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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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권의 왑샵 가문 이야기책에 이어 세번째 읽은 치버. 이이의 작품에 관해 별로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책 표지 그림이 너무 드러워서 후져서 <팔코너>는 읽지 않으려고 했었다가 어? 거기다가 품절 사태까지, 왠 품절? 거 읽고싶은 생각 안 들었는데 잘됐네, 이런 대쪽같이 곧은 마음가짐으로 잘 지내고 있다가, 친애하는 서재 동무님께서 아주 은근하게 권하시는 걸 이기지 못해 사서 읽고는, 아이고야, 어찌하여 아직까지 이 책을 모르고 살았던가, 그동안 안 읽고 지낸 세월이 아쉬운 바 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찍은 것이 중쇄가 아닌 중판인데도, 보시는 바와 같이 드런 후진 표지를 바꾸지 않은 것에 관해 여전히 불만이란 건 좀 밝혀야겠다.

 세상에서 제일 분위기 살벌한 곳? 해병대 막사? 아니다. 단언컨데(이 말 무척 좋아했다가 광고에서 이병헌이 '단언컨데 메탈' 어쩌고 하는 바람에 잘 안썼다) 세상에서 가장 살벌한 동네는 남자 교도소. 내가 사는 동네의 조폭 아저씬 감방 안에서 드런 꼴 안 보겠다고 바늘로 위 아래 눈꺼풀을 꼬매버렸다는 전설적인 소문 났던 곳이 남자 교도소 내부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한 여자는 주인공 에제키엘 패러것과의 사이엔 이미 사랑의 흔적이라곤 남아있지 않는 미모의 아내뿐이다. 에제키엘 패러것. 2차대전 참전용사이자 대학교수, 그리고 마약중독자.

 아참, <팔코너>에서 팔코너가 뭔지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다. 한 세계를 일컫는 말. 이곳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리라. 이 문장이 딱 들어맞는 곳. 교도소 이름이다. 누구한테도 등을 찔릴 위험이 있어 절대 뒤돌아서면 안 되는 곳. 교도관에 의한 폭행과 인권유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지만 호소할 수도 없는 곳. 어느새 남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곳. 으때, 살벌하지? 더구나 <쇼생크 탈출>처럼 교도소 안엔 누군가가 독방에 갇히고 줘 터지는 댓가로 야노비츠와 마티스가 노래하는 모차르트도 들리지 않는다. 이 노래. 아시지?

 

 아, 내가 오늘 왜 이리 횡설수설이지? 어제 탕수육 먹으면서 고량주를 너무 벌컥벌컥 들이켰나? 하긴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 한다. 남자들, 언제 교도소 구경할지 모른다. 거기가면 별 지랄을 해도 고량주 냄새도 못 맡는다. 교도소 구경하는 거? 물론 파렴치 악당들이 주로 드나들지만 갑작스런, 난데없는 모욕을 제어못하고 순간적으로 화딱지를 내면서 당신도 누군가를 푹 쑤실 수 있다는 거. 그럴 확률이 남자가 여자보다 무척 높다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아, 책의 주인공 패러것도 이 경우에 속한다. 물론 당사자야 자기 형을 때리긴 때렸지만 죽은 진짜 이유는 형놈이 너무 취해 넘어지면서 자기가 스스로 벽난로 모서리에 머리통을 처박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는 해도. 쯧쯧. 마약중독자만 아니었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성경책에 손을 얹고 진실만을 얘기하겠노라 선언한 패러것의 아내한테, 마약중독자의 가족으로 살면서 가끔 문제가 닥치진 않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증언대 위에서 남편 페러것을 바라보며 한 번 미소를 짓고는, 예, 가끔 그랬습니다, 라고 답변하는데,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여, 당신들 살면서 남편 때문에 문제에 부딛히지 아니하고 여태까지 살았는가, 라고 패러것은 아내가 아니라 재판장에게 호소하고 싶었으리라. 지금 살인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건지 만성 마약중독을 심리하고 있는 건지 말야. (책엔 분명히 "만성" 마약중독이라고 나오는데 혹시 이 글 읽는 의사 선생 계시면 좀 가르쳐주시라. 만성 마약중독이 맞는지, 습관성 마약중독이 맞는지. 써놓고 보니 만성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중독이란 말 안에 이미 습관성이란 의미가 포함되니)

