에 한 여성이 누워 있었다. 아그네스 또래의 붉은 머리 아가씨. 창백하고 주근깨가 촘촘한데 ‘나’가 앉아서 들여다보니 무호흡이다.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가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요구해 알려주었다. 소방관이 도착해 여성은 이미 죽은 상태이며 아마도 자살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구급차에 실어 갔다.

  식당에 들어가 만난 아그네스. 이이가 말한다.

  나는 죽음이 두려워요. 언젠가는 죽겠지요. 누구나 그렇듯이.

  죽어가는 과정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니까. 아직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 두려워요.

  ‘나’와 아그네스는 식당에서 나와 ‘나’가 사는 아파트 도럴 프라자 27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오랫동안 키스한다. 아파트에 들어와 처음 남자의 몸을 경험하는 아그네스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신발과 옷과 속옷을 벗는다. 아그네스는 며칠 후에 자기가 사는 작은 원룸에서 나와 이 아파트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아직 원룸의 기한이 남아 있어서 꼭 필요한 짐만 가져올 생각이다. 생전 처음 해본 섹스가 어떤 감각이었는지, 궁금해하지 마시라, 안 쓰여 있다.

  사람이 함께 사는 일. 특히 성인이 된 후 계속 혼자 살다가 갑자기 함께 사는 일. 이거 생각보다 복잡하다. 아그네스는 ‘나’에게 자신과 사는 것을 소설로 쓰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쓴다.

  ‘나’는 아그네스를 사랑한다. 아그네스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자는 안다. 아그네스 역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그네스와 함께 스위스로 가서 살까? 미국 시민권이 없는 ‘나’는 시카고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언젠가는 가야 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것이 4월이었는데 어느새 추수감사절과 할로윈이 오고, ‘나’와 아그네스는 한 지붕 아래서 사랑을 하고 몸을 나누며 생활을 소설로 써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와도 아그네스는 부모가 있는 집 대신 시카고에 머문다.

  나이 좀 든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일이 생긴다. 아그네스가 피임약을 복용했지만 임신하고 만다. ‘나’는 당황한다. 아이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겨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린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그것을, 아그네스는 임신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랬는지, ‘나’가 진짜로 영원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 둘 다 자연스럽지만 서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커지고, ‘나’의 소설은 이제 ‘나’ 혼자 쓴다.

  에잇! 어차피 절판이니 팍 말해버리겠다. 결론은 책의 첫 문장에 나온다. 괜히 모른 척 뜸들이지 않겠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그네스는 죽었다. 한 편의 소설이 그녀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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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을 뿌리다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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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작품의 분량을 7쪽에서 시작해 278쪽에서 끝내니 순분량은 270쪽. 평균으로 보면 한 작품이 대략 54쪽 정도. 자간과 행간이 널럴하고 활자도 커서 내 경우에 어제 오전 9시 15분경에 빌려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컵밥 먹고 좀 쉬어도 오후 1시50분 정도에 다 읽었다.

 다섯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 이들은 누구 하나없이 소위 결손가족이거나 결손가정에 가까운 처지이다. 이런 가정의 구성원이 마음 속에 잡다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흔히 사람들은 외로움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들의 특징이라고도 하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 역시 외롭고 우울한 성격도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처지에서 그것에 벗어나기 위해 작은 애를 쓰고 있다.


  첫 작품 <한밤중의 아보카도>는 일란성 쌍둥이 동생을 뇌출혈로 잃은 서른두 살의 여인 아야. 친한 쌍둥이 동생이 죽어서 갈팡질팡이다. 데이트앱에 접속헤 여러 남자를 만나봤는데 처음으로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아소라는 이름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만나 데이트 중이다. 앱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과 달리 만난 날로 곧바로 호텔에 가자는 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한테 일정한 거리감을 가진 친절을 유지하는 걸로 봐서 여자 경함이 미숙한 것도 마음에 든다. 애인은 아니지만 죽은 여동생 유미가 진지하게 사귀던 무라세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시간에 걸쳐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유미의 명복을 빈다. 유미가 죽은지 2년이 넘었는데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무라세는 자기 마음에서 유미를 보내주어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아소 씨는 COVID-19가 왔더라도 원래 하는 일이 자기 집이 사무실 겸 숙소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업무량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아진 듯. 그리하여 아소씨는 아야와 비해 훨씬 일을 많이 한다.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서 음식도 먹고 길을 걷고, 손과 팔뚝이 만지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는 약한 수준의 접촉도 힘든다. 그저 둘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기만 하면 삼십대의 사랑이 잘 유지하기 힘든 법. 이들도 그 정도는 알아 차를 타고 바닷가로 놀러 가기로 한다. 한밤에 공기 좋은 옥상에 앉아 하늘을 보며 이게 무슨 별자리의 어느 별, 견우별의 어떤 별, 저건 직녀별의 또 무슨 별. 이렇게 여름 또는 겨울밤의 대표적인 대 삼각형. 이런 것을 알아간다. 주로 아소 씨가 말한다. 도쿄로 돌아와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는 아소 씨.

