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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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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군대에 복무하고 있던 옌롄커가 1992년에 딱 열흘 걸려 썼다고 하는 작품. 곧바로 원고를 문예지 두 곳에 투고했으나, “훌륭한 작품이지만 발표하기 어렵다.”는 회신을 받고 작가도 잊고 살았다는데, 1993년 하반기에 원고청탁을 받고 이 소설을 찾아 보냈다. 그러니까 정말 잊고 산 건 아니겠지? 이렇게 1994년에 작품은 햇빛을 받았다, 잠깐 동안은. 이 작품이 아직 영국으로부터 반환되지 않은 홍콩에서 상찬을 받자 개방개혁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왼쪽 길만 고수하던 중국 당국자로부터 “적들의 옹호”를 받는다는 이유로 책으로 출간을 금지당한다. 옌롄커의 작품 가운데 처음 금서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 <그해 여름 끝>의 제일 중요한 광고 포인트. “금서”, “금지곡”. 권력으로 하여금 금지 조치를 당했다는 건 틀림없이 소비자로 하여금 상당한 추가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금지를 당했다는 거 하나로 작품 자체가 대단하게 저항문학적이라거나 높은 예술성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겠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만일 “금서”라는 것에 혹해 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금서인지 전혀 모른 상태로, 오직 옌롄커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래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다가 옆 동네 도서관에 상호대차 서비스를 받아 읽었다.
58년 개띠 옌롄커는 1978년에 군대에 자진 입대해 28년 동안 복무했다. 이동안 군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허난대학과 해방군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창작활동도 지속했다. 군 초년병 시절인 1979년 2월 17일 중국과 베트남이 국경에서 전쟁을 벌였다. 당시 중국은 단 1개월, 2월과 3월 사이니까 28일만에 끝난 “자위반격전쟁”에 무려 20만 대군을 쏟아 부었고, 전쟁 때마다 늘 그렇듯 군대 내외에서 참전을 독려하는 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옌롄커 역시 전투 신청서에 서명을 했지만, 전선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이후 무려 28년 동안 군인 신분을 유지했던 옌롄커 입장에서 자위반격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건 작은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그랬나, <그해 여름 끝>의 두 주인공, 허난성 동부의 허허벌판에 위치한 보병연대 3중대 중대장 자오린(趙林)과 3중대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高保新)은 같은 해에 입대해 둘 다 자위반격전쟁에 참가했다가 가오바오신은 다리에 총알 두 방을 관통시켰고, 자오린은 여전히 포탄 파편이 허리에 박혀 있다고 전제했다.
당시 전투 중에 지도원 가오가 속한 1소대에 베트남군의 포탄이 떨어져 소대원 전부가 죽고 딱 한 명 가오만 살아 남았는데, 이때 가오를 향해 휙 날아오던 물체는 베트남군이 쏜 또다른 포탄이 아니라 포탄에 의하여 몸통에서 분리된 소대장의 머리통이었으며, 동시에 같은 소대원의 시신도 무더기로 날아와 가오를 덮쳤었다. 이를 본 지금의 중대장 자오는 순식간에 아드레날린이 대량 분비되어 가오를 살려야겠다는 난데없이 용감한 생각이 들어 빗발 같은 포탄을 무릅쓴 채 가오를 들쳐메고 복귀해 야전병원까지 데려갔다. 병원에서도 그까짓 총알 두 방 관통은 위급한 수준이 아니어서 수술 순위가 저 뒤로 쳐지자 자오는 기발한 방법으로 새치기를 해 기어이 가오가 무사하게 치료받게 만들어주었다.
며칠 후 퇴원해 다시 복귀한 가오는 자오가 있는 중대로 편입해 함께 싸우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영웅적인 활약을 해 무공훈장을 탈 기회가 왔다. 가오는 자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기 대신 자오가 훈장을 받을 수 있게 배려했고, 자기는 다시 한번 또 죽자사자 총을 쏴 따로 훈장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가오의 영웅적인 전투는 거의 틀림없이 PTSD의 일종 아니었을까? 참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가오를 향해 날아오는 소대장의 잘린 머리통. 잘린 부위에서 콸콸 쏟아져내리던 피와 뇌수와 기타 체액. 이어서 던져지던 같은 소대원의 시신들. 하여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괜히 전적으로 믿지는 마시고. 이러니 두 사람 관계가 절친인 것은 틀림없겠지?
