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헨따 1 창비세계문학 56
레오뽈도 알라스 끌라린 지음, 권미선 옮김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권 1,300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요새 창비 미운 짓 참 많이 하는데 책 읽으면서 얘들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딜레마. 어떤 미운 짓? 자기들만 잘난 줄 아는 거. 걔들 수준에 맞추느라 어려운 말로 하자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 이것도 한문으로 써줘야 알겠구나. 天上天下唯我獨尊. 할 말은 없다. 나도 청춘시절에 백낙청 존나 존경했으니 누굴 가지고 뭐라 하겠어.
 안 읽으면 되지 왜 피해갈 수 없느냐? 내가 거의 최상급으로 존경하는 소설 가운데, 최상급도 그냥 최상급이 아니라 최상급 중의 최상급으로 어떤 작품이 있느냐 하면,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 이 영광에 빛나는 스페인 문학을 생각해보면, 문학도 역시 국력이 뒷받침해야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법이라,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해군에게 쌍코피 터진 다음 뒷방 늙은이 신세로 떨어지는가 싶다가 이게 18세기, 19세기로 접어들면 완전히 세계사 혹은 세계문학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영국, 독일의 19세기 문학은 꾸준히 읽을 수 있었던 반면 문학사의 뒤페이지에서 몇 줄 끼적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러니까 가톨릭이 백성을 지배하는 지역에서 나온 성과물에는 한국의 독자들이 접촉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근데 우리의 천상천하유아독존 창비가 19세기 스페인 소설 <레헨따>를 발간해준 거다. 이러니 책 좀 읽는다 싶은 한국인이 어떻게 창비를 피해갈 수 있느냐고. 작가 이름 쓴 거 좀 보시라. 레오뽈도 끌라린의 <레헨따>. 아주 잘난 척이 줄줄 흐른다, 흘러. 외국어 표기법은 개나 물어가라 이거다. 하지만 눈에 힘주고 좀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나 거기나 다 그게 그거다. ‘뿌에르또리꼬’에서 191X년에 발간된 신문이라는 각주가 나오기도 하는 걸 보면 창비도 좀 창피해하겠지? 책이 나온 시점이 1884년. 작가가 죽은 해가 1901년. 근데 191X년에 발간하기 시작한 ‘뿌에르또리꼬’ 신문을 등장인물이 읽을 수 있어? 어이, 창비. 너도 잘 좀 하세요.
 이 작품이 스페인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 한다. 최초가 1884년. 좀 늦기는 하다. 프랑스에서 최고의 자연주의 소설인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나온 해가 1877년. 프랑스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으로 뭘 꼽는지는 모르겠다. 작가 끌라린이 마음 단단히 먹고 1880년대 스페인의 정치, 종교, 사회, 사상 등을 제대로 비틀어 놓은 책. 스페인 북서쪽에 ‘베뚜스따’라고 하는 가상도시가 있어, 이제 다 늙어 큰 자리를 맡고 싶지 않은 신부(priest)에게 주교 자리를 줬더니 주교는 일상적 임무를 책임질 총대리신부를 임명하는 조건에서 수락, 그 자리에 페르민 신부를 앉혀 자신의 거의 모든 권한을 부여하고 자기는 뒷방으로 스스로 물러난다. 주교가 아무한테나 총대리 자리를 준 게 아니어서 당연히 총명한 페르민 신부는 베뚜스따의 정신적 어버이로 군림하는데, 성직자들도 인간인지라 주임신부 등을 비롯한 많은 사제들, 그들과 친한 베뚜스따 귀족과 유지들,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페르민 신부의 어머니에 의해 거렁뱅이 알콜 중독자가 된 상인, 심지어 무신론자 등이 똘똘 뭉쳐 페르민의 사제복을 벗기기 위해 호시탐탐 모의를 거듭한다.
 그래서 책을 넘기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씬이, 총대리신부 페르민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첨탑에 올라 망원경을 눈에 대고 자기 영역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지역에서 사는 인간들이 몽땅, 이제 서른이 좀 넘은 자신의 아들딸들이라는 걸 확인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뭐 대강 이해는 하겠다, 그 기분. 이런 광경 어디서 보셨지? 맞습니다, <라이언 킹>. 이 무파사의 아들 심바, 즉 페르민 신부, 소설을 자연주의로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인데, 만장하신 여러분, 가톨릭 신부는 고자eunuch가 아니란 건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자 가톨릭 사제인 페르민 신부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돼버리고 만다. 어떻게? 당연히 플라토닉 사랑. 정말? 글쎄. 그걸 내가 왜 가르쳐드려야 하지? 돈 들여 1,300쪽을 읽은 게 아깝잖아? 좋다, 이건 말씀드리지. 그 여인 도냐 아나로 말씀드리자면, 당시에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던 자유주의자 귀족이 이탈리아 출신 하녀와 결혼해서 낳은 딸로, 낳자마자 엄마 죽고, 아버지는 사상 때문에 해외도피. 영국에서 교육받은 가정교사의 냉정하기 짝이 없고 매사가 무지막지하게 가혹한 훈육 속에서 살다가 정신적 외상이 대단한 청소년기에 이르렀다. 영국 유학을 했으나 천박한 성격의 미혼 가정교사 입장에서 이탈리아 하녀 출신(혹시 하녀 또는 무희舞姬였을지 어떻게 알아?)이 생산한 아나를 학대함으로서 가학성 쾌감으로 자지러졌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자 다시 베뚜스따 대표 속물인 두 고모들과 같이 살다가 열일곱 살에 마흔이 넘은 판사한테 시집간 유부녀, 도나 아나. 남편인 판사는 사형선고 내리는데 정나미가 똑 떨어져 아무런 핑계를 대고 조기 은퇴하여 사냥, 발명, 시낭송, 연극 등을 즐기며 사는데 암만해도 아랫도리가 좀 부실한 듯, 도냐 아나의 은근한 손길을 역시 은근하게 피하는데 골몰, 전념한다. 어려서 얻은 정신의 외상으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도냐 아나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한 명 더 있다. 돈 알바로. 베뚜스따가 낳은 돈 후안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 번 찍어서 자빠뜨리지 못한 여인이 없는 인간. 키 크고, 잘 생기고, 거기다가 돈도 많은 우라질 놈.
 좋아, 좋아. 이왕 말한 거, 다 얘기한다. 도냐 아나를 둘러싼 두 미혼 남자. 돈 알바로와 페르민 신부 사이의 야릇한 삼각관계가 책의 굵직한 줄거리다. 거기에 자기 마빡에 뿔 돋는지도 모르는 전직 판사 빅토르.
 그래서 스토리는 치정극이 되느냐고? 아닐 걸? 아, 그래. 치정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치정극에 가톨릭 사제를 끼워 넣은 것이 19세기에 얼마나 깡다구가 세야 할 수 있었는지는 책만 읽어봐도 알 정도.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모르는 스페인의 한 주도州都 베뚜스따에서 벌어지는 성과 속의 난장판. 한 순간 팔팔 끓어올랐다가 금방 냉랭하게 식어버리는 시민들의 온갖 모습. 여기에 도냐 아나의 왔다 갔다 하는 정신상태, 즉, 변덕. 성이냐 속이냐의 갈림길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마마보이의 고뇌. 온갖 잡놈잡년의 굿판. 성도 개판이고 속도 개판이어서 베뚜스따, 아니 19세기 스페인 전체가 개판임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댄 레오뽈도 알라스 끌라린. 이거 쓰고 으슥한 밤길 가다 뒤통수 한 방 안 얻어 터졌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뭐 그렇다고 읽어보시라는 뜻은 아니고. 재미없단 게 아니라 너무 길어 욕먹을까 겁나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10-1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의 제멋대로 표기법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성속을 아우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쓰또리가
아주 땡기네요. 다만, 1,300쪽이나 된다고 하니
쫌 고민이네요.
나중에 헌책방에 등장하게 되면 땡길까요?

