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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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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책 가운데 안 읽은 거 없나 보다가 아이들 살던 방에 가봤더니 작은 아이방에 노통의 책이 열댓 권 꽂혀 있다. 맞아, 얘 군대 가기 전이니까 한 십여 년 전에 노통 책을 많이 모았어. 읽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는 노통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가운데 가장 얇은 책 한 권을 골라 후딱 읽었을 거 같지? 아니다. 역시 나하고 맞지 않아 본문이 80페이지에서 끝나는 진짜 얇은 책임에도 이틀 걸렸다.
11년 전에 쓴 <적의 화장법> 독후감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내가 읽은 두 권의 노통, <적의 화장법>과 한 22년 전쯤에 읽은 <두려움과 떨림>이 지금은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 <적의 화장법>이 “거의 두 명의 화자가 엮어가는 대화로 되어”있단다. 이어서 “차라리 나 같으면 희곡을 썼겠지만 그건 필자 마음대로”라고 말함으로써, 사실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걸 증명했다. 겁나 웃기네.
<불쏘시개>는 아멜리 노통이 이 책을 발표한 1994년까지 쓴 유일한 “희곡”이란다. 내가 희곡은 좀 읽어봤잖아? 만일 <불쏘시개>를 정말로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면,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희곡 스타일을 딴 소설이라 하는 편이 더 좋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뜻. 술 탄 물, 또는 물 탄 술.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람이 한 모금 마신 물 탄 커피.
등장인물은 50대 남자 교수와 서른 살 먹은 그의 조교 다니엘, 그리고 마지막 학기만 마치면 졸업하는 20대 여학생 마리나.
다니엘은 조교로 있으면서 4학년 여학생들하고 만 연애한다. 그러면 1년 후에는 다른 도시의 직장으로 떠날 것이라 깔끔하게 이별할 수 있다. 이번 순서가 마리나인데 하필이면 전쟁이 터졌다. 진짜 있었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고 그렇게 작품의 환경을 설정했다. 게다가 겨울. 하필이면 아주 혹독한 추위가 몰아 닥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소는 어마어마하게 큰 서가가 있는 교수의 방. 서가 말고는 거대한 무쇠 난로와 나무의자 두 개가 있을 뿐이다. 나무의자여야 한다. 언젠가는 거대한 무쇠난로 안으로 던져져야 하니까. 무지하게 추운 날씨임에도 무쇠난로는 아무것도 태우고 있지 않다. 전시라서 장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교수는 두꺼운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무릎 위에 서류 뭉치를 올려놓은 채 뭔가를 쓰고 있다. 직업 또는 직업병이라서.
다니엘이 들어온다. 여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전쟁중이라도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벽에 연결된 보일러 관의 열기에 등을 대고 있으면 뜨듯하니 그렇게 좋아서. 교수는 책상까지 벌써 두드려 패 장작으로 써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책뿐. 맨바닥에 앉으면 더 추울 것이라 의자 두 개만 남겨 놓은 처지.
이제 책을 불태우는 일만 남았다. 많고 많은 책을 결국 다 태우게 되겠지만, 무수한 노작 가운데 태워 버려도 될 만한 책을 먼저 태우는 것이 마땅한 일. 책장에서 딱 한 권의 소위 “무인도 책”을 고르는 일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일을 교수와, 다니엘과, 조금 후에 도착할 4학년 여학생 마리나가 해야 한다. 그러니 적지 않은 날이 필요하다. 곧 세 명이 방 두개, 침대 두개인 이 집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다니엘과 마리나가 함께 같은 침대를 공유하기로 한다.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둘이 자면 체온을 유지하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명색이 교수, 조교, 학생으로 되어 있고, 책들은 이들이 가르치고, 연구하고, 배운 책들이라서 세 명이 책과 내용에 관한 토론과 다툼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가 당연히 다니엘-마리나 커플이 아니라 50대 남자인 교수와 20대 여학생 마리나가 관계를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묘한 암시도 등장한다. 다니엘이 열폭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럼에도 이야기는 사랑 또는 사랑의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끝까지 가지고 있는지, 대화로 치고 받는 데 초점을 맞춘다. 픽션이니까 서양것들이 워낙 야만스러워 장유유서라는 공맹의 도를 모르는 건 그렇다 쳐도, 남의 집에 들어와 얹혀 사는 것들이 집주인한테 바락바락 기어오르기도 한다. 아니, 드러우면 지들이 나가면 될 거 아냐. 나가지 못하겠으면 국으로 죽은 척하고 살든지.
노통이 하고 싶은 말은, 책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하는 것. 온기를 얻기 위해 책을 태우는 행위. 즉 마지막에 사람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장과 철학과 이야기로 인류를 덥혀주는 것이 책이라는 말이겠지.
그래서 전쟁 중이라 길거리에 나가면 점령군에 의하여 무차별 학살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라도 배고파 죽겠다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춥다는 말만 한다. 애초 책을 태우는 행위로 만 가게 디자인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 마리나가 과하게 의존적이다. 마리나가 교수한테 말한다.
“(마리나가 추워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요. 알고 있다면 추운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다면, 사람들이 이미 저를 따뜻하게 해주러 왔어야 해요. 만일 선생님이 제가 어떻게 참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했다면, 갖고 계신 책을 몽땅 당장에 불태웠을 거라고요. 선생님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죠. 누구든 알리가 없죠. 내가 얼마나 고통받는지 안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p.41~p,42)
내가 여성이라면 기분 나빴을 거 같은데, 그러지 않아 뭐라 말하기 어렵다. 하여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마리나는 자기가 나서서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고 누군가 와서 자신을 돕기를 바라는 반면, 남자인 다니엘은 도서관 벽을 통과하는 보일러 관이라도 찾아 나선다. 뒤로 가면 한술 더 뜬다.
“나는 젊고 예뻐. 내가 늙고 추하다면 나를 따뜻하게 할 어떤 방법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나와 마주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은 내 생존 조건의 하나가 된 거야.” (p.75~p.76)
작품을 쓴 시점이 1994년. 당시 노통 보다 한 세대 정도 과거의 작품이라면 그 당시 사람들의 여성관이 이랬다, 할 수 있겠지만. 토론하자는 거 아니다. 뭐 그렇다는 거다.
아멜리 노통을 또 읽는다면, 아마도 무지하게 심심해서일 거 같다. 그러나 세상 일 모르는 거라서 꼭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한 20년 전에 매스컴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에서 화르륵 인기를 얻었다가, 한 순간의 별들이 늘 그렇듯이 이젠 스르륵 잊힌 작가. 물론 내가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오직 내 생각이란 걸 전제로 이야기하자면, 출판사 열린책들이 다른 건 모르겠고 마케팅은 참 잘해. 한 번 책 찍고, 조금 있다가 개정판, 조금 더 있다가 한정판, 아주 조금 더 있다가 다시 재개정판. 근데 초판에 맞춤법 틀린 건, 비문非文까지도 끝까지, 개정판, 한정판, 다시 재개정판에도 여전히 맞춤법 틀리고 비문인 거는 뭐야? 뭐 그렇다는 거다. 시비하고 싶지 않다. 이이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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