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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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만. 문제적 작가 가운데 한 명. <에프F>와 <세계를 재다>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작품. 굳이 비교하자면 <에프>와 비슷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제목을 단 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로 약 2백 페이지 분량의 한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아홉 편을 그대로 단편으로 읽을 수도 있고 나처럼 통째로 하나의 장편으로 읽을 수도 있다. 책의 주제 또는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제일 마지막 이야기 <위험 속에서>에 소개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아무로 몰라.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섞이지. 책에서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거야.”
  위 결론만 듣는다면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터. 그러니 아홉 이야기의 순서와 관계없이 의도된 중구난방으로 소개해보자.
  ‘나’는 이동통신 회사에서 전화번호를 담당하는 부서의 팀장으로 아내 한나와의 슬하에 어린 남매를 남독일 호숫가 근처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도시의 주택에서 살며, 주중에는 하노버 시에 있는 직장에 매일같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 쉬운 얘기로 주말부부. 바람직하게 잘 살다가 한 리셉션에서 루치아라는 여성을 알게 돼 그만 바람이 났다. 적당히 하다가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바람이건만 차마 그렇지 못해 ‘나’는 두 집, 두 인생, 두 가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해 자신이 참석해야 하는 유럽 통신회사들의 회의에 부하 직원 몰비츠를 대신 보낸다. 일 대신 인터넷 포럼에 글을 올리는 것이 진짜 자신의 본질이라 단정하고 있는 몰비츠는 또 출장 때문에, 정확하게는 출장기간 동안 인터넷 접속을 못하게 될 것이란 걱정하느라 크고, 크고 진짜 큰 실수를 저질러 고객들에게 같은 번호를 부여하는 에러를 발생시킨다.
  딱 이런 상태에 에블링이라는 PC 기술자가 있었는데 끝까지 휴대전화기 없이 버티다가 주위에서 하도 지랄들을 해서, 어떻게 너한테는 연락도 할 수 없냐?, 늦게나마 개통을 하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개통하자마자 부르르 진동을 하더니 어떤 여자가 말하기를, “랄프 좀 바꿔주세요.” 그래서, 전화 잘못하셨어요, 하고 점잖게 끊었다. 집에 가 아내 엘케와 침대에 누워 자던 밤 열시에 또 부르르 진동이 오고 이번엔 남자가 “랄프! 자식, 어때? 잘 돼?” 이런. 한밤중에 잘 되긴 뭐가 잘돼? 에블링은 이제 휴대전화 때문에 일에 집중이 안 되는 지경에까지 가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자기가 진짜 랄프라는 인물로 행세해보기로 마음먹고, 여태까지 랄프라는 작자가 정한 모든 약속, 모든 행사 스케줄을 다 펑크를 내버리는데, 이 랄프라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랄프 탄너’,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배우. 이이의 명성과 얼굴을 담은 거대한 광고판이 대서양 너머 중앙아메리카까지 커다랗게 서 있을 정도다.
  레오 리히터라는 이름의 소설가가 하나 있어, 전직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십자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납치, 부상, 참수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뛰어다녔다가 이젠 유럽에서 조용히 살기로 결심한 동거녀 엘리자베스를 동반해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모든 나라의 독일문화원을 순회하며 자신의 문학과 사상 등을 강연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 길가에 세워진 거대한 광고탑, 휘황한 조명을 받고 서있는 엄청나게 확대된 미남의 얼굴을 통해 랄프 탄너가 세계적인 영화배우라는 걸 독자가 알아차리게 된다. 중앙아메리카 지역만으로도 여행에 질려버린 레오 리히터에게 남아있는 일정 가운데 하나가 중앙아시아 지역 순회강연. 레오 리히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자기는 죽어도 중앙아시아에 갈 수 없다며 일정을 취소하는 대신에 대타를 하나 구해 대신 보내기에 이르니 마리아 루빈슈타인 여사. 역시 소설가다.
