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노트에 약 140편의 오페라 작품에 나오는 사랑의 듀엣에 관한 메모가 있습니다. 이번 세기 초에 쓴 거니까 벌써 20년도 넘은 잡글들이군요. 오늘은 일요일 아침을 맞아, 제가 좋아하는 사랑의 이중창 가운데 다섯 곡을 골라 소개해볼까 합니다.



5. 푸치니, <나비 부인>



푸치니한테는 진짜 오페라스러운 무엇인가가 있다. 가슴이 저릿저릿, 등뼈부터 소름이 쪼옥 끼치는 감칠맛. 사르비아 꽃을 따 쪽쪽 빨아먹을 때의 그러한 미각을 푸치니에게서 느낄 수 있지 아니한가.


일본 소녀 쵸쵸상. 15세 아가씨니까 소녀라고 불러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거다.

그녀가 미국인 핑커톤한테 시집가는 날. 쵸쵸상은 자기가 가진 거의 모두를 포기하고 기꺼이 미세스 핑커톤이 되기로 한다. 근데 가문에 본조라고 하는 이름의 아저씨가 있다. 일본은 잡신의 나라. 그만큼 미신이 창궐하는 동네도 드물다. 때때로 본조를 불교의 승려로 연출하는 오페라도 있는 듯한데, 그거 정말 무식한 짓이다. 하여간 본조 아저씨가 보니, 조카딸 쵸쵸가 자기가 믿는 잡신을 버리고 기독교 나라의 서양놈한테 시집을 가니, 이건 분명히 배교 행위라, 결혼식장에서 쵸쵸상~ 쵸쵸상~ 조카딸을 불러 호통을 치며 깽판을 부린다.

핑서방이 그 경황을 당한다. 이것들, 깝데기 노란 야만스런 놈들이 시방 무슨 짓거리들이야.

999년 동안 임대를 한 집에서, 백인의 아내로 맞아준다면 엎드려 칭송은 못할 망정 깽판을 쳐? 에라 이 무식한 것들아, 당장 내 집에서 꺼지지 못하겠느냐! 입에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뛴다.

집 주인이 가라는데 어떻게 해. 가야지.

근데, 쫓겨나는 사람들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턱이 없다. 본조 뿐만 아니라 친척들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

쵸쵸상, 우릴 버린 년, 네년의 뱀같은 영혼은 끝내 정처없이 떠돌고 말리라!

악담을 하는데, 아.... 오페라에서 악담과 저주는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다는 거. 이거 이제는 다들 아시는 바, 비극을 예언했구나.


그리하여 쵸쵸상 친구들과 친척들이 몽땅 무대에서 쫓겨나가자 핑서방과 쵸쵸상만 무대에 남아, 정말 달착지근하게 노래하는 이중창.

으아.... 난 <나비 부인> 가운데 이 장면이 제일 좋다.

좋아?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지.

이제 바야흐로 시작하는 첫날 밤의 행사.

둘은 더할 수 없이 감미로운 세속의 사랑노래를 하며 신방으로 드는데, 아이구... 짠한 것.

열 다섯 살의 어린 동양 애가, 털복숭이 건장한 서양인한테, 아이구.... 을매나 아팠을꼬...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3번은 발췌반 말고 전곡반으로...






4. 베르디, <오텔로>


사랑.... 어렵다.

그게 두 명이 하는 게임인데다가, 남자는 여자를 죽어도 모르고, 여자 역시 남자는 까무라쳐도 알지를 못한다. 게다가 속 마음이란 것이 곱창 뒤집어 헹구듯 홀딱 까놓고 보여줄 수 없는 거라서 복장 터지는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 여기 까지는 보통의 선남선녀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당연지사이자 사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숙명인데, 둘 중 하나가 또한 치유할 수 없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젠 정말 뒤집어지는 일만 남았다.


한 쪽이 심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쌍.... 물론 그 컴플렉스를 극복해서 잘 살고 있는 많은 커플을 제외한 나머지 지극히 일부의 경우엔....

이해는 신뢰를 낳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을 낳고, 사랑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눈물을 낳고, 눈물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파멸을 낳으니, (무슨 성경 구절 같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사랑의 잘못된 진화는 질투와 눈물과 파멸?


그걸 셰익스피어는 <오셀로>에서 진짜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사랑의 편지가 잘못 배달된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가 자신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그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의식의 혼돈을.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지독한 중독 증세를 보여준다. 사랑 자체가 사실은 중독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그 중독 증세로 인해 오해의 골은 깊어가고, 사랑 또한 유클리트 물리학이 적용되는지라, 뉴톤의 제 3법칙에 따라 오해가 깊어질수록 반작용으로 사랑 또한 깊어지니 이 아니 아이러니일소냐.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일 수밖에 없는 건, 일찌기 최무룡과 김지미의 말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불멸의 잠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니,죽음 만큼 확실하게 헤어지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오셀로>에서 배우는 교훈은?