 근데 왜 패러것 교수가 더러운 마약중독자가 됐을까? 세상에 둘 있는 더러운 종자들 가운데 하나(나머지 하나는 거짓말장이다). 국가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가 패러것이 마약중독자가 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가정인데, 조금은 이해가 가고 조금은 설마 그렇게 했겠어? 하는 기분. 세계대전에 참전한 패러것. 돌격 앞으로! 외치며 적군을 쏴죽이고 찔러 죽이고, 진짜 죽었는지 한 번 더 쏴보고, 찔러보고, 바로 옆에서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는 손톱만한 금속에 목이 관통당한 입대 동기, 차라리 즉사라도 하지 숨은 안 끊어지고 살고는 싶고 살 확률은 없고 게다가 말 그대로 죽음에 이르는 고통까지 두 눈 번히 뜨고 바라보게 만들기 위해 미합중국의 위대한 군대에선 병사들에게 약한 모르핀, 휴대용 모르핀 성분의 약물을 허벅지에 콱 찌르게 지시했다는 거다. 아무리 위대한 미국이라지만 <팔코너>처럼 유명한 소설에서 치버가 거짓주장을 했다면 소송이라도 하지 그냥 문학적 표현 운운하면서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을 거 같기도 하고 뭐 좀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그건 대한민국 충청남도 영동군 노근리에서도, 황해도 신천에서도 그리고 몇군데 더 있지만 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좔좔 써대긴 좀 그렇고, 하여간 타국의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그게 맨정신이었겠을까, 의심이 들기도 해서다. 약한 정도의 마약, 그래서 그냥 약물이라고 칭하는 수준이었던 것이 제대 후 제대로 된 마약, 히로뽕, 물뽕, 모르핀, 아편 등등의 양질의 마약을 만났으니 환각의 아름다움에 관한 수준이 애초부터 달랐을 터, 어떻게 본격적인 중독자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근데 지금 뭐하는 거야, 마약 중독자 변명해주는 거야, 뭐야. 반성하겠다.) 패러것이 얼마나 마약에 쩔어 살았던지, 패러것의 담당의사는 팔코너 안에서도 매일 일정량의 마약 대체제를 복용할 수 있도록 처방했을 정도다.

 자, 어느 틈에 벌써 이야기는 다 나왔다. 막을 수 없는 가족간의 불화로 형을 충동적으로 살해했고, 국가기관에 의하여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아내와는 어떻게 먹는 것부터 체질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안 빼고 아주 정 반대에다가 둘 사이에 사랑이란 환상은 남자의 유방이나 꼬리뼈, 75세 남자의 페니스같은 흔적기관처럼만 존재하고, 현재 처해진 곳에선 남성간의 동성애와 폭행, 인권모독및 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상태. 저 멀리 '더 월 The Wall'이란 교도소에선 민간인 스물 아홉명을 인질로 잡아두고 교도소 내 폭동이 일어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 반 걱정 반에다가, 우리도 한 번 해볼까 싶어서 낼 모래 죽을 팔자인 힘없는 노인네 치킨 넘버 투(넘버 원은 얼마 전에 죽었단다)는 급기야 매트리스에 불까지 싸지르지만 세상에 맘대로 되는 일 있어? 이 평생에 걸친 절망의 구렁텅이. 그게 인생이다, 인생. 팔코너 밖이라고 뭐 뾰족한 거 있나?

 얼마 지나 이 책 꼭 다시 읽어볼 거다. 지난 화요일에 폭음을 하고 수요일에 책을 읽어서 컨디션이 진짜 좋지 않았다. 그때 독후감을 다시 쓴다면 어떻게 쓸까, 나도 몹시 궁금하거든!



* 혹시 책 구입하시려는 분들, 절대로 페이지에 떠있는 '출판사 책소개'는 읽지 않았기를 바란다. 아주 제대로 된 스포일러. 끝장면까지 다 나와있다. 그거만 읽고 어디 가서 나 <팔코너> 읽었는데 말야, 이렇게 얘기해도 될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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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드런 책표지 ㅋㅋㅋ 그러고 보니 정말 드럽네요. ㅋㅋㅋㅋ 마약과 동성애 조합 소설의 종종 있는데(윌리엄 버로스 <퀴어> 같은...) 보통 그런 조합은 지루했거든요, 근데 이 책은 끝까지 흥미진진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Falstaff 2017-08-14 14:47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에 관해서 주구장창 주장해온 것이 표지 그림이 드럽다는 건데, 중판임에도 바꾸지 않았어요. ㅠㅠ
문학동네하고 저하고 합이 맞지 않는 건 확실한가 봅니다. ㅎㅎㅎ
며칠 있다가 <퀴어> 읽을 거예요. 원래 버로우스가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한 권 더 읽고 혹시 마음 바뀔까 싶어서 골랐던 겁니다. 또 마음에 안 들면 완전 끝이지요 뭐. 그때 작품이 <정키>였나, 아마 그럴 겁니다.

coolcat329 2023-01-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가 정말 후져서 저도 살까말까 했는데 이 글 읽고 사기로 했습니다. 최상 중고가 있어서요~~^^

Falstaff 2023-01-16 16: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은 선택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