  두 명 나오는 소설가에게 리히터, 루빈슈타인, 모두 유명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부여한 건 왜 그랬을까? 나는 작가 켈만이 이름 짓기 귀찮아서였다는 데 만 원 건다. 어쨌건 루빈슈타인 여사는 광활한 스텝지역을 상상하며 중앙아시아에 도착했건만 이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흙투성이의 엉성한 도시와 더러운 공장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유럽에서 온 귀빈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후진국 정부의 웃기는 과시욕뿐. 근데 이 루빈슈타인 여사는 중앙아시아로 출국하고 일 년이 지나 더욱 인기 있는 작가로 변신해 문학상까지 받는데, 어떤 상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되게 웃긴다.
  루빈슈타인 여사를 중앙아시아로 보낸 리히터는 전직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엘리자베스의 꼬드김에 넘어가 어처구니없게도 콩고인 듯이 보이는 지역의 내란지역에 들어가게 된다. 근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건,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레오 리히터는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가 돌며, 심지어 이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애착을 보인다는 거. 한편 평소 자신이 레오 리히터의 작품 속 한 인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용될 것 같은 기분 나쁜 상상에 조마조마하던 엘리자베스는, 이곳에서 중앙아메리카의 한 독일문화원에 근무하던 리더고트 여사를 만난다. 근데 알고 보니 리더고트 여사가 바로 그 유명한 라라 가스파드였다는 놀라운 사실.
  라라 가스파드가 누군가 하면 인터넷 중독자 몰비츠가 거의 헌신적으로 숭배하는 여성. 몰비츠는 통신사들의 합동 세미나에 참석했으면서도 자신이 발표할 내용보다는 여전히 칼럼 속 댓글 다툼, 특별하게 랄프 탄너한테 그의 옛 애인 칼라 미렐리가 호텔 로비에서 귀싸대기를 올린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이 올라와 있을까가 더욱 중요했으니, 이분께서 내일 발표하실 세미나는 들어보나마나 말짱 헛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이지. 정작 진짜 랄프 탄너는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 전화가 똑 끊기더니 자기를 찾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지경에 처해버린다. 그래 얼굴도 가리지 않고 스타들을 닮은 사람들이 스타 흉내를 내는 게임을 하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랄프 탄너 역을 하며 잔돈을 받는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또 다른 랄프의 도플갱어 노릇을 하는 대역배우가 나타나 진짜처럼 보이려면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도편달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를 당한다.
  이제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어떤 식인지 아시겠지.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인지 알아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전부 다 소설 속 에피소드지만, 소설이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레오 리히터를 진짜 세상 사람이라 가정하면 상당 부분이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니엘 켈만. 하여튼 재미있는 작가다. 내게는 앞으로도 주목할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지금 품절이지만 e-book으로는 아직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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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세계문학의 천재들 8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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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 대해서. 도서출판 들녘. 이 회사가 지난 세기부터 좋은 사회과학 책을 많이 찍은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줄 착각을 했나보다. 그래 이 회사에서 낸 소설책, 그것도 530쪽이 넘는 장편소설 <콩고의 판도라>를 냈다면 벨기에,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세계가 20세기 초까지 콩고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악랄한 악행을 기록한 책인 것으로 짐작했다. 근대사에서 가장 포악했던 식민통치자로 이름을 올린 레오폴드 2세, 천연고무의 생산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1차로 손목을 자르고, 그래도 달성하지 못하면 팔을 자르고, 마지막 3차까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목을 잘라버렸던 진정한 흡혈황제. 3천만 명의 콩고 인구를 9백만으로 줄어들게 만든 이 극악한 벨기에 통치시절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을 단 장편소설이 진보적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던 곳’에서 나왔다니 어찌 한시인들 머뭇댈 수 있었을까. 이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1965년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 (내가 좋아하는 학문인) 문화인류학자이며 작가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에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그린 풍자 수필을 낸 적이 있다고 하니,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다. (여전히 들녘을 진보적 인문학서적 전문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이 책이 놀랍게도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라는 이름의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란 거. 말 하면 뭐하나.
