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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평점 :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 행크 치나스키의 성장소설. 누군가는 ① 책의 제목에 '호밀'이 들어간다는 것, ② 성장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셀린저의 <호밀밭 파수꾼>하고 비교하고 싶은가본데, 만일 누가 나더러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선택'이라는 것에도 종류가 있지 하필 이런 걸 선택하라고 하느냐고, 너부터 호로비츠와 루빈슈타인, 델 모나코와 디 스테파노 가운데 누가 더 좋은지 먼저 말해보라고 하고나서 일단 그렇게 물어본 작자의 왼쪽 눈을 향해 라이트 훅을 날리겠다. 근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샐린저가 만든 비행소년 홀든 콜필드보단 애초부터 독립군의 피를 타고난 우리의 행크 치나스키 쪽으로 손을 들 거 같다. 작년 이맘때 부코스키의 다른 작품 <우체국>을 읽고, 타임이던가 뉴스위크던가에서 명작의 반열로 꼽은 걸 보고 고른 책인데, 아이고 깜짝이야, 마치 타락한 천상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자유로움과 정말 자기 생각대로 사는 용기와 반대급부로서 딱 그만큼의 삶의 곤고함에 반하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작품을 수배하여 이번에 읽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즐겁게 읽었다고 하여, 당신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심각한 오해일 수도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두어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행크와 부모. 그들은 처음부터 뉴욕판 삼팔 따라지 신세.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서, 세상을 거친 반항의 프리즘을 통과한 빛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전근대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주일에 두어번씩 곡소리나게 얻어터지며 유년시절을 보낸 행크. 소학교부터 일찌감치 폭력과 따돌림 문화 속에서 오직 하나, 살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강박 속에서 정말로 '센 놈'으로 커가는 그의 행동과 언어가, 좋은 가족관계 속에 살았고 반듯한 학교 교육을 받은 당신에겐 지독한 속물로 보일 수 있고, 거지같은 새끼처럼 느낄 것이며, 쳐다보기만 하더라도 어제 먹은 고등어 조림의 비린내가 올라올 수도 있다. 거기다가 자기 맘대로 술 마시고, 싸움질을 벌임에야. 만일 자기 스스로 생각해봐서, 자신이 '잘', 또는 '곱게'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은 말 그대로 '잘' 생각해보고 선택하시기 바람. 당신 생각엔 터무니 없는 단어들이 총공격을 할 것이다. 그걸 읽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면 후회하지 않겠으나, 견디기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류들도 꽤 많을 거 같아서 좀 길게 얘기했다.
나?
나야 태생이 부코스키, 아니, 치나스키 옆동네라 그냥 동네 형 이야기인가 싶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말씀이야, 세상의 모든 껄렁쇠들이 다 행크 같지는 않다. 공부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겠지만, 식당에서 접시를 닦더라도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것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다락방의 작은 공간 안에서 타이프 한 대만 가지고 자신이 쓰고 싶은 거 쓰면서, 남과 어울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평생 그렇게 살고 싶다는, 진짜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 말이다.
그리고 이 인간 행크 치나스키. 아니면 찰스 부코스키. 진짜로 비슷한 일생을 살다, 갔다. <우체국>도 그렇고 <호밀빵 햄 샌드위치>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현대의 허상과 위선. 그걸 따라 인생의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어려서부터 지어낸 이정표를 밟는 대한민국의 인간들. 어째 그리도 똑같은가 말이지. 우리 속에서도 행크는 도처에 잠복하고 있으리라. 그들의 빛나는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