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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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첫날 업로드할 독후감. 신중하게 고른 책은 아니고 모디아니와 테드 창 중에서 연말과 연초에 어울릴 작품을 고른 것이다. 읽고 난 다음에 순서를 정하지 않았다. 그저 모디아니의 작품이 새해 아침에 읽을 만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해서 모디아니를 먼저 읽었을 뿐. 좋은 선택이었다.

  소위 “양력 설”이라도 떡국 한 그릇씩 배불리 하셨기 바란다. 한 살 더 자시건 말건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선택하시고. 나는 꾸역꾸역 한 살 더 먹기로 했다.


  테드 창. 나는 ‘테드 창’히면 영화 <극한직업>에서 오정세가 분장한 주둥이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불쌍한 2번 악당이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에야 중국 혈통의 미국 SF 작가. 이름이야 많이 들어봤는데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읽기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거의 비밀댓글로 말씀을 주시는 서재 친구께서 테드 창을 권하시기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가 개가실에서 보니 문제가 있었다. 분량이 녹록하지 않은 건 나 한테 별로 문제가 되지 않건만,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손때가 묻었는지 하나같이 책이 너덜너덜해서 도무지 지문을 보태기 싫더라는 점.

  흠. 손때가 이리 많이 묻은 걸 보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열혈독자를 지닌 작가군.

  그렇게 날만 갔다.

  하루는 다른 책 검색하다가, 이웃 도서관 목록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책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반짝 떠오른 생각. 이웃 도서관은 주변에 거주단지가 별로 없어서 책 상태가 좋지 않을까? 한 번 빌려보지 뭐, 싶어서 즉각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해 받아 읽었다. 빌린 김에 함께 빌린 책이 모디아노와 내일 업로드 할 이대흠의 시집.


  테드 창, 강봉남姜峯楠 씨는 1967년 뉴욕에서 스토니 브룩 대학의 기계공학 교수인 아버지와 사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당시 대륙에서 타이완 섬으로 간 중국인, 소위 ‘본토인’ 출신인 강씨 집안의 일원이다.

  공학 교수 아버지한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강봉남, 테드 창은 물리학을 공부하려 했다가 아이비리그 가운데 한 곳인 브라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이랄까 과학을 선택해 졸업했다. 동아시아 출신 학생답게 공부도 제법 했을 거 같다. 대학 다닐 때부터 SF 소설에 관심을 두고 습작을 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첫번째 작품이기도 한 <바빌론의 탑>으로 네뷸라 상Nebula Award를 받으면서 SF 소설의 기린아로 떠올랐다고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다. 네뷸라 상은 미국에서 출판한 최고의 SF 및 판타지 작품에게 수여하는 높은 권위의 문학상이라고.

  이후 써서 출판하는 책 마다 뉴욕과 서울의 종이값이 천정을 뚫게 했던 모양이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생각과 달리 전부 중∙단편이다. 그것도 몰랐다. 도서관에 있는 이이의 책들마다 만만치 않은 두께를 가졌던데 그게 모두 독자들 손때가 묻어 불은 건가? 그것 참.


  중단편 여덟 편이 실려 있는 작품집. 이 가운데 <인류 과학의 진화>는 본문이 겨우 네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휙 읽어버리면 될 손바닥 소설 같지? 천만의 말씀. 나도 그렇거니 하고 읽었다가 혼났다. 이 작품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분량의 단편소설은 2000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해 로커스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초인간적인 지성을 갖고 있는 ‘메타인류’의 탄생.  이후에도 인류 문화가 미래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여부가 관심이다. 컴퓨터와 연결해 탄생한 초지성은 디지털 신경 전이로 현상을 분석해 전달, 보관 기타 등등의 작업을 할 터인데, 문학 특히 시의 정서와 음악, 미술, 공연 등 감성의 호소는 그런 상황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의 지면을 차지했던 작품인지라 결코 쉽지 않다. 비록 네 페이지 분량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렇게 적은 분량에 세계 곳곳에서 읽을 과학적 재능들을 만족시킬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있으나 마나 한 일체의 서술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바빌론의 탑>을 읽으며, 이게 나의 첫 테드 창이었는데, 눈이 팽, 돌아갔다. 이랬어? 이런 작가였나? 바빌론의 탑이면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벨탑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든 거대한 탑. 하느님 생각하시기를, 저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나하고 맞먹으러 드네? 그리하여 한 날을 잡아 당시까지 모든 인류들이, 사실은 모든 유대/무슬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를 전부 바꾸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자 곧바로 바벨탑 건설이 중단된 건 당연하고 얼마 있지 않아 와장창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벨탑 신화. 원래 신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일단 진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따 인간이라는 종種species를 만들어 놓고 그 다음부터 죽어라 고생시키고, 구박하고, 핍박하고, 질투하고, 서로 싸움 붙이는 등 하여간 못살게 구는 존재.