  책은 1974년에서 78년까지의 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토머스 톰슨이라는 이름의 여든 살이 넘은 노 작가가 60년 전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콩고.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전 국토를 합한 광활한 대지를 상상하라. 그리고 그곳을 온통 6~60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뒤덮고 있는 광경을 떠올려라.”


  1914년 여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 이때 화자 ‘나’, 토머스 톰슨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나온 열아홉 살의 반쪽 천식환자, 반쪽 평화주의자, 반쪽 작가였단다. ‘반쪽 작가’라는 건 자기 이름으로 글을 써 출간하지 못하고, 지금은 잊힌 존재지만 당시엔 대단한 성가를 누리던 대중문학의 선구자 루서 플래그 박사가 건네준 지침에 따라 80쪽 분량의 후딱 읽히는 소설을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대필해주고 푼돈이나 얻어 쓰는 대필 작가를 말하는데 한 단어로 그냥 ‘노예 작가’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니 ‘나’는 플래그 박사가 글을 써 가져오라고 한 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에 불과했던 거다. 이 해 재하청 작가에게 원청 작가가 원고를 받는 순간 난데없이 교통사고가 나 원청과 재하청 작가가 같은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는 바람에 공동묘지를 방문한 ‘나’에게 접근하는 인간이 있었으니 야심찬 변호사 에드워드 노튼.
  노튼 변호사는 ‘나’가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는 책들을 진짜 쓴 인물인줄 알고 다가와 1912년 콩고의 밀림 속으로 황금을 찾아 떠난 리처드와 윌리엄 크레이브를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질지 모르는 마커스 가비라는 작자를 교도소에서 접근해 그와 크레이브 형제가 콩고에서 했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나’는 교도소를 방문해 난쟁이나 다름없는 집시의 아들 마커스 가비를 취재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는 변호사가 아닌지라 자기가 쓰는 작품을 보다 진실성 있게 만들기 위해 살해당한 형제의 아버지 찰스 크레이버 공작에게 면담을 신청, 작품의 초고가 완성되면 복사본 한 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 받는다.
  주의를 압도하는 거구로 여섯 살 소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연루되어 군대에서 쫓겨난 리처드와 크레이버 공작 가문의 명성이 아니었으면 족히 20년 형에 처해졌을 경제사범 윌리엄 형제는 보육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엄마를 통해 불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집시 난쟁이 비슷한 하인 마커스 가비를 데리고 콩고로 향한다. 약 백 명에 이르는 짐꾼을 모질게 독려하며 밀림의 중심까지 진출하고, 우연히 금광을 발견해 그들을 노동시키는 데까지 형제들의 잔인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제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마커스의 살육까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독자는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이 책을 더 읽어, 말아.
  진짜다. 도서출판 들녘은 <콩고의 판도라>를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란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내가 읽기로는 그러나 완벽한 2류 소설. 서미싯 몸은 자신 스스로가 “최고의 2류 작가”라고 정의한 바 있어서, 혹시 내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려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실 필요 없다. 작가의 다른 책은 당연히 안 읽어봤으니 모르지만(안 읽어볼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이 책만 가지고 판단하면, 아니, 판단은 했으나 더 이상 말로는 하지 않겠다.
  책 속에서는 자신이 대단한 문학적 재질을 갖고 있고, 이 책이 문학적으로 거의 최상급의 성취를 이룬 것처럼 자주 묘사한다. 그런데 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셋 중에 하나, 이건 습작이거나, 열심히는 하지만 천부적 자질이 부족한 불운한 작가이거나, 번역 도중 역자가 우리말로 너무 서툴게 옮긴 것처럼 읽었을까. 더구나 이 책은 헌책방에서 중고품을 산 것도 아니고 큰 기대를 갖고 산 새 책이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SF나 장르문학이나 이 비슷한 것들을 견디지 못한 순문학 지향의 속물의식 때문에 그렇게 읽었다고? 뭐 당신이 굳이 그렇게 우긴다면 할 말이 크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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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40년 - 4판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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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한말 군수의 직을 하던 변정상卞鼎相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판사를 하다가 “왜놈의 사냥개 노릇은 죽어도 못한다.”며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 안중근을 변호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해방 후에도 반민특위 재판장을 역임했던 강골의 변영만이요, 둘째는 제 1회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신흥공화국의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는 변영태이며, 셋째이자 막내가 죽기까지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당대의 세월을 보내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크게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명정酩酊 40년을 보내게 되는 영문학자, 교육자, 신문기자,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이니, 변 군수께서 다른 건 몰라도 아들 농사 하나는 근사하게 지었겠다.
