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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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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1976년 12월에 김희진과 함께 일란성 쌍둥이로 광주광역시에서 출생, 전남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후 2002년에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 등단했으나 지방신문이라는 것에 조금 캥기는 게 있어서 그랬는지 2004년에 중앙일보에서 신춘문예 대신 시행하는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아 드디어 중앙문단의 말석에 자기 방석을 깔았다. 쌍둥이 동생 김희진도 2007년에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혀>를 응모해 당선한 작가. 친 자매이긴 하지만 장씨와 김씨, 성씨가 달라 둘 중 하나를 남의 집 양녀로 보냈나, 하고 의심할 수 있지만 그러지 마시라. 원래 김은진인데 필명으로 장은진을 쓰는 거다. 이이가 그동안 이효석문학상, 문학동네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작가. 장은진은… 어디선가 이이가 <벤야민타 하인학교>에 관한 글 한 꼭지만 읽어봤을 뿐이다. 1985~2013년 사이의 내 책장은 황량하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는 거의 모른다. 내가 봐도 놀랍다. 자본주의의 힘. 한 가족을 먹여 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살았다. 그리하여 2019년에서 20년 사이에 쓴 중단편 소설 여섯 편을 모아 2024년에 찍은 《가벼운 점심》으로 장은진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
43세의 작가라면, 가히 최고 전성기 시절이라 볼 수 있다. 이이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이 책도 전성기적 작품집인지, 더 훌륭한 작품이 많은 지 알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은 여유로웠으며, 연륜도 얹히기 시작하는 것 같았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이미 찾은 것처럼 읽었다.
나는 번역소설을 주로 읽는다.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외국 소설을 번역하는 경우는 이미 좋은 작품이라고 검증이 된 주요 문학상 수상작이거나 숏-리스트에 올랐던 작품일 때, 아니면 적어도 출판사가 보기에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선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봐야 15년도 되지 않을 텐데, 비 온 다음 대밭에 솟아나는 죽순처럼 매일같이 책방 진열대에 흩뿌려지는 우리 젊은 작가들의 ‘검증되지 않은’ 책까지 읽기는 쉽지 않아서. 그래 우리나라 책을 읽을 경우 저절로 조금 세월을 입은 늙수그레한 작가가 쓴 작품에 눈이 가는데, 아쉽게도 이 양반들은 어느새 전성기를 넘은 지 오래, 작품도 그들의 사추리에 매달린 것처럼 시들시들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은진의 작품집 《가벼운 점심》을 우연히 골랐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게 유일하게 가르쳐준 지혜는, 작품을 고를 때 발표하고 30년이 넘은 책을 먼저 고르라는 거였다. <노르웨이 숲>인가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 정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출간하는 책이라면 당연히 괜찮을 수밖에 없는 양서일 거라고. 한데 올해 나온 책을 이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것도 행운이라 할 만하겠다. 더구나 이름도 몰랐던 작가잖아.
여섯 편 가운데 네 편 정도가 좋았으니, 이 정도면 대박이다. 이 가운데 표제 작품 <가벼운 점심>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는 환경공학 또는 도시공학 같은 걸 전공하는 교수였으며, 어머니도 중국의 문학과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였다. 할아버지가 공부를 하다 성공하지 못한 분이어서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자기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많은 어머니와 저절로 친해졌고, 할아버지의 흔쾌한 허락을 받아 두 공부하는 사람은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애하고, 양가의 축복 속에 결혼하고, 주인공 ‘나’와 동생을 낳은 후, 동생이 스무살이 되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살았다.
