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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당 이야기 - 페라귀스.랑제 공작부인.황금 눈의 여인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1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1830년대 초반에 쓴 중편소설 세 편을 책 한 권에 담았다. 문학동네가 오랜만에 중편 세 편을 한 권에 담는 기특한 짓을 했다.
발자크라면 20대 청춘시절에 인쇄, 출판, 활자주조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는커녕 6만 프랑의 빚을 떠안기만 했단다. 6만 프랑의 돈은 지금 가치로 약 2억 원가량이라고 하는데(역자 해설 인용), 말이 2억 원이지, 지금처럼 돈과 재화가 넘쳐나는 시기와 19세기 초반의 2억 원이라는 건 화폐의 가치 자체가 다르다. 마치 도시 번화가에서 백만 원과 산골마을에서의 백만 원의 차이처럼. 6만 프랑은 사업실패에 따른 것일 뿐, 이것 포함해서 그의 채무는 당대 파리 인텔리들에 어울리는 사치를 위한 비용까지 합해 12만 5천 프랑에 달했다고 나이 스물아홉 살 시절, 1828년에 쓴 편지에 나와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발자크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라 소설을 쓰는 일 말고는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에 최소 9시간, 심하면 14시간, 이렇게 하루 평균 12시간 동안 쓰고 또 쓰고, 쓰다가 또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사람이 제대로 살겠어? 발자크는 18년간 이메일서신을 주고받아온 한스 백작부인과 드디어 결혼한 1850년 3월, 불과 다섯 달의 신혼생활을 끝내고 쉰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을 뒤져보니, 발자크의 이른 죽음을 많은 매체에서는 과도한 집필로 인한 건강악화로 보고 있어서 나도 이렇게 쓰는 것이지 뭐 내가 아는 게 있나.
자의건 타의건 간에 빚을 청산하기 위한 과도한 노동으로써의 집필을 한 결과, “저녁밥을 주둥이에 처넣고 여섯 시에 잤다가 자정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정오까지 일”을 해, 그것도 20년 동안, 사람은 골로 가고 대신 숱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지금부터 짐작인 바, 발자크가 많은 작품을 써내기 위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고단한 소설 쓰는 일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틀을 준비한 거 아닐까? 이른바 “풍속”, “철학” 그리고 “분석.”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쓴 산더미 같은 결과물을 보며 그걸 크게 이 세 가지 틀에 입각해 창작해낸 “인생극” 또는 “인간 희극”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겨우 예닐곱 작품만 읽어본 하찮은 독자의 짐작이다. 어디 가서 이거 인용해 말 하지 마시라. 개망신당할 수 있다.
《13인당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세 중편 <페라귀스>, <랑제 공작부인>, <황금 눈의 여인>은 당연히 “풍속”의 범위 안에 들어야 할 것. 발자크를 칭하기를 사실주의의 대가라고 한다. 이 세 작품은 사실주의자가 쓴 당대 풍속, 특히 파리와 왕정복고 시기의 귀족, 부르주아 등을 아주 세밀하고 다양하게 묘사한다. 귀족의 시대가 저물고 부르주아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19세기 초반. 멸망한 나폴레옹의 광휘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파리의 신귀족 등등. 13인당이란? 작가가 만들어낸 비밀결사다. 마치 프리메이슨이나 카르보나리 같은. 그러나 기꺼이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르고, 당원들의 개인적 욕망과 목적만을 위해 행위하는 경제, 권력적으로 힘 있는 악당들의 비밀조직. 그렇다고 이들을 공작, 주교, 법원장, 징세청부인 등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다만 당원인 주인공의 문제를 13인당의 적극적 협조 하에 해결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스토리라야 베리즈모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은 잔혹 애정, 치정극 수준이다. 작품에서의 문제해결 방법에 당시 계급 간의 한계와 새로운 방법 및 승패가 은유되어 있다고 해설에서 열라 설명하고 있으나 그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
문제는, 지금부터 180년 전의 파리와 파리 시민들의 계급적 이동관계 같은 것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그걸 동아시아의 일반 독자가 두 세기 전의 파리 골목이나 광장, 길거리, 건물 이름을 읽으며, 아하 그땐 이 거리를 그렇게 불렀으며 분위기는 어떠했구나, 이렇게 공감하기 쉽지 않다는 거. 한국의 작가가 18세기의 한양을 무대로 운종가와 진고개, 시구문, 청계천과 그곳에서 살던 딸깍발이, 상민, 깍쟁이 등을 묘사한 세밀한 기술을 읽으면서 그것들에 흥미를 느끼는 프랑스 사람이 별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는 바, 세 편의 작품 다 같이, 앞부분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당대 풍속의 사실주의적 긴 묘사가, 분명하게 기념할만한 성과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루함을 느껴야 했다. 파리의 한 길거리가 당시엔 뒤라 가街라고 불렸다가, 이후에 랑베르 가로 명명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금까지 아스시 가로 불리고 있는 게 뭐 어떤데?
그럼 이 책이 지루할까? 아니다. 재미있다. 파리 시내와 계급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지루함을 조금 느낄 수 있을 뿐이지, 사실 인간들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재미있는 건 애정과 치정 이야기 아닌가. 거기다가 적당하게 잔혹극까지 섞여 있으니 말 해 뭐하나. 앞에서 스토리 라인이 베리즈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의견은 21세기 인간이 소설을 읽고 느끼는 것일 뿐, <13인당 이야기>는 19세기 초반 작품이고, 베리즈모는 20세기 초반의 예술 형태. 그리고 베리즈모가 화끈하게 재미있음을 누가 부정하겠느냔 말이지. 그저 지금 읽으면 좀 촌스러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