  수주가 어렸을 때 이름이 ‘영복’이니, 변 군수께서 일찌감치 외출하신 하루는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해 아버지 아니 계신 사랑에 누워 있는데, 존장의 벗인 정영택 옹께서(당시엔 30대였지만) 사랑 미닫이를 열고 보니 열 살도 아니 된 쬐그만 게 주인 없는 사랑에 홀로 누웠던 것. 그리하여 정옹이 진중치 아니한 어조로 말씀하시기를,
  “영복아!”
  “……”
  “아 이놈 영복아!”
  “원숭이 왔나?”
  성미를 잘 아는 정 교관은 못 들은 체,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 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기경(奇驚)하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익, 고자식.”
  하고 떠나려 할 때 나(수주)는 한걸음 더 내치어,
  “여보게, 히로(우리나라에 처음 수입된 양담배) 한 개만 주고 가게.”
  망설망설하다가 홱 한 개를 던져 주고 총총 문을 나시었다. 는 거 아닌가.


  수주 자신도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저 먼먼 옛 시절부터 술 한 바가지 얻어 마시기 위해 자기 키보다도 더 큰 술독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혹시 개평 술이라도 얻어 걸릴까 싶어 아버지와 벗들의 술상을 지키다가 아이 놈이 술 좋아하는 걸 이미 아는 어른들이 약만 올리고 술을 주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서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유쾌하고 때론 창자가 아플 정도로 웃긴 《명정 40년》을 시작한다.
  실로 전설적인 이야기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숱하게 들은 수주 변영로의 술에 얽힌 기행들. 그저 교사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온, 거의 신화 수준이라 믿기 어려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공초 오상순, 횡보 염상섭, 성재 이관구와 더불어 네 명의 돈 없는 룸펜 인텔리겐치아들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고하 송진우에게 나중에 좋은 글 한 편을 기고할 테니 원고료로 50원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 얻은 돈으로 술과 고기를 사들고 성균관 위에 올라 대취했던 일이다. 잔뜩 술을 퍼마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난데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큰 비를 맞고 누웠다가 공초가 선언하기를 옷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을 이간시키는 쓸데없는 물건이라 칭하며 옷을 찢어버리고 네 명의 나한이 몸에 일호一毫의 천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소를 타고 혜화동까지 진출한 일이었다.
  공초와 횡보는 늘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어서 이 일화를 나 역시 구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때 문제의 한 명, 성재 이관구가 여간해 생각나지 않았었다. 책을 읽어보니 이관구라는 동아일보 기자와 그의 춘부장을 비롯한 집안사람들과 얽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아프게 웃기는 술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었으나, 그건 일독의 가치가 넘치고도 넘치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고 내 말이 과장인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나 역시 애주가로 불리지 않으면 매우 섭섭한 정도의 술꾼이지만 감히 수주와 곁을 대할 수 있을까보냐. 수주는 나이 쉰이 넘도록 약 한 봉지 먹어본 적 없는 강골의 사내였단다. 당시 사람들이 자시던 소주는 지금처럼 20도도 되지 않아 술인지 물인지 밍밍한 소주가 아니라 똑 부러지게 40도짜리였다. 그것을 되, 1.8리터 단위로 몇 병을 앉은 자리에서 마셨으며 당연히 지구 온난화 전이라 오줌줄기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밤에 술에 취해 떡이 되어 길거리에 횡와 취침橫臥就寢 가로누워 자면서 그새 내린 백설로 이불을 삼아도 다음 날엔 어김없이 학교나 신문사로 출근을 해 우우풍풍雨雨風風,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는 사내였다.
