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의 여행 열린책들 세계문학 270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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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앰블러, 재미있는 사람이다.

  1909년 런던 근교에서 인형극을 하는 뮤직홀 아티스트 부부의 아들로 나서 런던 소재 공과대학에 들어가 배우다가 중도 작파하고 전기회사의 엔지니어 연수생으로 잠깐 일했다. 그러다가 애초에 부모한테 물려받은 예술인의 유전자가 힘을 발휘했는지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어 점차 소설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20대에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그것도 때려치우고 파리에 가, 미국에서 온 패션 특파원 여성을 만나 1939년에 결혼해 19년을 살고 이혼했다. 1939년? 이해 8월에 나치 독일과 소련, 즉 히틀러와 스탈린이 서로 불가침 협약을 맺었는데, 평소 강한 반파시스트였던 에릭 앰블러는 파시즘의 확장을 가장 강력하게 저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소련인 줄 알았다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게다가 독-소 조약을 맺고 보름도 지나지 않은 9월 1일에 세상의 시계가 멈춘 일이 벌어진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 2차 세계대전이 터져버린 거였다. 물론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은 한 2년 전부터 전쟁의 기미를 알아채 너나할 것 없이 군비확장을 해오긴 했지만 정말로 전쟁이 이렇게 쉽게 터질 줄은 몰랐을 걸?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아직 프랑스를 향해 전차의 포구를 돌리지 않았을 무렵. 이때가 앰블러의 장편소설 <공포로의 여행>의 시간적 배경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에릭 앰블러는 1940년에 이 소설 <공포로의 여행>을 쓰고, 1941년에 왕립 포병대의 말단 사병으로 지원 입대하니 그의 나이 32세. 이후 사진 부대를 거쳐 전쟁이 끝나고는 육군 영화 및 사진 부대장 중령 신분으로 제대했다.

  이러니 소련에 대해 감정이 좋을 수 없을 터. 기껏 믿었다가 발등을 찍힌 경우니까 그냥 반공주의자보다 더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앰블러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1951년부터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지금은 모르겠고 당시엔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고.

  이이의 다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한 책으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 248번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이 있다. 여태 읽은 줄 알고 그냥 지나친 책인데, 안 읽었다. 다음에 읽어야지.


  <공포로의 여행> 역시 스파이 소설. 독일과 튀르키예, 소설 속에서는 “터키”의 스파이들이 출연하지만 주인공은 스파이가 아니고 앰블러처럼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마흔 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성, 그레이엄이다. 그런데도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이의 직장이 “카터 앤드 블리스 컴퍼니” 영국의 거대 무기 제조회사이며, 무기 가운데 대포 관련 분야의 꽤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각종 대포를 다 연구한다. 소설 속에서는 한때 전쟁을 벌였지만 지금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해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터키 해군의 함포 성능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다. 회사의 핵심 멤버답게 높은 연봉을 받고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의 아름다운 집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어여쁜 아내 스테퍼니와의 사이에 토끼 같은 아이들을 두고 있다.

  1939년 9월이 왔다. 이건 그레이엄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만 더 많은 업무를 해야 한다는 뜻만 있었을 뿐. 그래 영국-터키 조약 3주 후에 앞에서 말한 프로젝트 건으로 터키로 출장을 가게 된 것. 목적은 터키 해군의 함포와 어뢰를 재무장하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소련은 터키의 해군 무장 강화를 좋아하지 않았겠지?

  하여간 그렇게 그레이엄은 터키에 갔고, 업무를 다 마쳤으며, 이제 다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귀국을 해야 했는데, 때를 맞춰 터키에 큰 지진이 나 1주 전에 터키 갈리폴리까지 갔다가 이스탄불로 되돌아온 터였다.


  억지로 잠깐 이스탄불에 머물러야 하는 그레이엄은 왕짜증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집에 돌아가서 스테퍼니와 함께 1월 1일, 신년을 맞아야 하겠기에. 그러려면 내일 당장 기차를 타고 다시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이제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이스탄불 현지에 무기회사 “카터 앤드 블리스 컴퍼니”와 터키 정부의 중개인이 있다. 코페이킨. 1924년에 러시아인들 6만5천 명과 함께 이주해온 백군 출신으로 보인다. 카드놀이 사기꾼, 매춘굴 공동운영, 군복 공급 계약자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온, 약삭빠르고 잔꾀에 능한 인물이다. 코페이킨은 그레이엄의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을 자신이 접대해야 한다고 고집이다. 저녁은 물론이고, 내일 새벽까지 이미 르 조케 카바레의 제일 좋은 좌석을 예약했다고 알렸다. 내일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레이엄은 일찍 호텔로 가서 자고 싶지만 이를 물리치기 어렵다.

  레스토랑과 카바레. 당연히 사건은 카바레에서 시작한다.

