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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120일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01
사드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8월
평점 :
드디어 <소돔 120일>을 읽었다. <미덕의 불운>을 읽고 뭐 이런 작자가 다 있는가 싶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다가, 많은 책에서 <소돔 120일>을 인용하거나, 언급을 해서, 특히 레몽 장이 쓴 <책 읽어주는 여자>을 보다가 눈길을 끈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다.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까지는 완성된 ‘작품’. 2부부터 4부까지는 미완성 스케치라고 해야 할 터. 전해오는 이야기 그대로다. 완전 변태 성욕과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부도덕한 모든 형태의 죄악들이 선천적으로 미덕을 보유한 소년, 소녀들을 학대하는 내용이다. 71쪽 까지 이어지는 머리글에서부터 이런 부도덕과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엽기 잔혹한 내용이 준비되고 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루이 14세 집권 말기라고 하니까, 18세기 초반의 프랑스를 이끌어가는 집권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50세의 블랑지스 공작과 공작의 친동생인 46세의 주교. 환갑을 갓 넘은 법원장 퀴르발과 53세 먹은 공작의 학교 동창이자 징세청부인 뒤르세가 이들.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에 대하여 좀 알아보자. 국가에서 특정인에게 도급을 주어 세금을 걷게 했는데, 도급을 받은 사람을 징세청부인이라고 하고, 대개 이런 인간들은 마땅하게 징세할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긁어모아 차액을 착복해 거액을 거머쥘 수 있었다고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생의 첫출발>에서 보면 오스카르라고 하는 인물이 전쟁에 나가 한 팔을 잃고 돌아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징세청부인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당연히 이 징세청부인이라는 이름의 세리는 대부분 악당이거나 조금씩 악당에서 악마로 진화하는 것들이 보통이라 시민들의 원성을 대단히 많이 사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얼마나 악질적으로 착취를 했겠는가. 실제로, 질량불변의 법칙을 발견한 화학자 라브와지에 아시지? 이 양반도 젊은 시절에 잠깐 징세청부인을 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대가리가 날아가 버렸을 정도다.
작중 시대는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 집권 말기. 당시 공작, 주교, 법원장, 징세청부인이라면 가히 골고루 시민들의 등골을 쪽쪽 빼먹던 인물들 가운데 대표선수들만 고른 것. 사드 후작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도나티앵 알퐁스 프랑수아는 당대(또는 조금 선대)에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고혈을 짜냈던 계급들을 무대의 중심에 놓고 21세기에도 상상하기 힘든 악덕과 불의를 쉽게 저지르는 모습을 그려냈던 거였다. 내용이 얼마나 지저분한가를 보이려면 불유쾌하게 본문의 특정 장면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머리글에 나오는 이들의 가족관계만 요약하면 충분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철저히 인색한” 구두쇠, “거짓말쟁이에 욕심쟁이, 주정뱅이, 남색에 근친상간자, 살인자, 방화자, 도적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많은 악덕을 보상할 수 있는 미덕은 하나도 지니지 않은 채 어떠한 미덕도 존경하기는커녕 혐오하고 있”는 짐승들로(18쪽) 막대한 재산을 남긴 아버지의 돈을 마음대로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친어머니를 독살하고 모친살해를 공모한 여동생마저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친딸과 근친상간의 관계까지 맺는 정도는 그냥 일반 상식인 말종들이다.
이 네 짐승들은 역시 아이까지 생산해준 착한 아내들마저 죽게 만들어 홀아비 신세인데, 서로 그들의 딸들에게 관심이 있어 돌림 사돈을 맺게 이른다. 공작의 큰딸은 법원장의 아내가 되고, 법원장의 딸은 징세청부인의 아내가 되고, 징세청부인의 딸은 공작의 아내가 되고, 사실은 주교의 핏줄이지만 주교라는 직업 때문에 친형인 공작의 호적상 둘째딸에 올린 소녀는 네 명의 공동 아내가 되는데, 이미 모든 부녀가 근친상간의 죄를 상습적으로 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합의하지 않고 누구의 아내든지 공유할 수 있도록 약속을 했다. 이 정도면 <소돔의 120일>의 성격은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터. 근데, 천만의 말씀.