  수주, 하면 《명정 40년》. 그러나 《명정 40년》으로 그의 이름을 취생몽사의 대명사로 알면 오산이리라. 그 역시 백형이나 중형을 닮아 이화여전, 중앙학교, 성균관대학 선생을 거쳐 동아일보 신문기자를 하면서 한 번도 일본을 위한 문장을 써 본 적 없고, 창씨개명은 그의 앞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손기정 일장기 말살까지 획책했던 울분의 지사였다.


  인터넷 공간의 오랜 벗들은 몇 번 들으셨을 터이지만, 내게도 수주 못지않은 명정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일탈의 광태를 한 번 소개한다.
  때는 1981년 봄. 서울대를 다녔고 지금은 내가 사는 동네의 대학에서 훈장을 하는 김군과 나는 날이 좋다는 핑계로 학교 앞 청화식당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막걸리 잔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 말斗(약 18리터, 즉 일인당 9천cc)을 마시니 점심 때가 됐다. 밥 대신 막걸리 한 말을 더 마시고 나니까 수업을 파한 후배 아이들 둘이 고개를 디밀었다. 산업공학을 하는 남자 후배, 화학을 전공하는 여자 후배. 둘이 무슨 썸을 타는 관계는 분명히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만나서 한 잔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틀림없었다. 후배들에게 동무를 소개하고 반 말을 더 시켜 마저 마시니 이제 석양이 내리려는 듯. 우리는 밀주 막걸리 몇 통을 더 달라고 해 손에 들고 모교 운동장을 둘러싼 잔디밭으로 진출해 두어 되를 더 비웠다. 잔디에 누워 청하디 청한 하늘을 보다가 내가 동무에게 말했다.
  “벗어버리자.”
  그래 나하고 멀리 관악산에서 온 동무하고 둘이는 예전 성균관의 네 나한처럼 일호의 천조각도 몸에 걸치지 아니하고, 내 옷은 화학 공부하는 아이한테, 동무의 옷은 산업공학을 하는 아이한테 봐달라고 한 채 운동장을 감싸 안은 도로 위를 뛰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늦봄의 황혼이라, 교정을 바라보고 오른 편의 중앙도서관에서 한 떼의 학생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학생식당으로 교정 밖의 밥집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오직 하나,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는 거. 남학생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하며 웃기에 바빴고, 여학생들은 갑자기 자기들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정색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옆 눈으로 우리의 알몸이 다 보일 터이니까. 교정 정면에 있는 본관 건물 오른 편으로 들어가 교무과, 학적과 등의 사무실을 거쳐 왼편으로 나와 강당 옆을 끼고 다시 운동장을 두른 잔디밭으로 돌아오니 후배 아이들은 서로의 등을 두드려가며 아까 마신 막걸리를 게워내고 있었다.
  벌써 그게 40년 전이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귀밑까지 뜨거워지는 게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내 나이 이십 대였다는 것이 유일한 변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몸질주는 내 일생 가장 큰 수치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가 포경수술을 하기 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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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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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생애를 짧게 이해하려면 <문맹>을 읽어보면 충분하다. 이이의 정체성은 망명자. 망명지에 떨어져 이국의 문자로 작품 활동을 하는 불리한 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프를 읽으면 간혹 섬찟한 느낌이 든다. 불멸의 작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다.
