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위픽
천희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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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절대로 돈 주고 사서 읽지 않는 시리즈가 위즈덤하우스에서 내고 있는 위픽 시리즈다. 근데 도서관에서 보이면 아무 부담 갖지 않고 빌려 읽는다. 이 책도 단편 하나 달랑 실어놓고 정가 1만3천원, 10퍼센트 할인가 11,700원 받는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별 영양가 없이 길기만 한 ‘작가의 말’까지 포함해서 1백쪽 분량. 손바닥 만한 크기에 글자도 널럴하게 박여 있어 시작하면 순식간에 다 읽어 치운다. 인터넷 쇼핑의 매력 가운데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한 권 주문했다가 열폭하는 거. 이런 독후감 전체 공개로 쓰면 누군가 왕림하셔서, “독자님은 문학을 돈으로만 생각하시네요.”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는 한다. 예전에는 “저는 문학보다 돈이 훨씬 더 좋은데 당신은 아닌가요?” 이렇게 답글을 썼는데, 이제 또 비슷한 댓글이 달리면 “당신도 백수 되어 봐!” 라고 쓸 예정이다.

  천희란은 1984년에 출생해 저 한 시절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문학의 산실이었던 서라벌 예술대학의 맥을 잇는 중앙대학 문예창작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인지, 신인 추천인지로 데뷔한 소설가다. 첫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과 경장편 (나는 이놈의 ‘경장편’이 뭘 말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경장편) <자동 피아노>를 가장 애정하는 거 같다. 소설집은 모르겠고, <자동 피아노>의 독자 서평을 읽어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자동 피아노>의 책소개를 보면 “자기 자신에 갇힌 인물의 끝없이 분열하는 목소리가 죽음을 음악처럼 연주하는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욕망과 충동, 이에 맞서는 삶에 대한 열망을 집요하게 그려낸다.”라고 했다. (알라딘 책 소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 속에 다양한 죽음/자살의 방식이 묘사되어 있고, 죽음/자살에 대한 욕망과 시도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그러면 오늘 읽은 <작가의 말>의 독후감은 대단히 조심해야 할 듯하다. 천희란은 <자동 피아노>에 달린 백자평을 <작가의 말> 속에서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독자서평”에 달린 글 속에서도 인용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확인하느라 무려 58개의 독자가 쓴 서평을 읽어볼 마음은 없다.

  “누군가는 그 책이 ‘작가의 말’과 함께 읽어야 완성된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그 책을 이해했다고 했다.” (p.68)

  읽어보지 않아서 짐작으로 말하자면 이런 의미로 <작가의 말>은 <자동 피아노>의 같은 악장 속 변주 주제거나 카덴차일 텐데 문제는 이걸 연주하는 작가의 상태가 우울과 자살, 죽음의 충동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기 작품의 독자 서평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스스로 고백했으니 독자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확 까발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 책을 읽어가면서, 오랜만에 도서관이 아닌 집에서 읽는 관계로 페이지마다 태그까지 붙여가며 집중을 하다가, 독자서평 운운하자마자 다시 태그 다 뗐다. 함부로 주둥이 털지 말아야지. 미리 자기 습성을 이야기해준 작가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근데 이건 이야기해도 되겠지. <작가의 말> 뒤에 따라붙은 ‘작가의 말’을 왜 그리 길게 쓸까? <자동 피아노>에서도 그랬다는데 글 쓰는 사람이 적어도 책 한 권에서 말할 건 본문에 다 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여기서도 피아노 이야기.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D.960 소나타. 작가 자신, 개인한테는 김선욱의 D.960이 기념할 만할 수 있지만 그 후에 따라붙은 몇 줄의 결말을 쓰자고 그리 많은 분량을 쓰는건 오버 같다. 그렇다고 음악과 연주에 관한 천희란 만의 특색있는 묘사도 없다. 당연하지. 음악이란 것이 원래부터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connotation 예술형식”이니까. 악보와 디테일을 짚어주지 않은 채 지금 들은 음악이 왜 아름다운가를 설명하다 보면 결국 시인 김정환이 쓴 <내 영혼의 음악> 꼴 나는 법이다.

  천희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작가가 좋아하는 피아노 소나타 장르 기준으로, 즉 세상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의 연주시간을 인간의 수명으로 쳐서, 작가가 제일 좋아한다는 D.960의 연주시간 만큼 살다 갔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아니 조금만 아프고 덜 불행하게, 축약 연주 말고 원래 악보 연주 기준으로.

  나는 내가 읽은 천희란의 작품에 대한 내 솔직한 심정을 (작품 속에서이기는 하지만)우울과 죽음과 자살에 천착하는 천희란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다. 별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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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2-03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시리즈 책값 무지 아깝던데요... 사고서 후회했어요. 아무튼 얇은 책은 다 따져보게 돼요.
독자(이자 소비자) 입장에서는 책값 보면서 페이지 따지고 양장인지 아닌지 따지고 특히 읽고 나서 작품이 책값을 하는지 따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도 백수 된 지 수 삼년이라... 책값이 정말 무서워요.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희망도서 신청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사고 후회되는 책이 한둘이 아니예요.
작가 무서워서 평도 못쓰겠네요!

Falstaff 2025-02-03 12:05   좋아요 1 | URL
아휴, 제 집 상수도가 새는 바람에 아랫집 누수가 생겼답니다. 하필이면 책장 바로 아래 파이프에 실금이 나서 책장 하나를 드러내야 했는데요, 아이고.... 이 시리즈뿐 아니라 두 번 읽지 않을 책을, 나이 들면 한 번 더 읽겠다고 구입하는 행위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확실하게 알았답니다.
책.... 마음 속에서 책이지, 삶에서는 그냥 고물 덩어리더라고요. 흑흑흑.... 사서 읽지 마세요. 흑흑흑... 이런 발언하다가 알라딘에서 강퇴 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흑흑...

하이드 2025-02-03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픽 처음 보고 기막혔어요. 도서관에서 계속 빌려 읽다 보니, 사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소설 잘 안 읽었는데, 한국 소설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많은 작가들 알게 되는 마중물 되어주기도 했고요. 위픽의 소설들은 다 일정 기간 위픽 사이트에서 연재 형태로 무료 공개 하고 있지만, 온라인으로 읽는 건 또 잘 안 읽혀서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하고, 예쁘고, 가벼운 책으로 가볍게 읽습니다.

제가 사야지 찜해둔 책들은 구병모 <파쇄>, 현찬양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 현호정 <삼색도>, 그 외 좋았던 책들은 김원영 <우리의 클라이밍>, 최현숙 <창신동 여자들> 입니다.

요새 위픽 말고 트리플 시리즈나 그 외 이렇게 단편이나 중편으로 나오는 경우 많더라고요.
주문할 때 잘 봐야해요. 100쪽이라도 같은 100쪽이 아니에요 ㅎㅎ

Falstaff 2025-02-03 12:15   좋아요 2 | URL
이 시리즈엔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의도야 좋았겠지만 ˝독자의 마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참신한 기획....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출판사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특정 작가에게 단편 한 편을 의뢰하고 그걸 책으로 만들어서 심사가 더 뒤틀렸는 지도 모릅니다. 코를 풀듯, 설사를 하듯 찍 갈겨 쓴 작품도 작가의 이름값 덕택에 한 권으로 만들어져 나왔을 지도 모른다는..... 나왔을 거라는.... 얼토당토 않은 짐작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당연히 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깨갱!) ㅎㅎㅎ 그걸 돈 주고 사서 읽는다? 저는 안 할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