당구대 위에서 당구공을 툭 밀어 굴러가는 것 같이 생활도 그렇게 흘러갔다. ‘나’ 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나’에 대한 본능적 사랑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지만, 자기가 아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천둥을 맞는 것처럼 알아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아버지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사랑하지도 않는 배우자와 어떻게 어떻게 관계를 계속 이어가며 사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버지는 몰랐던 거 같다. 아버지는 예민한 성격이었고, 하루는 새벽 세시에 서재방 베란다에 걸터앉아 봄밤의 꽃들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집은 아파트 16층이었다. 이후 ‘나’는 수시로 아버지의 서재방에 노크 같은 기척도 없이 불쑥 들어가 서가에서 몇 권의 책을 뽑아오기 시작했지만 정작 읽어본 책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동생이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아버지는 떠났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말 그대로 ‘몸’만 빠져나갔다. 어머니한테 길고 긴 편지만 놔두고. 어머니는 편지를 읽은 후 발기발기 찢어 화르륵 불을 질러버려 편지에 쓴 내용은 아들들이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총 책임자로 되어 있는 국제 세미나 “환경과 미술”에 참가한 결혼 1년차 영국계 미국인 여성과 서로 사랑에 빠진 거였다. 그 여성을 발견하고 여태 한 번도 알지 못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긴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아버지는 다른 여성의 남편, 두 아들의 아버지, 대학 교수, 형제 가운데 맏이, 한 완고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모든 지위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거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할아버지가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지도 못하고, 죽음의 병상에서 맏아들을 부르고 불렀다. 이렇게 10년만에 잠깐 귀국해 할아버지의 운명을 지키고, 장례식을 지내면서, “미국여자와 바람 나 처자식 버리고 떠난 남자”라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영정 앞에서 울고, 울고, 또 울기만 했던 아버지. 전처와는 서로 얼굴을 피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장례식이 끝나자 삼우제도 지내지 않고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작품은 이제 “귀국길”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좀 괜찮은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 아들이었건만, 실수할 확률이 거의 없는 가벼운 점심으로 감자튀김을 곁들인 햄버거를 먹자고 아버지가 권하는 바람에, 시끄러운 햄버거 가게에서 나눈 이야기로 되어 있다.
봄을 좋아했던 아버지. 봄이 좋아서 봄을 싫어했던 아버지. 예민하고 기름기 많은 식사도 못하고, 늘 불면에 시달렸던 아버지. 그는 이제 말도 잘 하고, 두툼한 페티가 든 햄버거로 씩씩하게 잘 씹어 먹고, 살도 적당히 오른 적당한 몸피의 중장년 또는 중늙은이가 됐다.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다. 다만 아쉬운 건 10년 전엔 펜을 쥐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했던 곱고 가는 손이 거칠고 두껍게 바뀌었다는 점. 작은 아버지 말에 의하면 미국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단다. 그러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건 자기가 하고 있는 세탁소 문을 오래 닫아둘 수가 없어서란다. 교수 출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세탁소. 아버지의 여자, 영국계 미국인 역시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하여 큰 희생을 감수했다. 그 여성도 교수, 중산층 자리를 말끔하게 포기하고 나이든 ‘나’의 아버지와의 사랑을 선택한 것.
‘나’는 생각한다. 10년 전. 서울의 고층 아파트에서 ‘나’의 가족과 함께, 계속 생활했다면 아버지는 여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결코 어머니를 참지 못할 만큼 싫어했던 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배우자였고, 삶이었고, 자신의 인생이었을 뿐. ‘나’는 서재 베란다에서 앞으로 엉덩이를 밀어버리는 아버지를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볼 수도 있었음을 생각한다. 죽는 것보다 낫지. 아무것도 없는 적수공권으로 오직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무것도 없는 여성과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국땅에서 직접 손을 써 돈을 버는 일이 자신을 그렇게도 만족스럽게 만든다는 진실도 알아가며, 역시 사람 사는 일이라 서로 사랑하는 만큼, 다투기도 하고, 가끔은 소리도 지르지만, 더 자주 서로의 몸을 만지며 사는, 그런 것이 행복이란 걸 평생 배우며 사는 아버지와 그 여자분.
‘나’는 ‘나’의 결혼식에 아버지를 초대하고, 아버지는 거절한다. 우리식 사고, 바람나서 식구들 다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라는 눈길을 견딜 이유가 없어서. 그런 아버지에게 내가 보여드리는 건, 넓은 빗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완두콩. 약혼녀 윤주의 배 속, 완벽한 고독 속에서 동동 떠 있는 작은 생명체, 아버지의 손주가 될 씨앗이었다.
이렇게 세월은, 삶은, 사람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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