  상도르, 라는 이름의 남자.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 헝가리(로 추정하는 나라)의 작은 마을, 작은 학교에 단 한 명의 교사라 모든 학년을 담당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선한, 아니면 적어도 악하지 않은 심성을 지난 사람이다. 몇 년 전, 일단의 집시무리가 지나가면서 고을에 열여섯 살 먹은 예쁘게 생긴 소녀 에스테르를 혼자 떨어뜨려놓고 간 적이 있다. 상도르는 이 아가씨를 보살피다가 처녀성을 훼손시켰고, 이어서 아들 하나를 만들어놓고 만다. 이후 어린 에스테르는 시골이라 마땅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질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해 대부분 농민으로 구성된 마을의 모든 남자에게 몸을 팔아 돈이면 돈, 양식이면 양식을 얻어, 마을에서 벗어난 공동묘지 입구에 작은 움집을 짓고 살아왔다. 에스테르가 낳은 상도르의 아들, 토비아스 호르바츠. 나이가 차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보니, 가끔 집에 찾아오던 아저씨가 담임선생일 줄이야. 게다가 옆자리에 앉은 같은 학년의 꼬마 아가씨 카롤린. 카롤린이 말한다. 너는 우리 오빠의 옷과 신발을 신고 있구나.
  옷과 신발은 상도르 선생이 입학식 때 입고 가라고 큰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준 거였다. 카롤린의 아래로 사내아이가 하나 더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미덕이라 훈시를 했고, 아내 역시 남편의 뜻이 합당하다고 여겨 토비아스에게 건네준 것. 그러나 교실에서 토비아스의 책상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책도 없고, 문방구도, 도시락도. 그날 밤 상도르는 다시 토비아스의 집을 방문하고, 엄마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한참을 있다가 갔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교과서와 공책을 비롯한 모든 문방구가 다 놓여 있었으며, 이후 카롤린이 넉넉하게 가져온 도시락을 기꺼이 나누어 먹게 된다. 토비아스는 자존심이 상해 먹지 않으려 했지만 도무지 너무 배가 고파 그런 것까지 차릴 여유가 없었단다.
  세월이 흘러 이제 졸업을 해야 할 즈음, 상도르 선생이 토비아스의 집을 다시 찾아 머리가 좋고 똑똑해 성적이 최상급인 토비아스를 상급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돈이 없어도 무료 기숙학교가 있으니 그곳에 보내면 된다고 엄마 에스테르를 설득하려 한다. 에스테르는 상도르가 자식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고, 토비아스는 이제 일을 해 한 푼이라도 보태야 하는 처지라고 주장해 이에 반대하는 입장. 에스테르가 묻는다.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지요?”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너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 나는 네 얼굴과 눈과 입과 몸뚱이에 홀렸던 거야. 너 때문에 잠시 눈이 멀었을 뿐이야. 하지만 토비아스는 사랑해. 그 아이는 내 거야. 비록 네 몸에서 나왔지만 이제 더는 너를 참을 수가 없어. 너는 내 젊은 시절의 실수일 뿐 아니라, 내 생애 최대의 오점이야.”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늘 하던 것을 하기 시작한다. 토비아스가 소원하는 단 한 가지. 이곳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는 것. 열두 살의 토비아스는 서랍에서 제일 큰, 고기 써는 칼을 꺼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가 그녀 위에 포개진 채 잠을 자고 있다. 달 밝은 밤이었다. 토비아스는 팔을 번쩍 들고 상도르의 등을 향해, 있는 힘껏 칼을 찔러 넣었다. 큰 칼이 그의 몸을 통과해 엄마의 몸뚱이까지 찌를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 그리고 집을 나서 서쪽으로, 다른 나라들이 있다고 배운 서쪽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우리말로 번역한 원고가 겨우 사백 장에 불과한 중편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
  이렇게 동시에 부모살해를 꿈꾸고 실행하고, 유랑에 나서는 이십 세기의 저주받은 오레스테스, 토비아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새로이 상도르 레스테르라는 이름으로 망명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의 한 여인 ‘린’을 그려놓고 권태와 나태와 싫증과 죽음의 유혹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워나간다. 망명지에서 외국어로 쓰인 작품을 시도하며 언젠가는 책 한 권을 내겠다는 최소한의 희망으로 숨을 이어가고 있다. 