  아야는 아소씨와의 사이가 진전되지 않는 틈을 타, 이제 동생이 죽은 다음에도 아직 동생의 환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라세와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동안 자기의 머리 스타일이 동생과 비슷해진 것을 알고 원래 자기가 하던 짧은 머리로 깎고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동생을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된다. 그러나 동생이 떠난 자리에 언니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별자리를 가르쳐준 데이트 앱의 아소 씨는 소식이 없다. 자기와의 통신을 멀리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딱 이 때 도쿄 지하철에서 퇴근시간에 어린 아이가 지악스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인들한테는 이게 아주 질색이다. 에티켓에 크게 결례되는 일이다. 아야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쿠, 아소씨 옆에 아이가 앉아 있고, 아이의 다른 쪽에 젊은 여자가 또 앉아 있었다. 조카 또는 외조카일 수도 있지만 조카처럼 한 다리 건널 필요 없이 딱 아소씨와 많이 닮았다.

  지하철이 멈춰 이들이 내리자 아야도 함께 내린다. 뒤를 쫓아가 아는 척을 한다. 여자한테 먼저. 일과 관련해서 저를 많이 도와주시는 상사분이예요. 아소씨, 올해에도 많은 지도 바랍니다.

  이렇게 넘어갔지만 여간해 울지 않는 아야가 오랜만에 눈에서 소금물 좀 뽑았다. 그래서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도 두 병을 사서 조금 먹다가,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그만 동생을 놔주라고, 동생이 이제 하늘로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정 비슷하게 해댔다.

  대답이 없던 무라세는 다음 날, 문자를 보내, 돌아오는 달에 한 번만 더, 늘 가는 작은 음식점에서 한 시간 동안 전에 늘 그랬듯이 동생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둘 다 그게 마지막 회동이 될 것임을 안다. 그래서 만나 음식을 먹고, 여전히 자잘한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아야가 밥값의 반 정도를 내고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무라세는 곧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빼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이고, 아야는 무라세가 보내준 흙으로 여태 수경으로 기르던 아보카도의 씨에서 난 떡잎 등을 분재할 생각이다.


  이런 거 말고도, 주로 이혼 가정. 영업사원과 통역원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바쁜 영업사원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시간이 많이 나는 오후 시간에 미국 남자를 만나 불륜을 갖게 되어 이혼한다. 전 아내는 딸과 함께 미국의 아이오와로 가버린 가정의 남자. 남자의 아파트 옆집에는 역시 이혼해서 딸 하나 키우는 싱글맘이 이사를 와 점점 친해지기도 하고, 후배의 소개로 괜찮은 학교 후배를 만나 좋은 관계도 유지하지만, 옆집의 싱글맘은 오랜 숙고 끝에 전남편과 다시 집을 합치는 것으로 정했으며, 그동안 학교 후배와는 싱글맘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라 자신이 연락을 멈춘 상태. 뭐 이런 이야기들.

  지금 시절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나한테는 직접 와 닿는 점이 거의 없어서, 그냥 이런 시절을 보내는 세대도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감정밖에는 얻지 못했다.

  이건 세대 차이이지 구보상의 글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 의견을 참고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공감하면서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볼 만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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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옛생각이 나서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들췄다. 책꽂이에 40년 꽂혀있던 묵고 묵은 시집. 생각나면, 혼술에 얼근해지면 한 번씩 들춰보려 했지만 사실은 여간해 다시 읽게 되지 않는 것이 책인지라, 그저 종이만 바싹 말라가던 시집.

  이 가운데 <활엽수림에서>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여태 내가 즐겨 쓰고, 정말로 내 머리에서 만든 묘사인 줄 알았던 것들. 세상에나. 예컨대:


  "비인칭 주어로 살다."

  "생을 탕진한 죄"

  "무작정 살다."


  이게 다 황지우가 쓴 시 <활엽수림에서> 딱 한 수에 몽땅 나오는 거였다. 고백하노니, 정말 내가 만들어 쓴 구절인 것으로 알았던 것. 그래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써먹던 구절이다. 웃기지? 앞으로 다시는 누구, 누구를 흉보지 못하리라.

  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으니:


  "새벽 기슭에 서서 부은 눈으로 눈 덮인 산을 멩하게, 바라보다."


  '멩하게' 다음에 찍힌 쉼표 ","에 연필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은 스물네 살의 나.

  옛 시집을 읽는 재미가 퍽 좋다. 아직도 외우고 있는 시 <歸巢의 새. 2>가 이 시집에 실린 거였구나. "지 울음이 들릴락말락한 까마득한 달팽이管 속으로 날아가부럿다."  시 쓰는 고단함을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같은 緯度 위에서>의 11행에 "<악으로> 詩를 쓰는 것이 아니다."에는 또 연필로 의문문이 보태졌구나. "愕?, 惡? 또는 깡다구?"라고. 웃기고 재미있다.


  그래도 나 같은 잡것들한테는 아마도 이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심인>이었을 거다. 이거 한 번 올려보자.



  심 인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p.29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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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5-03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물세살의 나‘ 여기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저는 황지우 시집 들추면 눈물이 나요. 심지어 펑펑 울기도 했던 기억이 ㅠㅠ

Falstaff 2026-05-03 20:15   좋아요 2 | URL
아이구, 혹시 저린 추억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추억은 부럽지만 이제 울지는 않으시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