나는 <소돔의 120일>을 읽으면서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올렸다. 아시다시피 <데카메론>은 열 명의 귀족 남녀가 피렌체의 페스트를 피해 시골로 요양을 가서 열흘 동안 소풍을 가 각자 한 가지씩 재미난 얘기를 하는 내용. 14세기 중반에 피렌체 귀족들은 당시 도덕수준에 비추어 대단히 야하고 음란한 얘기까지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박수치고 즐거워한다. 그 후 434년이 지난 1785년, 뱅상 감옥에는 독방 6호실에는 성적으로 편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45세 사드의 후작이 몇 년 째 외곬으로 앉아 폭 12cm, 길이 12미터의 두루마리에 촘촘하고 작은 글씨로 단 37일 동안 <소돔의 120일> 머리말과 1부를 완성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얘기한 네 명의 악당이 12세에서 15세까지 (특히 엉덩이가)아름다운 여덟 명의 소녀와 12세에서 15세까지 (역시 특별하게 엉덩이가)아름다운 여덟 명의 소년, 하녀 네 명, 다른 것은 아무 조건 없이 페니스가 거대한 네 명의 마장馬藏(남색용 사나이)과 이들이 거느린 네 명의 졸개 마장, 악당의 아내들, 여덟 명의 요리사, 그리고 네 명의 여자 이야기꾼을 대동해 알프스 산맥 저 오지 가운데서도 오지, 아무도 찾지 않아 새가 아니라면 도달할 수 없는 벽지에 지은 저택에 도착하여, 이야기꾼이 날마다 다섯 편의 음란하고, 더럽고, 폭력적이며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내용의 짧은 이야기를 각자 30일씩, 총 120일 동안 600가지 악덕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악당들은, 이야기를 마치고 맛있게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데카메론>의 발랄한 귀족들과는 달리 이야기에 나오는 것을 흉내 내 변태적이고, 더럽고, 부도덕한 변태성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으며, 읽을 필요 없는 2부~4부의 스케치에 의하면 가학성향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사드가 <데카메론>을 염두에 두었다고, 아니면 조금은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이 짐작이 확신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건, 그의 다른 작품 <미덕의 불운>에서도 산골 외딴집에서 한 정숙하지만 불운한 미덕의 아가씨가 작살나는 장면, 역시 외진 수도원에서 많은 수도사들로부터 능욕당하는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드는 옥중에서 이따위 글을 썼을까. 혁명 몇 년 전이라 아직 프랑스 가톨릭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회 분위기에서. 흔히들 감옥에서 쓰는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며 가끔 불세출의 걸작까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글쎄 그게 정말 그럴까. 1968년부터 88년까지 20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한 신영복 선생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감옥, 그것도 18세기 감옥의 독방이라면 그게 아무리 귀족을 유치하는 감옥이라 하더라도 한 귀퉁이에 뚜껑이 없는 변기가 놓여 있고, 키가 닿지 않는 높이의 유리(또는 덮개) 없는 창, (없을지도 모르지만)조그만 나무 책상과 나무 침대. 이런 곳에서 오래오래 홀로 있으면서 가뜩이나 약간의 성적 도착이 있는 남자가 외곬으로 빠지는 건, 바람직하지는 못하지만 한편으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더구나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을 독방에 홀로 있게 하는 것은 (요새 자주 언급되는, 회사의 갑질에 의하여 직장 내 왕따가 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대상자의 폭력성과 비타협적 가해 증상으로 대표하는 공격성을 상당히 높여준다고 보고되고 있다. 언제 감옥에서 나갈지 모르는 사드 후작. 일찍이 탈옥에 성공했던 경험도 있으나 결국 다시 들어온 감옥에서 그의 뇌 속에서는 실제 생활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성적 판타지가 지극히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거, 그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감옥에 갇힘으로 해서 스스로 폭력의 대상이 되었음을 늘 인지하는 한 똑똑한 인간이, 그의 뇌 안에서는 현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으로 환치시킬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대리인이 거의 틀림없는 공작의 입을 통해 196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뒤클로, 진실을 말해주지 않겠나? 당신은 부인이 숨을 거두자 참을 수가 없어서 스스로 몸을 비비지 않았어? 범죄가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관능적 감각이 당신의 쾌락 기관을 자극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벽만 쳐다보며 대뇌의 화학작용에만 박차를 가하는 사드 후작은 위 대사에서 보듯 범죄의 완성과 성적 쾌락을 연결시키게 되고 이후 끔찍이도 지저분한, 아니, 더러운 성적 판타지로 변질되는데, 현재 독방에 수감된 자신의 모습인 피해자에 대한 동정은 완벽하게 반의적으로,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전혀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봉사한 인간은 우리에게 관대한 마음을 기대할 권리가 없어. 그런 자들은 우리에게 봉사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 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강한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치욕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고, 귀찮게 굴지 못하게 내쫓아버려야 해.” (201쪽)
그러나 사드 후작은 안다. 지금 자신이 쓰고 있고 앞으로 2부, 3부, 4부로 확장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인간 생활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감히 말하는데, 나의 상상력은 나의 실행력을 넘어서는 것이야.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행을 범했지만(악행에 대해 서술했지만), 모두 나의 상상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악행뿐이었어.” (151쪽. 괄호 안은 내가 썼음)
사드 후작은 성적 판타지가 유난히 화려한 한 명의 똑똑한(아니, 천재적인)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지만 유사한 이야기와 대화를 통해 과장되게 알고 있던 것들을, 분변 냄새가 언제나 대기 중에 충만해 있는 감옥의 독방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정상적인 중년의 남성도 한 번 상상해보지 못한 하드코어로 확대 재배치한 것이다. 정말로 책의 내용은 역겹고, 끔찍하고, 더럽고, 차마 읽지 못할 수준이지만 한 불운한 천재가 이해받지 못한 사회 안에서 나름대로 처절하게 반항한 흔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까.
이 책에서도 문제는 권력이다. 주인공 공작, 주교, 법원장, 징세청구인. 정치, 종교, 사법,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우위에 있는 이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지옥의 모습. 그리하여 소설 <폭력적인 삶>을 쓰기도 한 좌파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그의 작품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자신들의 성적 만족을 위하여 가볍게 인간과 인간성을 말살해버리는 권력자들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한 현대극으로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