망명한 동포들은 이곳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고, 욕조에서 동맥을 끊기도 하고, 유서로 ‘너희들은 내 똥이나 먹어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을 매달고, 가스밸브를 열고 머리통을 오븐에 밀어 넣은 채 죽어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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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6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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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역사를 찾는 이야기. 19세기 위대한 영국의 시인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가상인물 랜돌프 헨리 애쉬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한 세기가 흐른 1986년, 군의회의 하급관리인 아버지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뜻을 접은 것도 모자라 남편과 아들에게 좌절감을 느끼며 사는 어머니 사이의 스물아홉 살 아들 롤런드 미첼이 등장한다. 롤런드 미첼은 78년에 런던 프린스 앨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작년에 같은 대학에서 “역사가와 시? 랜돌프 헨리 애쉬의 시에 나타난 역사적 ‘증거’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스물여덟 살에 박사학위를 얻은 재원이라면 재원인데, 문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1980년대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의 서릿발 같은 신자유주의 치하의 영국식 문사철 홀대 덕택에, 1951년부터 무려 35년간 애쉬의 《전집》을 편집하고 있는 블랙커더 교수의 연구실에서 시간제 연구원, 그러니까 쉬운 말로 ‘따까리’ 신세로 푸트니가街의 다 쓰러져가는 빅토리아 풍 주택의 지하실에서 애인 ‘발’과 함께 영화 <기생충> 가족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
  애인 ‘발’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자질의 영문학도였건만, 하필이면 논문의 주제로 역시 랜돌프 헨리 애쉬를 선택하는 불운을 당해, 전력을 다해 학부생 치고는 훌륭한 논문을 작성했으나, 논문을 읽은 (복수의)채점자들이 모두 애인인 롤런드 미첼이 무지하게 도움을 주었고 심지어 일부는 대필해주었을 것이라 단정하는 바람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IBM 볼타자기를 한 대 사서 남의 논문이나 견적서, 선적서류, 소장訴狀 등을 타이핑해주고 돈을 벌어 애인인 롤런드를 거의 먹여 살리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발 역시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비누질 열심히 해 세수만 해도 얼굴에서 광이 날 정도로 미인이지만 고양이 오줌 냄새가 하루 종일 빠지지 않는 지하방에서 고단한 살림살이를 하느라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여지가 없어 언제나 자다 부스스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들 커플 신세는 짐작을 하실 터.
  롤런드가 발의 눈치를 뒤통수 가득 받으면서 1986년 9월의 어느 날 오전 열 시에 들른 곳이 런던도서관. 오늘도 롤런드는 랜돌프 애쉬와 관련한 자료를 찾던 중 오랜 세월 서가에 묻혀 먼저만 두껍게 쌓인 책을 열람하는데, 예전에 애쉬의 서재를 장식하던 비코가 쓴 책 <프로세르피나>를 골랐다. 서가에 보관한 다음에 한 번도 열람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균일한 농도의 먼지가 네 귀퉁이를 딱 맞춰서 책을 덮고 있었다. 사서가 먼지를 털고 드디어 백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뛰어 롤런드가 책을 열었더니, 책갈피 사이에 숱하게 난삽한 메모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구둣가게 청구서, 담뱃갑을 찢어 써놓은 누군가의 이름,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장 등등의 속에 놀랍게도 애쉬가 미지의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 두 통이 들어 있는 거였다. 여태까지 애쉬는 사이에 아이가 없는 아내 엘렌 부인만 죽자사자, 죽을 때까지 사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 롤런드는 은근히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두 장의 편지 원본에, 연구원이라면 당연하게 느낄 법한 ‘소유’ 욕심이 들어, 결국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슬쩍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만다. 이 같은 남자 주인공 롤런드의 호기심 어린 일종의 절도행위로 말미암아 900쪽에 거의 육박하는 장편소설의 막이 올라가게 되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롤런드가 실력도 있고, 그만하면 인물도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 빌빌거리는 건, 롤런드 정도(보다 약간 밀리는 수준)의 실력도 있고, 인물은 훨씬 좋은데다가 성공을 위한 필살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또는 선생들을 매료시켜버리는 천부의 능력을 지닌 퍼거스 월프라는 인간에게 자리를 뺏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롤런드는 퍼거스를 여전히 친구로 여겨 자기가 훔쳐낸 랜돌프 애쉬의 편지 초안에 대해, 바보같이, 고백을 하고, 이 사안이 아무래도 신화수집가인 이시도르 라모트의 딸이자 시인인 크리스타벨 라모트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한 술 더 떠버린다. 