  그런데 테드 창의 바벨탑을 그렇지 않았다.

  만일 그 탑을 수메르의 평야에 눕혀 놓는다면, 한 끝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 가려면 족히 이틀이 걸린단다. 현대인들의 경우 하루에 한 30km 걸어갈 수 있으려나? 40km? 옛날에 걸어서 문경새재 넘어 한양에 과거 보러 갈 당시에 하루 거리를 백리 쳤으니까 40km라고 하자. 그러면 이틀이라 했으니 꼬박 80km. 그 거리를 똑바로 세우면 바벨탑의 높이가 나온다. 8만 미터. 에베레스트 산을 아홉 개 쌓은 높이다. 애초 사람이 살 수 없는 고도. 물론 픽션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뭐. 평지로 생각하고 걸으면 이틀, 그걸 수직으로 세워서 걸어 올라가려면? 한달 반. 근데 그냥 올라가나? 탑을 더 높이 올리기 위하여 목재와 벽돌을 구울 흙을 수레에 싣고 올라야 하니 넉 달이 걸린단다.

  탑이 하도 높아서 저 8만 미터 상공에서 일하던 벽돌공이 떨어져 죽은 이만 해도 한두 명이 아니겠다. 사람들은 이골이 나 그저 어떤 놈이 떨어져 죽어도 그런가보다, 산재보험 나올 터이니 처자식 먹고 사는 데는 문제없겠지, 이렇게 지나가는데, 벽돌 한 장이 떨어지면 눈물 콧물 바람을 했단다. 떨어진 벽돌을 만드는 흙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또다시 넉 달을 사람이 끌고 와야 하니까. 이게 히브리 전설에 나오는 모양이다. 책 뒤편에 “창작 노트”라고 태드 창, 강봉남 씨가 직접 써서 말했다.

  여기까지는 탑을 꼭대기까지 짓는 일. 하여간 그렇게 해서 탑이 하늘과 맞닿았다고 치자.


  인간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니, 있으라고 하는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마치 화강암인 듯한 돌 천장이 꽉 막고 있는 거다. 인간은 긴장한다. 일찍이 저 노아의 시절을 겪지 않았느냐는 말이지. 당시 폭포 같은 비가 무려 40일간 “하늘에서 쏟아져” 인류의 거의 전부를, 인류 좋아하네, 유대인의 거의 전부를 멸망케 하지 않았느냐는 기억 또는 이야기. 이제 흙으로 빚은 인간이 하늘에 도달했건만, 하늘의 입구를 돌로 막은 건 하느님이 만나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족장의 꿈에라도 나와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나는 너희들을 만날 의향이 없도다.”라고 알려주든지 말이야.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고 이번에도 노아 시절처럼 꽈광 멸망의 길을 걷게 하고 나중에 “그때 너희가 오만했느니라.” 한 마디 하면 인간은 너무 억울한 거다. 혹시 이 돌 천장을 깨고 하늘에 닿으면 뚫린 구멍을 통해 또다시 거대한 물더미가 쏟아져 제2의 홍수를 만나는 것 아닐까? 인간의 고뇌는 깊어간다.

  그러나 여기서 말 수는 없는 법. 바빌론 사람들은 지금의 이란 땅에 있던 도시왕국 엘람에서 태어난 석공 힐라룸을 초빙한다. 동시에 석공 기술에 관한 한 피라미드 건조를 통해 세상 어디보다 탁월한 노하우를 지닌 이집트 기술자도 부른다. 그들 모두 바빌론의 탑 꼭대기에 올라 불을 피우고, 별의 별 짓을 해서 드디어 하늘에 이르는 돌의 터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니, 에그머니, 아니나 다를까, 물, 불이 없는 석굴의 암흑 속에서 온통 물이 쏟아지기 시작해, 주인공 힐라룸은 물 속에서 급류에 휘말려 부상도 당하고 꿀꺽꿀꺽 배고플 수 없을 정도로 물도 마시고 어디엔가 도착한다. 이곳이 어디일까? 그 고생을 다 해서 드디어 하느님 전에 끓을 수 있었을까?

  안 가르져드린다.

  인생은 쉼없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맴을 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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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6-01-0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봉남 씨라고 해서 한궄 사람인 줄 알았더니 중국계였군요. 요시절에도 촌시런 이름 많았죠. 요즘엔 이름도 세련되게 잘 쓰더만 그래도 아주 드물게 고전스런 이름을 쓰기도 하더군요. 이 책 저도 SF 자신없어 멀리 보기만했는데 저도 언젠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6-01-01 13:03   좋아요 1 | URL
중국인들 이름이라서 촌시러운지 아닌지 잘 모르겠구먼요. ㅋㅋㅋ
작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작가 왕웨이롄....의 웨이롄은 ˝윌리엄˝이라더군요. 타이완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쓰는 건 뭐 그렇다 쳐도 중국인 이름이 윌리엄이라... 인구가 많으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