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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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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6세의 줄리언 반스가 쓴 소설. 원 제목은 <엘리자베스 핀치 Elizabeth Finch>. EF라는 사람 이름의 문화사, 문명사 교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핀치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이의 이름을 줄여 줄곧 ‘EF’라고 약칭한다. 20대 말부터 40대 초의 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와 문명’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일반 대학은 아닌 것 같고 대학원인 것도 같고, 대학과정을 갈음하는 사회적 교육기관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EF가 주장하기를 교육의 최고 형태는 ‘협력’이란다. 그러니 수업은 교수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원활한 협력으로 이루어지되, 이러한 협력의 과정이 엄격한 즐거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화자 ‘나’의 이름은 닐. 닐은 첫 수업에 들어와 EF의 교과 소개를 듣고 어쩌면 자기 평생 이번 한 번만큼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하다. 그냥 한 방에 필이 팍 꽂혔다는 뜻이다.
30대의 닐은 애초 글을 쓰거나 학문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배우 수업을 받았다. 처음이란 것이 18세가 되고 처음이란 건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는 건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하여간 배우를 하기 위해 수업을 받았고, 자기 주민등록등본의 배우자 란에 오를 최초의 여자, 조애나를 그곳에서 만났다. 배우수업을 마치고 TV의 작은 배역과 내레이션도 했지만 도무지 생활비도 빠지지 않아 유람선 위에서 2인조 공연도 하고, 그것도 없을 때는 레스토랑의 웨이터도 했는데, 웨이터에서 안내원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배우의 꿈은 영영 접어 버렸다. 이후 시골로 내려가 버섯농사도 짓고, 수경재배로 토마토도 심었을 때 딸 해나가 태어났다. 닐보다 조금 더 재능이 있던 조애나는 배우를 포기하지 못하고 런던에 머물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혼하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워진 닐도 런던으로 올라와 대학원(이라고 치자고 앞에서 합의했으니)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근데 딸 해나는 누가 키웠을까? 조애나가 양육비도 받지 않고 키우기로 했나? 모르겠다. 안 나온다. 이후 혼외자가 하나 더 생기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생활 중에 아이 하나가 더 생기고 또 이혼하는데, 세 아이를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양육비 지급은 착실하게 한 듯하다.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를 결코 공적인 인물로 볼 수도 없고 EF 스스로도 전혀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이면서도. ‘협력’을 최고의 교육방법이라고 주장하는 EF는 그러나 철저하게 독립 연구자이며, 최고수준의 지식을 갖추고도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을, 개인적인 관심만 좇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니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을 수밖에. 부촌인 웨스트 런던에서 살며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여성 무정부주의자들을 연구한 <폭발하는 여자>와 민족주의, 종교, 가정, 가족을 다룬 <우리에게 필요한 신화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출간했으나 지금은 다 절판이다. EF는 기존 상식과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산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인물을 형용사 세 개로 줄여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문장/이야기는 늘 불신해야 합니다.”
형용사 세 개로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아주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내 관점으로 보자면, EF의 주장은 십분 알아듣겠고, 8할 이상 동의하며 지지할 용의도 있지만 늘 함께 하면 상당히 피곤할 거 같다. 어떤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 닐의 패거리는 닐과, 네덜란드인 안나, 선동가 제프, 감정적으로 불안한 린다, 더 많은 것을 찾는 도시계획자 스티비, 이렇게 대강 다섯 명이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 술집에 모여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 말다툼을 하지만 적어도 네 가지에 관해서는 의견을 일치한다.
① 어느 당이든 정권을 잡은 정부는 쓸모없다. ② 신은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③ 삶은 산 자를 위한 것이다. ④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봉투에 담긴 술집 안주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이 네 가지 의견 가운데 교수 EF에 관한 호오는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EF의 강의와 주장을 지지하는 닐과 안나가 있고, 반발하는 제프도 있으며, 아예 관심이 없는 축도 있으니 린다와 스티비.
EF의 어법을 여기서 소개하지 않는 것은, 짧은 글에서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하고, 명상록 같기도 한 말들을 인용하기엔 나의 사고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이른바 모차르트 딜레마.
“삶은 아름답지만 슬픈가, 아니면 슬프지만 아름다운가?”