이후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격지 보병 3중대의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으로 복무하고 있다. “양띠 해 1월초.” 이걸로 작품은 시작하니, 이게 언제야? 1979년? 아니다. 1991년을 봐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1991년 1월 초에 보병 3중대에서 총기고 관리소홀로 신형전자동 소총 한 정을 분실했고, 본적이 정저우(鄭州)인 사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시절이 여름의 끝자락이란다. 이 책이 2012년 ‘글누림’이라는 출판사에서 <여름 해가 지다>라는 제목으로 최초 번역 출간했고, 2021년 &(앤드)에서 다시 중판을 찍었는데, 여전히 1월초가 여름 끝무렵인지, 새롭게 1월이 여름 끝무렵으로 되었는지, 아니면 가끔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숨기지 않는 옌롄커가 초여름의 끝무렵이지만 1월 초라고 썼는지 아마 내 궁금증을 풀어줄 이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잘못 쓸 수도 있지 뭐 이딴 걸 가지고 야단이냐고 하지 마시라. “양띠 해 1월 초”로 작품의 첫 문장을 시작하니 만일 작가가 애초에 이렇게 썼다면 무슨 함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양띠 해 1월 초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병영에서 소총 한 정이 사라졌다면 이건 난리가 나는 거다. 총알도 한 박스 함께 없어졌으면 전쟁이라도 나는 듯하는 거다. 그리하여 지는 해를 감상하며 두 절친이 풀밭에 누워 쉬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아, 아직 사망사고 전이라서 총기 분실로만 두 장교의 복장이 터지는 순간인데, 당장 터진 사고를 무마하기 위하여 두 장교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하기를, 첫째로 현장보존, 둘째로 소문봉쇄, 마지막으로 인물분석에 이은 대화와 소통으로 순탄한 총기 회수였다. 대대장과 연대장한테 즉시 보고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다. 아직 시간이 있고, 토요일이라 상관들은 영외 숙소로 나가 전화보고를 해야 할 텐데, 전화선이 끊어졌으면 보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니……전화선부터 끊고 보자. 일단 이렇게 사고를 은닉하고 중대장과 지도원은 평소에 누구와 관계가 좋지 못했는지 따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여성. 성省내 야채회사 회계 아가씨. 미모와 대졸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부남인 중대장을 연모한다. 중대장은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자기도 싫지는 않건만 절대 엮이지 않으려 하는 관계. 이 아가씨가 총을 훔쳤을 지 몰라 다음날 해가 밝지도 않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아가씨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새벽에 벌어진 자살 사고.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와 환경보호 관련 노동자인 어머니 사이의 공부 잘하는 취사병 청년이 소총의 총구를 가슴에 대고 한 발 발사, 짧고 우울한 생을 지워버렸다. 이젠 사고를 감출 도리가 없었고, 지도원이 전쟁터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을 당시, 자기 훈장을 중대장에게 양보했을 때 중대장을 했던 지금의 연대장은 두 사람을 병영의 작은 방에 일주일 동안 사실상 구금을 한다. 중대장과 지도원, 이 가운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을 분산해 둘 다 불이익을 받을지, 한 명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 군복을 벗고 남은 한 명은 계속 복무를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 어느새 둘 사이의 대화는 없어졌다. 이 전에 벌써 누구의 책임이 엄중한가, 누가 제대하는 것이 덜 불행한가, 둘 사이에 누가 더 은혜를 입었는가에 대하여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으며, 누구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기억하시라,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맺은 막역지교 사이였다.
《그해 여름 끝》은 중편 <그해 여름 끝>과 단편 <류향장劉鄕長>, <한쪽 팔을 잊다>가 실려 있다. <류향장>은 류劉씨 성의 향장이란 의미다. 향鄕의 상위 조직인 현縣에 새로 온 현위원회 비서에게 업무보고를 하러 고물 소형 승합차를 일컫는 빵차를 타고 가던 류 향장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차를 멈춰 세우고 바러우산 중턱의 춘수촌으로 가라 지시한다. 동시에 향장은 보고를 위해 준비한 자료들과 자세한 보고 내용, 수치가 적힌 공책을 전부 찢어 차창 밖으로 날려 보낸다. 딱 이래 버리니까 향장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향 부서기, 부향장, 당위원회 선전위원, 민정위원, 부민위원, 부녀위원 등이 놀랐을 터. 이걸 옌롄커는 “마치 한여름 해가 빨갛게 타고 있는 가운데 큰 눈이 휘날리고 있는 듯한 광경”이라고 썼다. 한여름에 휘날리는 큰 눈이라고. 이러니 저 위에서 내가 양띠 해 1월 초가 여름의 끝자락이라 한 옌롄커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겠나는 거다.
자신, 류향장이 누구냐는 말이지. 일찍이 두메산골 춘수촌을 잘 살게 해서 지금은 번듯한 기와집에 한 집 건너 이층집, 게다가 서구식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마치 그림 같은 유토피아를 만들어 놓은 업적을 이루지 않았느냐는 거다. 그러니 그깟 어린 현위원회 서기한테 늙은 자신이 직접 찾아가 업무보고를 하는 게 가히 치사하고 아니꼽지 아니한가, 라고 주장한다.
좋다, 좋아. 거기까진 매우 좋았지만, 아뿔싸, 류향장이 춘수촌을 잘 살게 한 방법이 작가의 장편소설 <작렬지>에서 주민들이 가래침을 쏟아 뱉아 기도가 막혀 죽은 주칭팡의 외동딸 주잉이 작렬촌의 청춘 남녀들을 도시로 보내 도둑질과 몸을 판 돈으로 고향 마을에 공장을 짓고, 집을 다시 지어 번창하게 만든 이야기하고 딱 맞아 떨어진다. 복붙 그 자체. 아오, 이러면 안 되지. <작렬지>가 나중에 나온 책이리라. 그러면 작가는 서문이나 꼭지글을 붙여 이 장면은 전에 단편소설 <류향장>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안 그런가? 아니라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그러면 말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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