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안영옥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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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20세기 스페인의 황금기, 소위 27세대의 일원으로 워낙 유명한 극작가, 시인이라 말을 보태면 오히려 누가 될 정도이다. 문외한인 극동 변방의 이교도이자 이방인들이 보기에 이이의 유명세는 오히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를 지지하다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팔랑헤당에 체포당해 재판도 없이 고향 그라나다에서 총살당한 비운의 시인, 극작가인 것이 한 역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프랑코 비슷한 오랜 군사정권의 영향이 컸을 지 모른다. 뭐 아마추어 의견이니 신경쓰지 마시라. 하여간 로르카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그리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언어와 정서 탓이 크겠다. 그리고 시인, 극작가,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냈으니 외국 소설도 잘 안 읽는데 하물며 번역시는 누가 그리 읽겠으며, 희곡은 또 얼마나 읽히겠는지, 생각해보면 로르카가 유명세에 비해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간다. 나도 이전에 읽은 로르카는 이이가 스무 살 때 쓴 기행 에세이 <인상과 풍경>밖에 없다. 그것도 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가 에세이라서, 그라나다, 안달루시아의 환한 빛과 건물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드라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인상과 풍경>과 확연하게 다르다. 분위기 자체가 그렇지 않다. 두 작품 사이에 18년이라는 터울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역시 에세이와 극작품의 간극 때문 아닐까 싶다.


  베르나르다 알바. 60살. 작품을 쓴 시기가 1936년이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노파다.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는 스무살에 베르나르다를 낳아 지금 80.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이렇게 뇌 쪽으로 약간 비정상인 사람들이 특색있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이도 좀 그런 편이다.

  베르나르다는 딸만 다섯. 순서대로 앙구스티아스, 마그달레나, 아멜리아, 마르티리오, 아델라. 첫째 앙구스티아스는 서른아홉 살이며 유일한 전남편의 딸이다. 전남편이 상당한 부자로 죽어서 그의 유산으로 앙구스티아스만 거액의 상속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네 명도 평생 쓸 만큼의 유산을 상속받겠지만 돈이란 것이, 특히 있는 것들이 있을수록 더 지독한 건 아시지?

  그리고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 하녀 라 폰시아. 베르나르다와 같은 나이로 올해 환갑이다. 거의 평생 베르나르다와 함께 지내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서 만사 훤하지만, 냉정한 베르나르다는 폰시아의 충고나 기타 귀띔에 그리 신경쓰지 않고 면박만 준다. 어이, 폰시아. 너는 그냥 시키는 일만 하고 대가로 돈을 받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이런 식.


  막이 올라가면 장례식 날이다. 베르나르다가 두번째로 정식 과부가 된 날. 그리하여 첫째 앙구스티아스만 빼고 전부 검정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앙구스티아스 얘도 염치가 있으면 아무리 자기 아빠가 아니더라도 상복을 입는 것이 예의일 터. 이 문제는 앙구스티아스의 성격을 설명하는 장치 말고는 기능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 좀 그렇고, 이후 딸들 가운데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얼핏, 그리고 앞서 조금 보여주는 장치일 수도 있다.

  무슨 갈등이냐 하면, 이웃하는 귀족 가운데 키 크고, 잘 생기고, 덩치 좋고, 하여튼 사방팔방으로 어디 한 구석 꿀릴 것 같은 외모의 청년 페페 엘 로마노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스물다섯 살 페페는 스물네 살의 마르티리오가 자기하고 맺어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찔러보고 싶은 못 먹는 감이다. 막내 스무 살짜리 아델라는? 정확하게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네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밴 처녀를 살해하려는 일이 벌어지니까 아델라가 자기 배를 쓰다듬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미 페페 엘 로마노와 할 거 다 한 사이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 스페인 사회에 국한해서 그런지, 아니면 유럽 지역, 더 확장해서 전 지구적으로 비슷한 지는 잘 모르겠다. 정식 결혼을 하기 위하여 알바 집안의 다섯 딸 가운데 한 명한테 청혼을 하려는데, 누가 당첨될 것 같으냐 하면, 유력 후보인 넷쩨 딸 마르티리오와 막내딸 아델라를 뺀 나머지 여성들, 하녀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전부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를 꼽는다. 페페보다 무려 열네 살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이렇게 내정 비슷하게 된 상태라서 이제 페페 엘 로마노는 밤 시간에 앙구스티아스의 창문에 등장해 “밤드리노니다가” 간다. 그런데 시간이 문제다. 분명히 앙구스티아스의 창문에서는 밤 1시 반에 이별을 고했는데, 새벽 네 시에 페페가 그제야 알바 저택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속속 등장한다. 누구?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당연히 아델라로 보인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거.

  서양 사람들이 나이 차이 때문에 장유유서 따지는 거 못 보셨지? 자매들 간에도 그렇다. 더구나 씨가 다른 자매들이라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여야 하는 것이, 무대와 작품의 제목이 “베르나르 알바의 집”이라는 딱 갇힌 공간. 이곳은 한 명의 독재자 베르나르다 알바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이이의 앞에서는 어떠한 말대답도, 반항 비슷한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알바 저택을 내전이 한창 진행중인 스페인 정세와 비유해도 괜찮을 거 같기는 하지만, 이제 세월이 몇 십 년 흐른 바에 구태여 그렇게 봐야 하는 이유도 없다. 이런 건 다 감상자의 선택일 바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택 안에서 치매 증상이 있지만 특유의 옳은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는 80 노인 마리아 호세파의 전망도, 베르나르다를 혐오하지만 충실하고 오래된 하녀 폰시아의 조언도 다 필요 없다.

  그리하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안에서 자매들 간의 사랑에 관한 시기, 증오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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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6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투비컨티뉴드가 궁금한데 그럴려면 읽어야겠죠? ㅎㅎ

Falstaff 2025-05-26 16:57   좋아요 1 | URL
아휴.... 도서관 가셔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막 뮤지컬로도 공연하고 뭐 그랬지만 희곡으로 읽는 재미가 덜 할 줄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yamoo 2025-05-2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띠...별5 또 출현인데...그게 로르카네...이거 이거 되게 고민됩니다. 하필 로르카라니...그래도 사야겠죠..별5개라는데..^^;;

Falstaff 2025-05-26 16:58   좋아요 1 | URL
흠. 저는 책임 안 집니다. 하여간 만사 불여튼튼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