나는 이게 잘못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인종이다. 아름다움의 집합이 있고, 슬픔의 집합이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면 이 두 집합이 서로 교차하는 부분, 즉 교집합이 생기는 일이 잦아서 이런 딜레마가 생긴 거 같다. “대개 아름다운 건 슬프다.” 부사 ‘대개’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틀린 말이다. 같은 의미로 “가끔 슬픈 건 아름답다.” 상처를 입었거나, 심근경색이 왔거나, 닭튀김집 하다가 월세도 못 내서 쫓겨났는데 이게 뭐가 아름다운가 말이지. 그래서 앞 전제의 역도 부사 ‘가끔’이 빠지면 뒤통수 한 대 얻어 터질 수 있으니 조심해 말해야 한다. ‘가끔’ 보다는 ‘아주 가끔’이 더 좋다.
닐, 어쩌면 작가 줄리언 반스의 도플갱어일 수도 있는 닐은 여기서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사학자, 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의 말을 떠올린다. “나라state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비단 나라라는 거대 집단 뿐만 아니라 개인도 항상, 매일, 작은 행동과 생각, 큰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 자신을 속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종과 문화의 우월성에 관한 신화, 자비로운 군주, 오류가 없는 교황, 정직한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는 건전한 국가, 국민, 개인이 되기 위하여, 역사를 알기는 알아야 하는데, 잘못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각지에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는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문화와 문명과 의식수준, 교양, 측은지심 같은 것이, 짙은 피부에 휩싸이고 옷을 입지도 않고 전기와 내연기관과 화약무기를 모르고 살며 가끔 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의 고기를 먹기도 하는 인류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고 오해하는 것이 편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기 위하여 유럽인들은 쥐뿔도 모를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2부,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가 암으로 사망한 후, EF의 모든 문서와 책의 관리를 위임받은 닐이 배교자 황제인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에 초점을 맞춘다. <로마제국쇠망사> 2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황제가 바로 이 율리아누스인데, 공부도 많이 해서 철학하는 황제로 이름을 높였고, 적어도 95포인트는 주어야 마땅할 전투력과 거의 100에 가까운 지휘력을 지닌 군사 지휘관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다.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죽음의 침상에서 억지로 세례를 받고 숨이 넘어간 콘스탄티누스 1세. 깔끔하게 후계를 정하지 못해 맏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는 자색 망토를 휘날리지 못했고,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차지했다. 당시 황제는 군부에서 자기 군단장이 황제다, 라고 선언하고 창을 거꾸로 쥔 채 지금 황제를 칭하는 자하고 내란을 벌여 이기기만 하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 처음에는 마음이 없던 율리아누스도 부하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콘스탄티우스와 한 판 맞짱을 뜨러 진군하다가, 콘스탄티우스가 병에 걸려 죽고 만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콘스탄티우스가 후계로 율리아누스를 지목하는 바람에 피바람이 불지 않고 평화롭게 황위가 이어졌다.
율리아누스가 보기에 문화도, 문명도 없이 오직 유일신 하나만 믿어 조지는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와 공인을 받자 지독하게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박멸하는 거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숱한 신전을 파괴하는 거였으니 말 다했다. 물론 당시 기독교겠지만 그들에겐 문화와 문명이 필요 없었다. 오직 믿기만 하면 다 알아서 해주겠거니 싶어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도들을 탄압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다만 중용하지 않았을 뿐. 반면에 기독교도들은 자기들한테 명예롭기 그지없는 순교의 기회를 주지 않는 부드러운 탄압을 하는 황제가 더욱 미웠다고 반스는 주장한다. 그리하여 소설을 쓴다.
황제 자리에 오르고 겨우 3년이 지나 율리아누스는 어리석게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한다. 로마사 전부를 대상으로 해도 용맹 황제로 한 손에 꼽을 만하게 용감하다. 그리하여 사막에서 싸우다 페르시아 잡병이 우연히 찌른 장창이 오른팔뚝을 스치며 황제의 간을 관통해버린다. 기독교는 이때 황제를 찌른 병사들이 두 명의 기독교도라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가필해 버렸다. 율리아누스가 아무리 훌륭한 황제라도 하다못해 순교의 명예를 주기를 거부한 반기독교도, 이것보다 더한 변절자, 배교자이기 때문에. 이교도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배교자, 변절자는 눈 뜨고 못 보는 게 사막종교의 특성이니까.
학문의 발전과 교양 교육이라는 면에서 비참하고 원시적인 상태였던 유대-기독교는 종교를 가진 문명이 아니라 자신을 뒷받침할 문명이 거의 없는 억압적 종교이며, 이것이 “로마에서” 기독교가 잘 팔릴 수 있는 독특한 장점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문명은 나중에 생겨도 상관없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들에겐 종교가 문명이었기 때문에. 이 종교는 독자적이었으며, 유일했으며, 따라서 절대적이었고, 불가피하게 독점적인데다가 타협 불가능한 종교였다. 헬레니즘은 한 방에 가버렸다. 로마 역시 로마를 위해 “역사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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