1. 편지 심부름은 똘똘한 놈한테 시키자.

2. 손수건 함부로 버리거나 내돌리지 말자.

3.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 얘기할 때 눈치 보자.

4.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는 죽어도 하지 말자.

5. 열 받을수록 한 번 더 솔직히 얘기해보자.... 뭐 이런 건가?


어쨌거나, 베르디의 <오텔로> 가운데 1막 마지막 장면을 올리면 좋은데, 그건 그동안 너무 많이 붙인 거라 식상해서, 오늘은 로시니의 <오텔로> 마지막 씬, 바야흐로 데스데모나 혼자 자는 방에 오텔로가 몰래 들어와, 와따 그 년, 죽이려고 보니까 뒤집어지게 이쁘기도 하네... 아리아 한 방 때린 다음, 데스데모나가 잠에서 깨 죽을 때 까지의 이중창, 그야말로 목숨 건 사랑의 장면이다.

1번 토스카니니, 2번 카라얀 판은 평생 듣는 인생반. 3번은 젊은 시절 황금의 델 모나코가 어땠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만든 판.





3. 모차르트, <돈 지오반니>



<돈 지오반니>의 사랑스런 이중창이다. 너무 사랑스러워 후세 폴란드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도 이 주제를 사용하여 초기에 관현악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쇼팽의 경우엔, 작곡가 신출내기로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뒷소문이 횡행하기도 하지만.
바로 돈 지오반니와 촌년 체를리나의 이중창 "내 손을 잡아요."

입술과 혓바닥에 참기름을 좌악 바른 돈 지오반니. 결혼식 예비 잔치에서 눈에 확 들어온 신부 체를리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자빠뜨려 보려고 꿀꺼덕, 침을 삼킨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휘황찬란한 성을 가리키며, 저게 내 집이여. 나하고 살지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넌 저 멋있는 성의 안주인이 되는 거야. 평생 호강하면서 사는 건 두 번 얘기하면 잔소리지.
무지랭이 체를리나가 보기에도 이거 잘 하면 팔자가 확 필 찬스다. 근데 신랑으로 예비된 마제토 보기가 조금 거시기하고, 귀족 놈들이 자기 같은 농민 계급의 아가씨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겨 딱 한 번 맛을 보신 다음에 나 몰라라 하고 뻥 차버려, 시집도 안 간 아가씨 배가 남산 처럼 부풀어 오른 것을 여러번 본 바라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참에 팔자를 한 번 고쳐봐? 더군다나 이렇게 잘 생기고 매너도 죽여주는 귀족 아저씨가 결혼을 하자니 이거 참....
갈팡질팡. 그러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지오반니 나리의 달콤한 속삭임이라니. 으이그....





2. 핸델, <롱고바르디의 왕비 로델린다>


예전 롬바르디아 왕국에는 참으로 한심한 남자, 베르타리도가 왕을 먹고 있었다. 아무리 한심하더라도 역시 오페라의 주인공답게 재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여자 고르는 솜씨. 베르타리도는 롬바르디아 전 국토를 뒤져 자기 영토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숙한 여자를 뽑더니, 다른 나라의 왕자들하고는 달리 온갖 정성을 바쳐 소위 연애를 했다. 왕자가 연애를 해? 당시엔 필요없는 절차였다. 하지만 여자 고르는 재주 딱 하나밖에 없는 베르타리도는 자기 전공과목을 십분 살려 석삼년 동안 그 처녀, 로델린다한테 공을 들였다.

왜냐하면, 로델린다가 당대가 요구했던 여인의 덕목들을 정말로 잘 지킬 수 있는여자인지 관찰하기도 하고, 한 눈에 반했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심성이 자기한테 찰떡처럼 들어맞아 소위 성격차이로 인한 불화가 생기지 않을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진 다음, 이 여자 로델린다야말로 일국의 국모로서도 손색이 없고, 한 남자의 지어미로도 까탈을 잡을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었던 거다. 그러니 전공이 여자 고르기였다는 건 베르타리도가 사실은 무척 소심한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기도 하는 것.


베르타리도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마누라 고르기를 무사히 마친 다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자기 전공과목이 세상을 무사히 살다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데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냥 태평세월이겠거니, 맨날 하는 일이라곤 예쁜 마누라 궁둥이만 슬슬 쓰다듬는 것 뿐이었으니 나라 꼬라지가 잘 될 턱이 없었다. 설사 태평성대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언제나 긴장하게 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황룡이 쇠하는 기운이 뻗친다는 철칙을 무시한 군주의 죄를 물을 수밖에 없으리.