그래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퍼거스는 여러 가지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면서도 태연하게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전공하고 있는 두 명의 페미니스트이자 적수이자 동시에 내가 독후감에서 얘기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관계를 맺고 있는 플로리다 탈라하세의 레오노라 스턴 교수와 링컨대학의 모드 베일리 박사를 소개해준다. 스턴 교수는 거리가 워낙 멀어 가까운 링컨에 사는 베일리 박사를 찾아가는 롤런드. 엇, 박사가 생각보다 젊다. 물론 롤런드보다는 나이가 많은 거 같은데 영국 사람들은 나이에 관해 큰 차이만 아니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시지? 그럼 뭐가 생각나시지? 불륜? 아님. 롤런드 미첼과 발은 그냥 동거상태. 게다가 둘은 젊은 것들이 벌써 (정말 불쌍하게도) 삶의 무게에 치어 언제나 살얼음판 위에 살고 있고, 베일리 박사는 애인도 없는 미혼.
  곧바로 직진하자.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인 랜돌프 애쉬는 정말로 사석에서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만난 적이 있고, 애쉬가 편지를 보내 상당한 기간 동안 서로 편지로 우정을 돈독하게 한 적이 있다. 그래 롤런드와 모드는 의기투합, 크리스타벨이 만년을 보낸 링컨 근방의 실코트 성城 근처를 둘러보러 갔다가, 때마침 휠체어에 문제가 생겨 곤경에 빠진 베일리 부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생각하지도 못하게 진짜로 실코트 성과 크리스타벨이 최후의 숨을 쉰 탑의 방에까지 들어가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모드 베일리는 라모트의 시 가운데 인형에 얽힌 작품을 암송하며 놀랍게도 랜도프 애쉬와 크리스타벨 사이에 오간 수십 통의 편지, 처음엔 문학과 시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해 점점 열렬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변하는 (숨긴)편지뭉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작품은 극적인 장면에 돌입하게 된다.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1825년생으로, 조부모 장 밥티스트 라모트와 에밀리 라모트 시절이었던 1793년 공포정치를 피해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가문의 후예로, 독신 고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서레이의 리치몬드에 집을 얻어 블랑슈 글로버와 동거를 하다가, 블랑슈의 독려에 힘입어 대표작 <요정 멜루지나>를 발표한, 당대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진가가 밝혀진 시인, 이라고 설정했다. 역자 윤희기의 해설을 보면, 랜도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실제 19세기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를 모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고, 블랑슈 글로버 양이 74쪽에선 1861년에 테임즈 강에 빠져 자살해버리고 만다고 했으면서 401쪽에선 또 1860년에 ‘물에 빠져 자살’한다고 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물론 블랑슈의 자살에 관해서도 입을 떼면 좋을 일이 없을 듯.
  책은 이렇게 두 커플, 1980년대 롤런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 1860년대 랜도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 커플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현재 시점에 거론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총 출동해서 연구 자료를  갖고자 하는 소유욕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가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내용은 더욱 모르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벌이는 난장판. 이야기가 거창하고 장황해서 그렇지 자기 취향하고 맞기만 하면 날밤 새우는 건 일도 아닐 작품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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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9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거 사놓고 아직 안 읽은 책인데, 제 취향에는 맞을 거 같은데... 이번 연휴에 읽어볼까요? ㅎㅎㅎ 근데 이것도 인물 관계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책인가요?!!!

Falstaff 2020-04-29 14:23   좋아요 0 | URL
옙.
한 세기가 넘게 복잡하게 꼬인 인간들이 등장하니 관계도는 그리셔야 할 거 같네요.
뭐 4대조모가 누구인지 막 언급을 하는데, 흑흑... 제가 잘 못 살았나봅니다. 증조부 이름도 모르고 살았으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