  카바레의 한 구석에는 파트너 없이 온 남자 손님 접대를 위한 여성들이 앉아 있다. 코페이킨이 보기에 그레이엄이 이런 방면으로는 잼병이라 자신이 여성들한테 먼저 접근해 알렉산드리아의 매춘부 출신이지만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마리아를 데려온다. 그레이엄이 술도 한잔 하고, 시간이 좀 지나 마리아와 함께 춤을 추게 되었을 때, 마리아가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바에 앉은 구겨진 양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남자가 계속 그레이엄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전혀 감이 없는 그레이엄은 이를 무시한다. 춤을 추며 바로 접근해 그 남자를 관찰해보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저 코딱지 만한 놈이? 마리아가 다시 말한다.

  “당신이 더 강하겠지만 등에 칼이 꽂히면 그걸로 몽땅 끝나는 거랍니다.”

  194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건 틀림없이 복선이겠지? 맞다. 구겨진 양복의 남자의 이름은 페토레 바나트. 전문 킬러. 소피아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알려진 독일 스파이 뮐러에게 고용되어 1주일 전에 갈리폴리에서 그레이엄을 칼로 살해하려다 아주 약간의 시간 차이 때문에 실패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확 구겨져버린 프로페셔널 청부 살인자이다.


  하여간 그건 나중 일이고, 카바레 르 조케에서 그레이엄은 또 한 명의 여성을 만나니, 이 밤의 쇼 가운데 하이라이트인 커플 댄스의 주인공 조제트. 호세와 계약상 혼인 관계에 있고, 여기서 말한 계약은 비즈니스 상 계약이라는데 소설이 끝날 쯤에 알게 되는 바, 포주-매춘부의 비즈니스와 유사하다.

  문제는 조제트가 겁나게 아름답다는 것이지.

  하여간 카바레에서는 새벽이 될 때까지 즐겁게 놀기만 한다. 눈매가 맵고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마리아가 2차 가자고 하는 걸 좀 많은 팁과 함께 기분 나쁘지 않은 말로 거절한 그레이엄은 코페이킨의 차에 타고 자기가 묵는 페기 가street 애들러 팰리스 호텔로 들어간다. 1939년 터키 호텔에서는 아무리 유명호텔이라 하더라도 늦은 밤에는 엘리베이터가 가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어두운 계단을 올라 3층 자기 방에 도착해 열쇠를 돌려 열고 방에 들어가 오른손으로 조명 스위치를 더듬는 순간 방 저편 어둠속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벽의 회 조각이 파박, 떨어졌으며, 두번째 총성이 들렸을 때는 하얗게 달군 쇠막대가 그레이엄의 손등을 지지는 느낌이 났다. 이어서 다시 한번 섬광에 이어 총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3층 창문을 통해 방에서 탈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군지는 당연히 모른다.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그레이엄은 곧바로 호텔 부지배인을 호출하고, 의사가 도착했으며, 주인공이니만큼 초장이니까 총알이 손등에 가볍게 스치기만 해 응급처치와 붕대를 감는 것으로 끝났다. 이어 도착한 지배인이 모든 편의와 비용을 대겠으니 호텔의 명성을 위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뭐 당연하지.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코페이킨. 그가 그레이엄을 싣고 다시 모처로 데리고 갔다. 터키 소속의 일종의 정보부대. 대장이 하키 대령. 하키 대령은 내일 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면 그레이엄, 당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앞에서 내가 열라 이야기한 그레이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대신 하키 대령이 마련한 귀국행은 허름한 증기선. 화물 운송을 전업으로 하되 승객 몇 명에 한해 저렴한 비용으로 실어다 주는 배 세스트리 레반테호였다. 모든 스토리를 알게 된 그레이엄이 세스트리 레반테 호에 올라, 선실 담당 승무원이, 코페이킨이 그레이엄에게 준 리볼버 권총이 들어있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승객용 문으로 들어서고, 그레이엄이 뒤따라 들어가 작은 선실 5호실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 스파이 극은 시작한다. 리볼버 권총? 코페이킨이 주었다고? 소설에 나와 있으니 언젠가는 한 번이라도 쏘겠네? 글쎄. 살다보면 혹시 안 그런 날도 하루쯤 있지 않겠어? 확인은 당신이 하시라. 비록 품절을 넘어 절판 상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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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6-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는데요….

Falstaff 2026-06-18 15:21   좋아요 0 | URL
근데 좀 낡아서 말이지요. 1940년에 쓴 작품이라 아무래도 실감이 덜 납니다.

yamoo 2026-06-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4개 쳐놓고 겁나 재밌을 거 같습니다..ㅎㅎ

Falstaff 2026-06-18 15:2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그냥저냥 읽을 만한데 절판이라서 혹시 다음 달에 올릴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을 선택하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그냥 돌 다 안 읽으시는 걸로 하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