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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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리 속에 예소연은 청소년 로맨스와 SF 작가로 있었다. 그냥 어느 매체에서 한 번 읽은 근거 없는 정보였다. 나는 문학상에 별 관심도 없어서 이이가 올해 데뷔 4년 만에, 가장 적은 나이로 이상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도 이 책 <소란한 속삭임>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았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나라 소설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꾸준히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취향상 잠복한 문학적 파르티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지. 그저께 예소연의 <소란한 속삭임>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어제 빌려 오늘 읽었다.


  속삭임. 나는 속삭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야기를 속삭이면 듣는 사람이 말을 신중하고 호소력 있게 듣는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기도 하고, 귓속말 또는 속삭이거나, 그냥 보통의 성량으로 평범하게 말하거나, 아니면 광장에 서서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웅변을 하거나 어차피 이야기를 들을, 또는 전해 들을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게 될 것이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관심 없어서 잊을 사람은 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귓속말로 “너만 알고 있어.” 할 때 이미 세상이 다 알게 될 것임을 각오해야 하는 법이더라. 그래서 속삭여야 하는 말이 있으면, 나는 아예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끝내 꺼내지 못했던 말들.

  속삭임은 내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 단어이다. 시작은 엉뚱하게 유신시대까지 소환한다. 국가 원수와 정부 시책을 비난하는 말만 해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아가 정보과 취조실에서 반죽음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징역을 살리던 시절. 그 드런 꼴이 보기 싫어 숱한 사람들은 서둘러 서류를 만들어 L.A로 이민을 감행, 음식점 설거지 알바에서 시작해 택시회사 스페어 운전수를 거쳐 세탁소와 편의점을 차려 재미동포 기업가라는 명함을 박고 다녔다. 그래도 나라를 뜨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특히 자기 자식새끼들이 듣지 못하도록 유신정부를 비난하는 말을 자기들 어렸을 시절엔 모국어인 줄 알았던 일본말로 소곤소곤 속삭였다. 급한 김에 나온 우리말이었다면 즉각 아이들한테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아라, 잘못하면 집안 거덜난다고 마치 머리통에 조각칼로 새겨 넣듯 한 번 파고, 두 번 파고, n번 다짐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시절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 나는 속삭임 또는 귓속말에 관한 감정이 아직도 좋지 않다. 남들 알면 크으으으으은 일 난다, 알았니? 알았어? 알겠냐고 이 새끼야!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속삭임이 치유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예소연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비밀이 아니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속삭일 때 듣는 사람이 더욱 집중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사소한 부끄러움을 차츰차츰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러다가 진짜 비밀, 다른 사람한테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말하는 사람 본인에게는 그동안 입 밖에 절대 내지 못하거나 않고 살아왔던 내밀한 사실을 토해낼 지경에 다다르는데, 이 순간, 화자는 해방된다.

  아하, 그렇구나.

  예소연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찾았을까? <소란한 속삭임>의 등장인물들처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만드는 일에 특별한 곤란을 느끼는 타입이었을까? 자신만 알고 있는 성격적 장애가 있다고 여기는 타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는 게 아니고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말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그렇게 등장인물들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긴. 등장인물1 모아의 말대로 요즘 세상에 정상인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만.

  등장인물1, 모아는 소심하다. 낭비 또는 소비벽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엄마한테 이혼당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짱박혀 산다. 자취를 감추기 전에 모아가 갑상선암에 걸려 진단비 명목으로 받은 천만원까지 들고 튀었다. 모아는 남의 일에 간섭 않고, 자기 일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등장인물2, 시내는 강박이 있는 거 같다. 시끄러운 걸 참지 못하는 예민한 성격이다. 조금 나 같다. 사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여전히 아파트 위층에서 미어캣이 벌레 잡아먹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 같다. 시내는 그래서 작은 클럽을 만든다. 속삭임, 속삭임 클럽. 이야기를 속삭이는 사람들.

  등장인물3, 수자는 명동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짖는 50대 여사님. 강남은 아니지만 특별한 직업 없이 월세를 받아 살고 있으니 중산층 수준은 되는데, 세상이 하도 어질어질해서 집구석에 앉아 댓글만 쓰면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 우매한 대중에게 외치기 위하여 황야, 명동에 나와 있다. 개중 제일 ‘정상적’과 비슷하고 오지랖이 무척이나 넓은 여사님이다.

  등장인물4, 두리. 하필이면 2번 시내의 바로 위집에서 사는 바람에 저장장애가 있는 히키코모리이면서도 소음을 낸다는 항의를 계속해서 받다가 빡이 쳐 따지려 내려왔다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모아와 시내, 수자와, 즉 사람과 대화하는 기회를 얻는다. 등장인물 1, 2, 3 그리고 자신의 해방을 맞게 하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그게 어떤 식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재미있다.


  네 명의 등장인물, 모아, 시내, 수자 그리고 두리. 탁 보니까 이 사람들한테 공통점이 있지? 이들을 부를 때 ‘숙’아, 대신, ‘자’야, 라고 해야 한다. 즉 이름에 받침자가 한 명도, 하나도 없다. 예소연은 의도적으로 인물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까? 실없는 농담으로 해본 이야기다, 신경 끄시라. 근데 혹시 알아, 정말 무슨 뜻이 있을 지도? 아휴, 나도 내가 지겹다. 살면서 궁금한 게 뭐 이렇게 많아, 살기 피곤하게. 그지? 나도 이 클럽에 들어야 하나?

  이 사람들 전부 스스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나 능률능률 흘러가는 사회시스템 때문에 피곤한 삶을 사는, 또는 살아야 하는, 두리 같은 경우엔 억지로, 힘들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나처럼 속삭이지 않은 채 가슴 속에 내밀한, 숨기고 싶은 것을 가지고 살며, 그게 무엇인지, 왜 생겼는지 차마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드디어 하느님 같은 작가가 등장해 속삭여, 속삭이면 돼, 알려주고, 이들은 속삭임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지난 시절의 한 장면으로부터, 내밀한 비밀로부터 드디어 해방된다. 예소연의 아이디어가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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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11-26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생각했어요.
‘속삭임‘이라는 단어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작가가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더라고요.

Falstaff 2025-11-26 15:28   좋아요 1 | URL
정말 그랬습니다. 아, 속삭임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ㅎㅎ

자목련 2025-11-26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