유럽 중앙무대에서 뒷방늙은이 신세가 된 시절
의 에스파냐 이야기와 어쩌면 그렇게 21세기
헬조선의 들끓는 모습과 그렇게 유사한지 모르겠습니다.

Falstaff 2017-10-13 12:39   좋아요 1 | URL
옙.
(창비 잘난 척하는 건 별개로 하고요, ^^)
스또리는 재미난데, 너무 세밀한 것까지 다 글로 설명하려니 (쓴 사람은 어떠했겠습니까만 그건 다 지 팔자고) 읽는 독자 아주 까무러칩니다. 헌책방에 나와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심이.... 진짜진짜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인생 살면서 혹시 교도소 갈 일 있으면 거기서나 어떻게 한 번 ^^;

sprenown 2017-10-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1,300페이지짜리 책을 읽습니까? 눈이 정상인지 궁금하네요..제 독서속도로는 한달이상 걸리는 책인데..ㅋㅋ.. 노안이 와서 2~3페이지만 봐도 눈이 침침하고, 가물가물.. 인공눈물 한방울 떨어 뜨려야 하는데.

Falstaff 2017-10-14 05: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눈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받은 것이지요.
거의 국내 최초 원본 직역, 초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1권 4,800 쪽에 육박합니다. 노안이 심각해지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sprenown 님한테도 완역을 읽기 위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민음사 번역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모자를지도 모릅니다.
댓글 쓰고보니 잘난 척 한 거 같아서 면목이 없습니다. ^^;

sprenown 2017-10-1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다, 잃어버린 눈을 찾아야 할 지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