근데 반역을 일으킨 그리모알도 백작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 처음부터 그는 제대로 된 반역도 되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리모알도가 왜 반역을 일으켰느냐 하면, 억눌리고 핍박받고 무거운 세금을 짊어진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능하지만 그렇다고 나라에 망조가 들 만큼은 망가지지 않은 롬바르디아의 재건을 위해 힘줄을 돋워 자신 한 몸을 바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나라가 호시타탐 롬바르디아를 넘보고 있어 이대로 있다가는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 총각 때부터 늘상 군침을 흘리던 로델린다의 속고쟁이를 어떻게 한 번 벗겨볼 수 있을까 하는 정념 하나 때문이었다. 원래 꿩 대신 닭이라고 로델린다가 왕한테 시집을 가버리자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모 하나는 빠지지 않는 에두이제로 만족하고 맘잡아 살아보려 했던 그리모알도. 이제 꼭지가 돌아 베르타리도건 에두이제건 간에 모두 제거해버리고 그저 애 하나 딸린 로델린다 만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켜버렸던 거다.

반역이 어떻게 됐느냐고?

반역의 마지막 삼각지 전투에서 최정예인 친위대를 전멸시켰는데 시체들 틈에 찬란한 갑옷을 입은 베르타리도 왕도 누워 있었다 전한다. “전한다”는 무슨 뜻인가. 베르타리도를 죽여 그 시체를 가져온 병사에게 후한 상급을 내리겠다는 모사 그리발도의 명령을 좇다보니 이미 죽은 베르타리도 시체 주변의 반역군들이 너도 나도 베르타리도의 시신을 차지하기 위해 난도질을 쳐, 왕의 갑옷은 확실하지만 갑옷을 입었던 것이 과연 베르타리도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여간 왕의 갑옷이 시체더미에서 발견되었으니 국상은 치뤄야 하는 법. 로델린다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의 갑옷과 살점 몇 개를 수습해 왕릉도 아니고, 예전에 롬바르디아를 침략했다가 죽은 훈족의 왕 무덤 옆에다가 조그만 봉분을 세우고 망해버린 왕조 앞에서 스스로 혓바닥을 콱 깨물어 죽어버리려 했다가… 참았다.

이 상황에서 오페라는 시작한다.

근데 사실은 베르타리도가 죽지 않았다. 충성스런 신하가 왕의 옷을 입고 대신 죽어준 것. 그리하여 궁궐 근처 자기 묘지 부근에 등장한 베르타리도는 마침 산소를 찾은 마누라 로델린다와 상봉을 하는데, 왕이란 것이 그저 아내가 정절을 지켰는지 그것에만 관심이 있다. 나라야 말아 먹었건 말건.


알란 커티스 아니었으면 핸델의 오페라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1. 베를리오즈, <트로이 사람들>


세상에나... 이런 슬픔이 있을까.
이별을 앞에 두고, 거역할 수 없는 이별의 명령을 받고도 인간의 눈엔 사랑의 화염이 활활 타올랐으니, 애초부터 이들의 사랑은 하염없는 비탄의 불씨에서 비롯했다. 디돈과 에네.

혹은 길고 긴 절망의 항해에 지친 에네. 디돈을 처음부터 한 시절의 놀이로 생각하고 벌인 엽색?
아, 이런 속된 생각은 말자. 만일 그러했다면 수십 세대가 흐른 다음 어느 작곡가가 있어서 이렇도록 아름다운 이중창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디돈.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트로이에서 온 불멸의 영웅 에네에게 기대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어느덧 사랑으로 번지고, 에네, 새로운 땅으로의 항해 가운데 그녀를 만나 디돈의 탄식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사랑이 될 줄이야.
아직 그들은 고통을 짐작만 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아픔이 될 것인지 모른 채.
이들의 사랑은, 이미 중년의 연배가 되어버렸으나 아직도 가슴 속에선 사춘기 시절의 애뜻함이 온전하여 이미 이 아름다운 밤의 희열 속에서조차 슬픔이 뚝뚝 묻어 떨어지니, 이별의 순간이 온들 어찌 둘의 사랑마저 식겠는가.
그러나 식지 않은 사랑이 오히려 더 쓰라린 법. 아름다움 속에는 슬픔이 들어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이들의 이중창은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리하여 더욱 하염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콜린 데이비스 음반 강추. 굳이 비교하자면... 비교는 뭐하러 하나? 그냥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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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6-14 0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절하고 로맨틱한 이중창! 폴스타프님과 잘 어울려요. ㅎㅎ 앵콜 무대(?)도 기대할게요! 브라비!

Falstaff 2026-06-14 06:1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듣기 괜찮았습니까? 아휴, 좀 그러셨어야 하는데요. ^^;;

페넬로페 2026-06-14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 뿐만 아니라 오페라까지
이리 잘 아시다니요👍👍👍
1,2,4번은 잘 모르는 곡이예요
한 곡씩 들어보겠습니다.
저도 앵콜 무대 기대하고 있어요!

Falstaff 2026-06-14 15:12   좋아요 1 | URL
에휴, 뭘요. 문학도, 음악도 둘 다 (이런 말이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후루꾸라는 말입죠. 그저 평생 아마추어, 기껏해야 딜레탕트 인생인 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